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똑같이 얼굴을 찌푸리느라 입을 오므리는 발다사르를 보면서 알렉시스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삼촌을 만나러 오면서 예상한 것,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죽음을 앞두고 저속한 삶의 현실에서 영원히 떨어져 나온 사람이 영웅적 의지를 발휘해서 지어 보이는 미소, 슬프고도 다정한,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초연한 미소였다. 하지만 이제 알렉시는 만일 장 갈레아스가 다시 놀린다면 삼촌이 예전처럼 화를 낼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고, 죽음을 앞두고도 저렇게 쾌활하고 여전히 극장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거나 특별히 용기를 낸 것은 아님을, 저렇게 죽음 가까이 다가가도 삼촌은 오직 삶만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렉시는 자기에게도 언젠가 죽음이 닥치리라는 생각을 했고, 삼촌의 늙은 정원사와 삼촌의 사촌누이 알레리우브르 공작 부인은, 그나마 삼촌에 비해 살날이 많이 남은 자신과 달리, 설령 삼촌보다 오래 산다 한들 어차피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 P20

그런데도 늙은 정원사 로코는 심지어 은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모아 두고도 더 벌기 위해 여전히 일했고, 장미를 잘 키워서 상을 받으려고 애썼다. 공작 부인 역시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머리 염색을 했고, 여전히 젊고 건재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기 집에서 열리는 연회들의 우아함을,
그 자리에 준비된 식탁과 스스로의 재치가 지닌 더없는 섬세함을 칭송하는 신문 기사들이 나오도록 돈을 썼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예를 떠올려 본 뒤에도 삼촌의 태도로 인한 놀라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유사한 다른 두려움이 생겨나서 점차 커지더니, 마침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알렉시스  자신도 예외일 수 없을 하나의 진실로 이어졌다. 알렉시는를  아연실색하게 한 것은 바로, 누구나 얼굴은 여전히 삶을 향한 채 뒷걸음질로 죽음에 다가간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 P21

이미 밤이 되었고, 그녀는 눈물 없는 몽롱한 눈으로 여전히 그의 방에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열정에 매료된 슬픔 속에서 그의 손에 키스를 한 뒤 말없이 방을 나섰다.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어쩌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도 이내 감미로운 제물이 절망적인 애원의 눈길로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에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그 순간 갑자기 자기와 똑같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외로워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옷을 입고 조용히 그녀의 방까지 갔지만, 혹시라도 이더 잠든 사람을 깨울지 모른다는 걱정에 소리를 낼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하늘과 땅과 스스로의 영혼에 짓눌리게 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매 순간 그는 이제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계속 그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방 안에서 지금 그에게까지 들려오는 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여인의 감미로운 망각을 깨뜨리게 되리라는, 잠시나마 누리는 휴식으로부터 여인을 끌어내서 잔인하게도 다시 회한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게 되리라는 생각에 겁이 난 그는 바닥에 앉았다가 무릎을 꿇었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문 앞을 지켰다. 아침이 밝았을때, 그는 추위에 떨리는 몸과 평온해진 마음으로 자기 방에 돌아갔고, 오랫동안 잠을 잔 뒤 충만한 행복 속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상대가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있도록 서로 안심시키고자 애썼다. 점차 익숙해지면서 회한이 줄어들고, 역시점차 익숙해지면서 쾌락도 덜 강렬해졌으므로, 발다사르가 실바니아로 돌아왔을 때쯤에는 불꽃처럼 타올랐던 잔인한 순간들은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그저 감미로운, 조금 차가운 추억으로 남았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 P25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에 열이 내린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을 때, 발다사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한참 동안 울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서서히 다가오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했었는데, 이렇듯 예고 없이 죽음과 마주해 버린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 가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는 겁에 질려 애원했고, 결국 죽음의 뜻을 꺾었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 P33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기대지말고, 그런 갈대를 믿지 말라. 육신은 한 포기 풀과 같아서, 그 영화는 들에 피어난 꽃처럼 때가 되면 사라지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중에서 - P49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수많은 다른 여인들에게 마음을 주던 남자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상처입은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비올랑트는 다른 여자들을 이기고자 그 여자들의 매력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53

- 나 떠날 거야, 오귀스탱, 오스트리아 궁정 근처로 갈래.
-오, 그건 안 됩니다. 아가씨가 그 고약한 사람들한테 가 계시면 이곳의 가련한 이들은 어디서 위로받나요? 누가 숲속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 주나요? 성당 오르간은 누가 치고요? 들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테고, 이제 우리를 위해서 노래를 지어 주지도 못하겠죠.
- 걱정하지 마, 오귀스탱, 그동안 이곳 스티리아의 성과 농부들이 아름답고 충성스럽게 살아가도록 오귀스탱이 지켜줘. 나에게 사교계는 한 가지 방편일 뿐이야. 그곳에 가서, 속될지언정 그 무엇에든 맞설 수 있는 강한 무기를 얻을 거야.
언제고 사랑받으려면 그 무기를 손에 넣어야 하니까. 물론 호기심이 날 떠밀기도 하고, 이곳에서처럼 늘 명상하는 삶보다 좀 더 물질적인 삶을 살아 보고도 싶어. 내가 원하는 건 휴식이자 배움이야. 원하는 것을 다 배우고 나면, 휴식이 끝나면,
곧바로 궁정 사교계를 떠나서 돌아올게. 시골로, 순박한 농부들에게로, 그리고 내가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 그러니까 나의 노래로 돌아올 거야. 그리 멀지 않은 그때가 오면 내리막길 도중에라도 멈춰 서서 우리의 스티리아로, 오귀스탱 곁으로돌아올게.
· 정말 그러실 수 있을까요?
· 하려고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어.
- 하지만 그때 아가씨는 지금과 똑같은 것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
- 어째서?
-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51

