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랑스 현대사 개관: 절대 왕권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① 부르봉 왕가와 계몽주의 시대(1589~1789)루이 14세와 고전주의, 절대 왕권-베르사유 궁전-계몽주의 시대, 백과사전
●데카르트(1596~1650), 코르네유 (1606~1684), 파스칼(1623~1662),
몰리에르(1622~1673), 라신(1639~1699)
●라파예트 부인 (1634~1693)의 『클레브 공작부인 (1678).
●세비네 부인(마리 드라뷔탱 샹탈, 1626~1696)●볼테르(1694~1778), 장자크 루소(1712~1778), 디드로(1713~1784),
라클로 (1741~1803)의 『위험한 관계 (1782)


② 프랑스 대혁명(1789) 7월 14일 민중봉기
1793년 1월에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제1공화정 (1792~1804), 국민공회(1792~1795), 총재 정부(1795~1799), 통령 정부(1799~1804)


③ 제1제정(1804~1814): 나폴레옹의 등장

●제정 시작: 1802년 종신통령, 1804년에 또다시 국민투표로 황제 즉위(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법전.
●유럽 여러 나라 정복: 1805년 10월에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해군에게 격파당함, 1805년 12월 오스테를리츠 전투로 대륙 지배 시작.
●러시아 원정 : 1812년에 러시아 원정과 후퇴 - P23

●엘바섬 유배: 1814년 동맹군이 파리 점령, 실각한 나폴레옹
● 100일 천하 1815년 2월 엘바 섬 탈출에 성공, 황제 복귀. 6월에워털루 싸움 패배-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 사망

④ 왕정복고 시대(1814~1830) 1824년까지 루이 18세-헌장 1830년까지 샤를르 10세

●스탕달(1783~1842)의 ‘적과 흑』 1830년의 연대기‘ (1830)-현대소설의 시작 『파르므 수도원 (1839)

●발자크(1799-1850): 1830년, 현대의 시작(연극에서 소설로 상경京 소설(성장소설)의 표본-고리오 영감 (1835), 『잃어버린 환상』(1843), 창녀들의 영광과 비참』 (1846)


⑤ 7월 왕정(1830~1848) 7월 혁명- ‘부르주아의 왕‘ 루이 필리프 시대


⑥ 제2공화정(1848~1852) 2월 혁명-라마르틴(1790~1869)


⑦ 제2제정(1852~1870)-나폴레옹 3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08~1873)는 최초의 프랑스 대통령이자 두 번째 황제, 마지막 군주, 나폴레옹 1세의 조카로1848년 2월 혁명 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쿠데타로 제2제정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플로베르(1821~1880)의 『마담 보바리』 (1857), 감정교육』 (1869)오스만의 파리 정비 (개선문, 에투알 광장)-산업혁명의 완성-인구의 급증, 도시화, 노동 계급의 형성-사회 구조의 재편.

●에밀 졸라 (1840~1902)의 목로주점』(1877), 『나나』(1880),
날」 (1885)-《루공마카르 총서》 - P24

⑧ 보불전쟁과 파리 코윈-페르 라세즈 언덕, 저항의 벽

⑨ 제3공화국(1870~1940)

●아돌프 티에르(1871-1873) 공화국 행정 수반, 대통령, 1884년 헌법 개정 공화국‘이 프랑스의 ‘결정적 체제‘로 정착

●쥘 페리-과학과 진보에 대한 믿음과 애국심으로 물든 시기, 공화주의적 학교법, 공공 교육의 탈종교화, 1886년부터 교육자는세속인 신분-1세기에 걸친 발전의 기를 완성

●1894년 드레퓌스 사건-유대인 출신 대위 드레퓌스의 유죄 판결, 1894년 기아나로 유배, 1897년 피카르 대령이 그의 무죄 주장,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를 <오로르>지에 발표, 지식인세계의 양분, 1899년 드레퓌스 유죄 판결, 대통령 사면

⑩ 20세기의 프랑스.
●‘벨 에포크‘ (19세기 말~제1차 세계대전 전) : 번영과 발전에 대한 믿음과 향수

① 제1차 세계대전(푸앵카레 대통령 집권 중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 포고, 1917년 미국 참전, 독일군 격파, 1919년 베르사유 조약)

●몽파르나스-피카소, 콕토, 샤갈, 헤밍웨이, 스타인, 헨리 밀러의 파리

●1908년 앙드레 지드, <누벨 르뷔 프랑세즈>(NRF) 창간, 세잔에서 피카소까지-입체파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체 77:1913-1927) - P25

