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최저생활보장 제도를 1990년대 말 도시에서 처음 시행했을 때, 이들 다수가 노동자가 아닌 수급자로 재등장했지만 말이다. 질문거리가 많았다. 인민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도시 노동자들은 자신의 빈곤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할까? 사회주의 독트린을 고수하는 나라에서 국가는 사회주의 대표 계급의 빈곤화에 어떻게 개입할까? - P75

도시는 개인이 각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분투하고, 결혼----출산양육을 통해 노동력을 원활히 공급하고,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부강이 일체화되는 ‘대중유토피아‘ (벅모스 2008)의 공간이었다. 도시 질서를 위협하는 자격 없는 국민 인민에 대한 통제 역시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하게 등장했다. 사회적 빈곤은 유기적 사회질서구성을 위한 기술들을 고안해내기 위한 개발구역으로, 이 새로운사회질서는 지금까지 특정한 형태 없이 존재해온 사회적 삶의 영역들을 관리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카치 2014 245-246)정부는 부랑인이나 소매치기, 성매매 여성을 사회문제로 보고, 이들의 문제를 습속 탓으로 돌리면서 대대적인 지도와 통제에 나섰다. - P85

 이들을 시설(한국)이나 수용소(중국)에 감금한 채 의식 개조와 노역을 강제하거나, 정착 이주 사업을 통해 국토를 개척할 임무를 맡겼다.(김아람 2021 박해남 2021 추지현 2021 디쾨터 2016) 군사정권 시기 도시하층민을 부랑인이란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갖은 학대와 노역을 일삼은 일명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에야 공론화되면서 피해 생존자들의 진실 규명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사회명랑화사업‘의 일환으로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하고, 이들의 강제노역, 강제집단 결혼, 성폭행 등 인권유린을 방조한 역사는 최근에야 서산개척단 사건‘으로 알려지며 진상 규명이 시작되었다. 서산개척단의 공식 명칭은 ‘서산자활정착사업‘이었고, 형제복지원은 자활의 기치 아래 모범 표창을 휩쓸며 운영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자활이 없는 노역"이 정부의 보조금과 민간 복지시설의 수익사업을 결합한 ‘자활사업‘을 가능케 했고,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수용자들의 ‘사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소준철 2021: 193) 의존할 대상을 곁에 두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멀리 쫓겨나거나 안에 감금된 채 의존의 혐의를 받고 ‘자활‘을 강요받았던 셈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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