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 이렇게 홀로 남겨지자 공허의 비애가 다시 그녀를 엄습해 왔다. 이건 분명 적막이 아니라 공허의 비애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원하던 물건을 얻고 난 뒤에 "아, 겨우 이런 거였나" 하는 걸 깨달으며 다시 곧 무료함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인간이란 이렇게 이상한 동물이다. ‘희망‘은 시시각각 인간을 자극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기지만 그 ‘희망‘이 ‘현실‘로 바뀌고 현실이 다시 과거가 되면 그것 역시 너무나 평범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행복한 기대는 끝까지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결국은 고작 예상했던 대로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P65

더욱 유감스러운 건, 이건 징이 각별히 유감으로 생각하는 점이었는데, 여기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자신들이 혁명적인 행위나 혁명적인 인생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것을 보급하려고 하고, 그 때문에 징도 그 파장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징이 일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한 남자 동료가 징에게 우산을 빌렸는데, 다음 날 그는 돌려줄 생각은커녕 도리어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었다고 해서 결국 징은 우산을 다시 하나 살 수 밖에 없었다. - P96

 한번은 또 어떤 여자 동료가 정의 망토를너무 예쁜 망토네. 나한테 좀 잘 안 어울려서 그렇지만 하더니 결국은 그 망토를 몸에 걸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가버리더니 그 후 사오 일이 지나서 징이 돌려받았을 때는 이미 어개선이 다 터져 있었다. 이들은 자기 물건도 종종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면 다시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고상하고 세심한 장은 도무지 이런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연애 소동은 특히 그들이 공무 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남자 동료와 여 직원이 서로 치근대거나 서로 희롱하며 입을 맞추려고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종종 눈에 띄었다. 독신의 여자가 만약 누구와도 연애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의 반혁명에 해당하거나 적어도 봉건잔당으로 매도되었다. 이들은 자오를 통해 징이 아직까지 애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징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고 그중 하나는 징에게 심하게 치근덕거리기도 했는데 이런 일은 징을너무나 불쾌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징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도 차츰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