●1920년 투르 회의에서 공산당 창당, 소련 혁명 찬양

② 인민전선(1936~1938): 1936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한 정권. 레옹 블룸의 사회주의적 급진적 정부

●행동주의 에스파냐 내란-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앙드레 말로(1901-1976) 『인간의 조건 (1933), 『왕』(1930), 『희망』 (1937)-에스파냐 내란

●생텍쥐페리 (1900-1944) 『어린왕자』 (1943) 야간 비행 (1931),
『인간의 대지 (1939)

③ 제2차 세계대전과 제3공화국 붕괴-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3일 프랑스와 영국, 독일에 선전 포고

4 비시 프랑스(1940~1944)-1940년 7월 앙리 페텡이 국회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아 국가원수가 되다. 독일과 협력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 (1942), 시지프 신화』(1943),
r페스트』 (1947), 『전락』 (1956) - P16

1장



자아와 역사의 발견



-------스탕달과 발자크 - P27

(2) 적과 흑」에 대하여

① 작가 스탕달.
• ‘에고티즘‘과 실증주의 시대
19세기는 1인칭의 시대였다. 인간은 오직 그 자신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한 스탕달은 "너 자신이 되라"고 역설했다. 개성의 완벽함과 강렬함, 자기와의 일치, 자기에 대한 만족, 자기 존중만이 그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행복 사냥‘, ‘에너지‘(정력), 이것이 스탕달을 요약할 수 있는 열쇠말이었다. 그는 실증주의에 깊이 물든 반항아로 18세기의 비판적, 개인주의적, 공리적 사상(엘베시우스, 루소, 벤담 등)을 바탕으로 자아의 모습을 다듬어 세웠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으로서 운문을 거부하고 고상한 스타일을 파괴하고자 함으로써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시의 시대는 가고 의혹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현대인이었다. 앙드레 지드는 "그는 절도가 있으면서도 열정적인 글쓰기 속에 전통과 현대를 융합시킨 작가였다"고 말했다. 그는 44세에 얄팍한 첫 소설 《아르망스》를 쓰기 시작한 늦깎이 작가였다. 1830년, 대표작이 된 적과 흑을 발표했을 때 그는 47세였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도래와 함께과거의 연극 대신 개인주의적인 장르로서의 소설의 시대가 왔음을 자각했다. "소설은 고독한 독서를 통해 ‘행복한 소수‘들을 결속시킨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 P34

그러나 그렇게도 자유주의에 깊이 젖어 있던 그지만, 그의 근본은 귀족 정신이었다. 귀족적 취미와 예술가적 기질 때문에 그는 몰취미와 예술에 대한 무감각이 특징인 부르주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출신으로 보나 사회적 역할로 보나 부르주아였던 그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스스로 부르주아의 적이라고 여기면서도 부르주아적 삶의 디테일은 소설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는 그런 천박한 제재를 멀리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 부르주아의 삶이 등장한다 해도 그것은 흔히 피상적인 것에 그쳤다. - P35

③< 적과 흑>이라는 제목

• 복식당시 법관들의 법복 색인 ‘적‘과 수도회 사제복의 ‘흑‘이라는 해석.

•정치적인 의미에서 ‘흑‘은 성직자 계층을 의미하고, ‘적‘은 쥘리엥의 공화적 지향을 의미한다는 주장.

• 소설의 모두에 언급된 루이 장렐Louis Janrel이라는 인물의 죽음과 관련시킨 상징성의 해석
소설의 제1부 5장에서 쥘리엥은 레날 시장의 집으로 찾아가기 전에 잠시 마을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당 안의 분위기는 이렇다. "모든유리창에는 진홍빛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햇빛을 받자더없이 장엄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띤 현란한 빛의 효과가 이루어졌다." ・・・・・・ 그리고 기도대 위에서 쥘리엣이 읽어 달라는 듯이 펼쳐져 있는 인쇄된 종이 하나"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브장송에서 처형당한 루이 장렬의 최후의 순간과 처형의 상보……‘라고 적혀 있다. - P37

쥘리엣은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내 이름과 끝 글자가 같구나......"
실제로 이 이름은 쥘리엥 소렐 Julien Sorel의 ‘아나그램‘, 즉 철자를 재배치한 다른 이름이다. 쥘리엣은 교회를 나서다가 성수반 곁에서
‘피‘를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 뿌려 놓은 성수였다. "창문에 드리워져 있는 붉은 커튼의 반사가 그것을 피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 기초해서 교회 안의 붉은색과
‘피‘, 즉 ‘적‘은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이미 쥘리엥의 비극적 최후를예언한다고 보는 해석.

