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읽을 것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돌보고
걸을 때 발밑을 조심하고
한낱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맞아 죽지 않을까 염려한다. - P24

바다
폴 발레리

1
평평한 바다-------회색의, 울퉁불퉁하여 국부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은, 하나의 근질거림, 하나의 득실거리는 표면.
파문은 형태다. 움직이지 않는, 그러나 질료는 움직이는. 또는 움직이는, 그러나 질료는 잠시 ‘정거하는‘.
‘하나의 파도‘-------무엇으로 되었기에 하나로 동일한가?
뭇 형태들과 움직임의 연속인 것이다. 굴러가는 (보이지 않는)하나의 바퀴 위반짝이는 하나의 점이며, 또한 눈이 하나로 동일시하는 어떤 한 원 위 반짝이는 점들의 이어짐이다. 연속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을 결합한다.

2
바다가 휘감은 돌과 대기의 비와 서리가 공들인 돌은같은 모습이 아니다. 같은 마멸이 아니다. 같은 종류의 우연이아니다. 바다의 활동은 변덕스럽다. 기후의 불순과 중력으로 인한 활동은 그렇지 않다. 하나는 구르고 휩쓸린다. 그 외의 것들은 전진하거나 끊기고, 또 분해된다. - P35

3 하나의 거품이, 때때로, 바다 위로 피어오르고, 이러한 시간들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


4
아침 ----------검고 바람 부는 새벽-----------바람의 포탄들
놀랄 만큼 긴장되는 나의 신경
잠에서 비롯하여 한껏 장전된 현재 위로, 사건은,
일말의 변화마저, 모두 드러나고, 울려 퍼진다
가득한 반향들, 섬광들, 기다림,
거진 잠들었으며 나머지도 잠들려 하는 하나의 진동하는 뾰족함.
아주 강렬하지만 아주 비좁은 가느다란 파문들. - P36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이란 언제나 고통 뒤에 온 것임을

밤이 온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 보자
비록 거기
우리의 말로 이어진 다리 아래
영겁의 시선에 지친 물결이 흐를지라도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사랑은 가네 흐르는 물처럼
- P40

사랑은 가네
삶이란 느린 것이기에
또 희망이란 난폭한 것이기에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주 한 주가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그 사랑도 돌아오지 않아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 P41

빛이 부서진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딜런 토머스


빛이 부서진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그 어떤 바다도 흐르지 않는 곳에서, 심장의 물결이밀물로 밀려든다.
그리고 머리 속에 반딧불이가 들어 있는 창백한 유령들, 빛과 같은 것들이
줄지어 살을 통과해간다 그 어떤 살도 뼈들을 치장하지 않는 곳에서.

허벅다리 사이 양초 하나가
유년과 씨앗에 온기를 주고 성년의 씨앗들을 불태운다.
그 어떤 씨앗도 움트지 않는 곳에서인간의 열매가 별들 속주름을 편다.
무화과처럼 빛나며
그 어떤 밀랍도 없는 곳에서 양초가 그것의 털들을 보여준다.


두 눈동자 뒤에서 새벽이 밝아온다.
두개골과 발가락 양끝에서 격렬한 피가 - P42

바다처럼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울타리도, 말뚝도 없는, 하늘의 분출하는 유정들이미소 짓고 있는 점치는 막대기 쪽으로
눈물의 기름을 내뿜는다.


눈구멍들 속의 밤이,
역청으로 된 달처럼, 구체들의 경계를 돈다.
낮이 뼈를 비춘다.
그 어떤 추위도 없는 곳에서 몰아치는 거센 돌풍이겨울의 옷을 벗긴다.
봄의 피막이 눈꺼풀들에 매달려 있다.


빛이 부서진다 비밀스런 운명들 위로,
생각의 끄트머리들 위로, 생각들이 비 냄새를 풍기는 곳에서.
논리가 죽을 때,
흙의 비밀이 눈을 뚫고 자란다.
그리고 피가 태양 속으로 뛰어오른다.
버려진 경작지 위로 새벽이 머문다. - P43

불의 뾰족함
쥘 쉬페르비엘


살아생전
독서를 즐긴 그였다
촛불 하나 곁에 두고서
종종 그 위로
자신의 손을 갖다 대곤 했다
납득하기 위하여
자신이 살아 있음을,
자신이 살고 있음을.
그가 죽은 이래로
밝혀진 촛불 하나
줄곧 그의 곁을 지킨다
두 손을 가리운 채 - P60

