"흥보야 듣거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는 데가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너도 나이를 먹었고,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는 놈이면서 사람 사는 것이 어려운 줄은 조금도 모르고서 나 하나만 바라보고 놀고먹으니, 내 이제 그 꼴을 더 이상 못 보겠다. 부모의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장손의 차지인데, 하물며 이 세간은 나 혼자 장만했으니 네 것이 아니다. 이제 네 처자를 데리고 어서 멀리 떠나거라. 만일 지체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썩꺼져라." -『박타령』 신재효본 - P26
굶주려 죽게 된 사람에게는 먹던 밥을 덜어주고, 추위에 얼고 병든 사람에게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고, 노인이 짐을 지고 가면 자청해서 대신 짊어지고, 장마통에 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삯도 안 받고 강을 건네주고, 남의 집에 불이 나면 달려가 그 집 세간살이를 대신지켜주고, 길에 돈이나 패물이 떨어져 있으면 옆에 지키고 섰다가 임자가 찾아오면 돌려주고, 깊은 산속에서 시신의 백골을 보면 땅을 깊이 파서 대신 묻어주고, 수절하는 과부를 보쌈하는 자들이 있으면 쫓아가서 뺏어오고, 어진 사람을 누군가 모함하면 대신 나서서 변명해주고, 딱한 사정의 사람이 횡액을 만나서 고생하면 달려가 도와주고, 길 잃은 어린아이가 있으면 그 부모를 찾아주고, 주막에서 병든 여행객을 보면 그 사람 본가에 소식을 기별하는 등•••••• 이렇게 남의 일만 하느라고 한 푼 돈도 못 버니, 놀부가 오죽 미워하겠는가.
----- 《 박타령》 신재효본 - P29
그 많은 흥부의 아이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정답은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이다. 홍부의 그 많은 아이들은 그냥 있었다. 글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품을 팔아 돈을 벌지도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그냥 집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버지 흥부를 상대로 밥 타령, 먹을 것 타령이나 하며 괴롭히는 게 전부였다. 한두 살짜리는 그럴 수 있지만 열댓 살먹은 자식들까지 그랬다는 게 문제다. 그때는 열여섯이 결혼 적령기여서 열댓 살만 되면 시집가고 장가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몸뚱이 다 큰 아이들이 집에 들어앉아 밥 타령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먹을게 없어 굶주리면서도 그러고만 있었다. 뭔가 많이 이상하고 뭔가 많이 비뚤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대체 왜 일을 하지 않았을까? 가난과 굶주림의 엄습을 눈앞에서 보고도 단지 징징대며 보채는 것으로 일관했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분명한 하나는 그들이 보고 배운 게 단지 그뿐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란 진부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태어나서 보고 듣고자란 게 아버지가 비루먹은 말처럼 비실비실 다니며 빌어먹고 매품이나 파는 게 전부라면 그 자식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성장했을까? 잘은 몰라도 뭔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만은 분명하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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