• 신분상의 의미
붉은색은 군대 제복이 상징하는 군인 신분(또한 쥘리엥의 우상인 보나파르트는 군대에 기원을 가진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창시함으로써 그 색깔의 상징적 의미를 극대화했다)에 해당하고, 검은색은 왕정복고 시대 지배 세력의 일부인 성직 신분과 수도회에 해당한다고 보는 해석,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적‘의 세계에 대한 당시 청년들의 동경과 왕정복고로 인해 허물어지고만 기대와 환상, 그리고 ‘흑‘이 지배하는 세계인 현실과의 타협과 야망의 상관관계를 그린 것이 바로 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1세의 제정 시대였더라면 쥘리엥은 군인(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정복고 시대, 교회와 수도회가 뒷받침하는 세력이 지배하는 시대다. 쥘리엥의 삶은 이 지점에서 그 방향을 수정한다. - P38

쥘리엥 소렐의 모험은 1826년 9월 말에 시작해 1831년 7월 말에 끝나지만, 사실상 작품에서는 7월 혁명과 그 결과로 이루어진 7월왕조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소설은 1830년에 그 종말을 고한 왕정복고 시대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소설에 붙은 부제 ‘1830년의 연대기‘라는 표현은 왕정복고 시대의 역사적·정치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관심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따라서당대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은 소설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제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40

⑤ 나폴레옹과 사회적 유동성: 성장 소설로서의 「적과흑」

혁명의 혼란기와 나폴레옹 치하의 전쟁 속에서 많은 개인과 가족들이 직업과 부와 수직 상승에 의해 신속하게 사회적 상층부에 이르렀다. 나폴레옹 자신은 "미미하고 재산도 없던 일개 중위의 신분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모든 계층에 사회적 상승 의지를 자극했다. 쥘리엥도 그런 신화를 좇는 신도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왕정복 시대는 ‘잃어버린 환상‘의 시대다.
비평가들은 이 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지적한다. "쥘리엥 소렐과 함께 우리는 사회적 유동성의 한 양상을 목도한다. 이 야심가의 의식과 행동은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정이 19세기의 사회에 불어넣은뜨거운 열망을 말해 준다. 혁명이 앙시앵 레짐의 사회 질서를 파괴한 이후 일개 포병 중위가 황제가 되는 것을 목도한 이래 상향의 움직임은 최하층을 포함한 전 사회 계층에 파급된다. 그러나 쥘리엥의삶은 나폴레옹 제정 이후 사회적 유동성의 가능성과 그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사회의 사다리를 차례로 건너뛴다. 그러나 그의 처형은 유동성이 사실상 크게 제한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지키려는 이들에게 쥘리엥의 성공은 어떤 의미를갖는가? 그는 지방의 부유한 사람들의 공통된 증오 대상이다. 그는감옥에서 마틸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시골 사람들은 내가 당신 덕에 이룩한 빠른 출세에 기분이 상해 있어요. 내 말을 믿어요. 나의처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 P44

(1) 발자크와 그의 시대

① 연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799년 집정정부 시대 오노레 드 발자크 탄생

1804년 나폴레옹 제 1제정
1807~1814 방돔 기숙 학교

1815년 100일 천하, 워털루 전투
‘왕정복고‘
1819~1820 《고리오 영감》의 배경

1830년 7월 혁명 스탕달의 <적과 흙> 발표
‘7월 왕정‘
1835년 고리오 영감
1837년 잃어버린 환상
1841년 인간 희극 서문

1848년 2월 혁명
‘제2공화국‘ 1850년 발자크 사망

1851년 루이 나폴레옹 쿠데타
1852년 제2 제정

- P71

인간의 삶에 ‘생각‘이 끼치는 영향과 역할은 놀라운것이다. 발자크는 사회를 그리고 나서 그 모든 비극의 근원인 인간정신의 메커니즘과 법칙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렇게 사회에 가해진 모든 효과와 결과들을 <풍속 연구>에서 묘사한 다음, 철학 연구에서는 거슬러 올라가서 그 원인을 찾아내어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런 망설임과 암중모색의 과정을 거쳐 발자크는 인간과 삶의 전모를 해명해 나간다. 그의 소설들은 이런 해명 과정을 통해 ‘운명의 책‘으로 변한다. 이 철학적인 합류점 덕분에 《인간 희극》 속에 포함된 100권에 가까운(실제로 <인간 희극>에 포함된 소설은 총 89편) 작품들은 단순한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 인간 인식의 모뉴먼트monument로 승격하는 것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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