거울
쥘 쉬페르비엘


지금 죽음이
삶에게 기다란 거울을
햇볕 비틀거리는 한 줌
벚꽃을 빼앗았다

눈은 푸르름 속에서
손은 순백에 반짝이고
행복에 잠긴 영혼이 어느덧
두근거리듯 그를 두드린다

그가 거울 안에서 바라보는
붉게 물드는 수천의 벚나무
돌멩이의 위협에서 벗어나
모이를 쏘아대는 한 떼의 새무리

나무에 오르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는 손 안에서, 그토록 빨리

썩어삼에 순응하는 새들에
놀란 기색이 완연하다 - P67

코르도바의 민가 마을밤의 이야기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집에서는
별들의 침략을 조심한다.
밤이 무너진다.
안에서는 머리카락에
한 송이 붉은 장미를 숨긴 소녀가
죽어 있다.
격자창에선 여섯 꾀꼬리가
소녀의 죽음을 운다.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입 벌린 기타를 들고 지나친다. - P77

가을이 인다
두보

옥빛 머금은 이슬에 단풍 숲 시들고
무산 무협의 가을 기운이 쓸쓸하다
강물 가른 파도의 용솟음 하늘과 맞닿고
요새 위 바람과 구름 음산히 땅을 덮는다
다시 피는 국화에 옛날은 눈물겹고
외로이 매어둔 배 고향이 묶여 있다.
곳곳에서 가위와 자가 겨울옷을 재촉하고
백제성 높이 급히 저녁을 다듬이질한다 - P86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로베르 데스노스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내 동료와 함께,
비록 그는 죽었지만,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내 동료와 함께.

아름다웠다 꽃이 핀 나무들,
그가 죽던 날 눈 내리던 밤나무들.
그와 함께 나는 산책을 했다.

오래전 내 부모는
당신들끼리만 장례식에 갔었고
그래선지 난 내가 어리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적지 않은 죽음을 경험했고,
하 많은 장의사들 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닿은 적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오늘 - P90

나는 산책을 했다내동료와 함께.
그의 딸에 나는 조금 늙은 듯했다.

좀 늙었잖아, 그러며 그가 말하길
"너도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어느 일요일이나 어느 토요일에,"

나는 바라보았다 꽃 핀 나무들을,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돌연 나는 내가 혼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되돌아왔다. - P91

나무가 모르는 것
박술


넓어진 숲에서, 전혀 네가 아닌, 사프란 향의 바람만이 나를계속해서 만진다. 평범한 젖버섯일 뿐인 내가, 과분한 끌어안음에, 바람에 쏠리면서 검어져
간다. 무너지는 동안만큼은, 마치판관처럼 나를 대해주길 너와 숲의 안에서 나는 거의 보이지않는 희미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먹혀 없어지기 전에 찾아 헤매는 손들과 먼저 만나길 기도하면서. 그런 감각이 있다. 네 한숨이 돌들을 비집고 나를 들어 올리고 마침내 균사의 끄트머리에 그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을 것 같은 그런... 내 기억의 갓버섯이 사랑을 네게로까지 뻗는다; 지나친 줄도 모르고, 방황의 많은 길을 지나갔고, 네 작은 손가락을 에워싸는 마녀의 반지를 나는 줄곧 만들어두었다. - P103

살해당한 것들
콘스탄틴 카바피


내가 누구였는지 알고자 애쓰지 마라
내가 할 수 있던 말이나 행동을 들먹거리지 마라.
그것이 곧 장애물이 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가 살아간 방식과 행동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곧 장애물이 되어 내가 말하려 했을 때
나를 붙들고 좀체 놓아주지를 않았다.
여기 짐작기도 어려운 나의 행동들을 보라
여기 베일에 가려진 나의 글들을 보라-내가 누군지는 이를 통해서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자고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여 나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더 좋은 사회가 도래했을 때 -기어코 나와 꼭 닮은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다. 자유롭게 활개를 치며. - P109

지나간 것을 좋아하나요
폴-장 둘레


그대는 지나간 것을 좋아하나요
옛 시절 떠오르게 하는
흐릿하게 지워진
이야기들을 그리곤 하나요?

은은하게
붓꽃과 용연향내 풍기는
발걸음 여읜
낡은 방들과

초상화들의 창백함과
죽은 이들이 입 맞추던
낡은 성유물들
그대여, 바라건대

그들이 당신께 소중하기를,
먼지 쌓인

신비로 가득한 마음에서
당신에게 말 걸어오기를 - P110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기욤 아폴리네르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게으름을 찬양한다
감각들이 내게 떠넘기는
저 끝없이 미미한 지식을
어떻게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감각은 산이다 하늘이다.
도시다 내 사랑이다
감각은 사계를 닮는다
그것은 목이 잘린 채 산다 그 머리가 태양이고
달은 그것의 잘린 목이다
나는 끝없이 뜨거운 시련을 겪고 싶다
청각의 괴물인 네가 포효한다 울부짖는다
천둥이 네 머리칼을 대신하며
네 발톱이 새들의 노래를 반복한다
괴물 같은 촉각이 파고들어 나를 중독시킨다
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헤엄친다
범접할 수 없는 별들은 시련을 겪지 않은 지배자들이다
연기로 된 짐승은 머리가 꽃피웠다
월계수의 풍미를 지니고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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