비올랑트는 이제 선량함을 우아하기 때문에 좋아했다. 여전히 돈을 쓰고 가슴 아파하고 시간을 내서 자선을 베풀었지만 마음을 전부 내주지는 않았고, 따로 떼어 내어 준 마음 한 부분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59

여전히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몽상에 젖었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밖으로부터 관조함으로써 깊어지지 않고 사물의 외관에 머무는, 마치 거울 앞에서처럼 관능적으로 교태를 부리며 자기 모습에 경탄하는 그런 망가진 정신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럴 때 손님이 찾아온다면 몽상과 독서를 방해받더라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마침내 자연마저도 타락한 감각으로 음미하기에 이르렀고, 이제 계절의 매력은 그녀의 우아함에 향기를 더하고 색조를 부여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었다. 겨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추위를 맛보는 기쁨 때문이었고, 사냥의즐거움을 누리느라 가을의 슬픔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때때로 혼자서 숲속을 거닐며 진정한 기쁨의 자연적 근원을 되찾고자 했지만,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를 거닐 때조차 그녀는눈부시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 우아하게 차려입는 즐거움이 홀로 있는, 몽상에 젖는 기쁨을 오염시킨 것이다.
- 내일 떠나면 어떻겠소?
공작이 물었다.
- 모레 떠나요.
비올랑트가 대답했다.
언제부턴가 공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슬퍼하는 오귀스탱에게 비올랑트가 말했다. "조금 더 늙으면 갈게" 오귀스탱이 답했다. "아! 정말로 그곳 사람들에게 젊음을 바치려고 하시는군요. 아가씨는 절대 스티리아로 돌아오지 못하실 겁니다." 비올랑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젊을 적에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우아함의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자 사교계에 머물렀고, 늙어서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고 지켜내고자 사교계에 머물렀다. 전부 헛일이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60

그녀는 결국 그 지위를 잃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되찾기 위해서 애썼다.
오귀스탱은 비올랑트가 사교계 생활에 염증을 느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한 가지 힘이 있었다. 처음엔 허영심이 그 힘을 키워 냈지만, 그 다음에는 바로 그 힘이 그녀의 염증, 경멸, 심지어 권태마저 무너트렸다. 그 힘이란 바로 습관이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61

그는 천식이 심해져서 숨을 쉴 수 없었고, 가슴 전체를 고통스럽게 쥐어짜며 호흡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생명을 가리는 장막이, 우리 안의 죽음이 비켜나고 있음을 느꼈고, 숨을 쉰다는 것,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오노레는 이어, 프랑수아즈가 연인을 잃은 슬픔에서 치유될 시점으로 옮겨 갔다. 그때는 누가 될 것인가? 장차 일어날 일이 분명하지 않다는, 하지만 필연적으로 일어나리라는 사실은 그를 미칠 듯한 질투로 몰아넣었다. 살아 있다면 그녀를 막을 수 있을 테지만, 살 수 없으니,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녀야 수녀원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겠지만, 그가 죽은 뒤에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는가. 안 된다! 두 번 속고 싶지 않았다.
꼭 알고 싶었다. 누구일까? - 구브르일까? 알레리우브르?
뷔브르? 브레브? 오노레는 모두를 떠올렸고, 그 순간 이를 악물면서, 자신의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리는 격렬한 저항을느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그저 쾌락만을 위한 상대는 안 된다.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여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쾌락만을 위한 상대는 용납하지 못할까?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아니다. 그렇지않다. 누군가 그녀의 감각을 흥분시키고, 내가 주던 것보다 더많은 쾌락을 주는 일이, 그녀에게 쾌락을 준다는 상황 자체가 무조건 싫어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누구라도 그녀에게 행복을 사랑을 주어야지 쾌락은 아니다. 누구라도 그녀에게서 쾌락을 얻고, 그녀 또한 쾌락을 얻는다면, 나는 질투를 참을 수 없다.

--------질투의 끝 - P108

그 순간 시선을 든 오노레는 자기 침대 곁에 서서 기도하는 하인들, 의사, 그리고 친척 노부인 둘을 보았고, 그들 가운데 프랑수아즈도 있었다. 오노레는 비로소 깨달았다. 

--------질투의 끝 - P114

이기심과 권능을 버린 순수한 사랑, 스스로 너무도 온화하고 광대하고 신성하기를 바라던 그 사랑으로, 그는 프랑수아즈와 똑같이 늙은 친척들과 하인들과 의사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지닌 그렇게 하나로 이어진 모든 인간들을 향했다. 하지만 프랑수아즈에게만큼은 그사랑을 이미 주었으므로 더 이상 내어 줄 수 없었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만을 향한 사랑, 그녀를 다른사람과 다르게 좋아한다는 생각까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는 침대 발치에 서서 눈물 흘리며 연인과 함께사용하던 말들을 속삭였다. "나의 고향, 나의 형제." 오노레는그렇지 않다고 깨우쳐 줄 의지도 힘도 없었기에, 자신의 "고향은 그녀 안에 있지 않다고, 하늘과 온 땅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나의 형제들"이라고 되풀이했고, 자기 눈동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프랑수아즈에게 향하는 까닭은 오로지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머지않아 닫히게 될 이미 더 이상 울지 않는 그녀의 눈에 연민이 일었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의사보다 늙은 친척들보다, 하인들보다 프랑수아즈를 더 많이 사랑하거나 다르게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질투가 끝났다.


--------질투의 끝 - P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