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생명체는 35~38억 년 전쯤의 원시 지구에 처음 출현한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하고 20억 년 동안 지구의 원시 바다에는 박테리아 정도만이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에서지구 생명체의 번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박테리아가 시아노박테리아였다. 35억년 전부터 서서히 증가하던 시아노박테리아는 물속에 다량으로 녹아있던 수소를 이용해 산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P23

그 과정에서 햇빛이 작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 영양원이 만들어졌다. 이 광합성 기술은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 과정이었고 지구 생명체들의 삶의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물속뿐만아니라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20퍼센트를 넘어 지구환경이 혐기성(嫌氣性)에서 호기성(好氣性)이 되었다. 산소는 오존층이 되어 태양의 자외선으로부터 지구를 차단하는 역할을 했고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 과정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소비하자 지구의 온도가 떨어졌다. 처음 시아노박테리아가 출현한 태고대의 지구에서는 거대한 화산들이 폭발하고 바다가 펄펄 끓고 있었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들어낸 산소는 다음 단계의 더 복잡한 생명의 역사를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일부 단세포박테리아가 다른 단세포박테리아의 몸속으로 들어가 공생 관계를 이루기 시작한 것도 20억 년 전 일어난 놀라운 변화 중 하나이다. 그리하여 세포 내에 핵과 미토콘드리아 같은 소기관이 공생하는 진핵세포가 만들어졌다. 식물세포 내에 엽록체가 공생하면서 식물체가 광합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진핵세포는 원핵세포보다 더 크고 더 많은 DNA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써 생존을위한 더 좋은 전략을 짤 수 있었다. 그 결과, 진핵세포들의 연합체인 다세포생물체가 출현했다. - P24

한편 1924년 아프리카 칼라하이사막 근처인 타웅의 석회석 채석장에서 어린아이의 두개골 화석이 한 인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발견 초기에 ‘타웅의 아이(Taung Child)‘로 불린 6세 정도의 이두개골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는데 인간과 원숭이의 특징이 공존했다.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해부학 교수 레이먼드 다트(Raymond A. Dart)는 이 유골이 유인원과사람의 중간 단계에 속하는 새로운 종이라고 주장하면서 ‘아프리카 남쪽 지방(australo)의 원숭이(pitecus)‘라는 의미를 담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ecus africanus)‘로 명명했다.
200~300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이후 인류 진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된다. 그 후 많은오스트랄로피테쿠스종 화석이 아프리카의 남쪽 지방뿐만 아니라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견되었는데 특히 동부의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에서 대거 발견됐다. 이 초기인류는 팔의모습이 유인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수상생활(生活)을 주로 했을것으로 추정되며 엄지발가락이 직립보행에 완전히 적응한 해부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오늘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오래된 선행인류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으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인류 조상으로서의 위상은 아직 변화하지 않고 있다. - P27

영장류 중 일부가 직립보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는 학자들의 가설은 많지만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영장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을 거쳐 호모속으로 진화할 당시 지구환경이 급속한 변화를 겪던 와중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 - P30

지난 250만 년 동안 지구상에는 적어도 17회의 극심한 빙하기가 관측된다. 계속된 극심한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100만 년 전 무렵 멸종했는데, 이는 그다음에 나타난 진화종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상당히 다른 형질적 특징을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빙하기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삼림지대가 건조해져서 숲이 감소하고 넓은 사바나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수상생활을 하던 영장류는 새로운 삼림지대를 찾아 이동하거나 일부는 생활 태도를 바꾸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그러지 못한 종은 멸종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때 즈음해 영장류 중 일부는 수상생활을 포기하고 나무에서 내려와 생소한 지상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지상에 적응하기 시작한 영장류가 고인류의 모집단으로 추정되는데 400~500만 년 전에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이 중간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인류는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 외에 침팬지나 고릴라 등의 유인원과 두뇌의 용량, 두개골 및 치아 형질에서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빨의 구조 때문에 유인원처럼 입이 튀어나왔고 영양가가 낮은 식물성 먹이를 먹고 소화시켜야 했으므로 창자가 크고 배가 불룩했고 따라서 구부정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영장류는 소화시킬 수 있는 식물의 어린 싹, 씨앗과열매, 저장 기관 등을 먹고 살았고 유충, 곤충도 가끔 잡아먹었을 것이다. 이들의 큰 어금니와 깊숙한 턱뼈는 많은 양의 음식을 하루종일 씹어 삼켰음을 시사한다. - P31

2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할 때는모든 면에서 큰 변화가 관측된다. 호모 에렉투스는 종래의 구인류들과는 확연히 다른 종이었다. 뇌는 하빌리스보다 더 커졌고 체형도 오늘날의 인간과 유사해져 팔이 짧아지고 다리가 길어졌다. 에렉투스는 직립했을 뿐만 아니라 달릴 수도 있는 체형을 갖추었다.
게다가 턱과 치아가 현저히 작아지고 장이 짧아져 식생활이 획기적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장이 짧아지려면 식생활이 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질적으로 유리한 식품은 단연 동물성 식품이며, 날것보다는 익혀서먹을 때 영양 효율이 훨씬 높다. 따라서 송곳니가 크지 않은 호모에렉투스는 영양가가 높은 동물성 식품을 주로 익혀 먹은 것으로보인다. 이들은 동물을 직접 사냥해 불로 익혀 먹은 최초의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현생인류의 첫번째 진짜 조상으로 여겨진다. - P34


인간의 특징으로 지목되는 대뇌화(化 encephalization)도 동물성 식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했던종 중에서 초식 식단을 유지했던 여러 분파가 멸종해버린 사실 역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어느 시기든 인류는 고기만 먹지 않았을 것이다.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은 잡식성이었을 것이며 이는 호모속이 더 다양한 생존 전략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먹이를 선택했고, 먹이를 찾아 오래전부터지구 위를 돌아다녔으며 만나는 호모종 사이에 잡종교배가 일어나유전물질을 교류하면서 오늘날 지구의 주인공이 되어왔을 것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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