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볼 때,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춘향의 어머니 월매가 춘향의 계보로서 소개된다는 것은 굳건하게 뿌리박힌 유교 사회의 전통과 관습에 정면으로 위배되는일이다.
춘향의 계보에서 또 주목할 점은 아버지 성참판이 그저 월매에 딸려 있는 부수적 인물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마치 영웅소설에서 ‘씨 부인‘이라고 모친을 부수적으로 호명할 때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완전한 상황의 역전이다. 월매가 성참판을 데리고 산다고 되어 있으며, 일점혈육이 없어 기자정성,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풍속을 드리는 것도 월매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점의 주도권은 월매에게 있다. 춘향의 아버지 쪽 계보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이러한 서술 태도는 고전소설 관행에서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소설 첫머리에 주인공의 부친 쪽 계보를 들추는 바로 그 자리에 퇴기 월매를 내세워 발언권까지 주고 있는 것은 계산된 목적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가문 계보에 대한 염증의 발로이며, 새로운 계보 설정에 대한 탐색이라 할수 있다. 이를 조금 확대해서 본다면, 남성 중심의 사회 제도와전통에 대한 저항심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뒤에 이도령이 소개될 때 이도령의 아버지 이한림의 선정이 치적으로 소개되면서 이도령의 계보가 얘기된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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