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에서 나와 발끝으로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개들이 저희를 두고 간 걸 알면 실망할 것이다. 그래도 예배 보는 곳에 개들을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층 홀에서는 남두라는 한국인 하인이 우리가 외출하기 전 마지막 지시 사항을 듣고 우리를 배웅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 마시는 시간에는 돌아올 거예요." 남두 곁을 지나며 내가 말했다.
우리는 한국의 가을이 펼쳐내는 황금빛 장관 속으로 들어섰다. 진입로와 양쪽 잔디밭에는 노란 낙엽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화단에서는 암녹색의 회양목과 삼나무를 배경으로 스러져가기 직전의 백일홍들이 가지각색의 보석들처럼 마지막 찬란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감들은 첫 서리가 내려 빛을 밝혀줄 때를 기다리는 작은 램프들 같았고, 높게 자란 포플러 나무들은 보초를 서듯이 우리 정원의 경계에 빙 둘러서 있었다. 잠이라도 자고 있었는지 문지기가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대문을 열어젖히자, 마치 구름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서울 시내 전경이 대문이라는 액자속에 담긴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 눈 아래로 펼쳐졌다. 아침밥을 짓느라 불을 지핀소나무 장작 내음이 사방에 번지며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어느 계절보다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무튼 가을만 되면 늘 치맛단을 질끈 올려 잡고 계절을 한껏 만끽하며 뛰어다니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 같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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