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우리의‘ 모든 흐름이 자유로운 세계화와 ‘우리‘ 지리적 경제권을 등장시켰다. 그 바람에 국가간 금융 거래가 놀랍도록 빠르게 이루어지고, 무역과 투자가 국경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며, 자본주의적 자유가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는 둥의 말이 많이 나왔다. 고전적 냉전 군사기술의 산물인 인터넷으로 인해 1990년대부터 실시간의 통신, 가상공간의 거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졌다. 기존의 (모든 것을 선악의 대결로 치환해 버렸던) 이분법적 지정학은 묘비명으로전락하는 신세가 되었고 "민주적 규범과 진보적 가치로 하나 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힘으로, 전 세계에서 권위주의 정부에 고삐가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EU(유럽연합)는 새 회원국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미국 정부가 멕시코, 캐나다와 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메르코수르(Mercosur, 남부공동시장)가 새로운 무역 블록이 되면서 이전의 권위주의 군부정권들이 이제는 더 국경지대의 땅과 자원을 갖고 서로 다투지 않고 공동의 경제 미래를 열어갈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소련 이후의 러시아에 대해서도 불안감과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유럽은 에스토니아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으로 받아들여 추가적인 안전 보장을 받도록 했다. 폴란드는1999년 NATO에 가입한 데 이어 2004년 EU에 가입했다. NATO의 1949년 조약 제5조는 어느 회원국에 대한 공격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P11

9.11 의 유산은 계속해서 오늘날의 지정학에 대해 알려주고, 그것을 전 세계의 국경지대마다 울려 퍼지도록 한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진행한 ‘전쟁비용‘ 프로젝트는 2001~2009년 동안 미국이 테러 전쟁에 들인 돈을 6조 4천억 달러로 추산했다. 또 아프가니스탄, 예멘, 이라크 같은 곳에서 이 전쟁으로 빚어진 폭력에 직접 사망란 사람이 80만 명을 넘는다고도 보았다. 여기에 2천만 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었다. 이런 나라들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진동은 계속되고 있다.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파키스탄에서의 미군의 드론 공격이.큰 인명 손실과 분노를 불러올 때마다 국경은 침범된다. - P13

한편,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체첸, 크림, 조지아 일부를 각각 침공하고, 합병하고, 점령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대테러 전쟁의 와중에 많은 나라가 기회주의적으로 테러리즘과 제3자의 위협을 이용해먹었는데, 고질적인 자국의 지정학적 난제를 해결하고 어떻게든 군사전략적 우위를 점하려는 속내였다. 국경은 어디서는 터지고, 어디서는 꽁꽁 싸매졌다.
‘국경 개방‘은 안보 위협의 의미로 새로 인식되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민주화 압력에 직면했던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 다른 국경관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대규모 토착 무슬림 소수집단이 극단주의와 분리주의의 혐의를 뒤집어쓴 채 정부의 억제와 감시 아래 놓여야 했다. 1,100 만의 위구르인이 사는 중국 서북단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천연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몽골 사이의 전략적 요지임은 그냥 흘려버릴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자국의 틀을 깨는 어떤 시도도 단호히 막으려 했고, 위구르인은 그런 시도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러시아 정부도 분리주의자들의 땅이라고 선포한 체첸 같은 곳에서 전쟁을 벌였다.
미국이 일으킨 대테러 전쟁은 이들 두 나라에도 세계적으로팽배한 테러리즘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자신들의 영토 보존을 ‘위협‘하는 소수민족과 분리주의자들을 억압할 수 있겠다는 힌트를 주었다. - P14

국경 문제의 네 가지 추진력

지난 15년 동안 국경은 더 주목받게 되었고, 그것은 군사주의, 테러, 기후변화, 이민 그리고 가장 최근의 팬데믹 등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국경 문제는 네 가지 추진력에 따라 움직인다. 제한하기(constriction), 확장하기(expansion), 따돌리기 (deflection), 내쫓기 (expul-sion)이다. 전 세계의 정부들도 적대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있어서 이민자나 난민에게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첫 번째는 제한하기. 외부자에 대한 적대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것이 특별한 까닭은 국내 기관, 공무원, 민간인이 한 팀이 되어 이 국경 문제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작용하고있기 때문이다. 인종과 주택 관련 차별은 이미 만연해 있다. 영국에서 택지 소유자는 셋집을 찾는 ‘불법 이민자‘를 내무부에 신고하지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물 수 있다.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임용되기 전에 자신의 시민권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 - P16

 인도의 모디 정부는 개정된 시민법과 시민등록법을 통해 토착 주민 및 비힌두계 시민에게 ‘국경전쟁‘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민의 토지를 빼앗고, 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며, 그들의 가진 것을 짜내는 일이 시민법 개악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이 모두가 ‘조국 인도‘를 지킨다는 이름으로이뤄진다.
제한하기는 법률-행정 체제에 그리고 일상생활에 적대적 환경을 구축한다는 뜻이다. 언제나 취업 비자와 그에 따르는 증빙 서류를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부담을 크게 늘린다는뜻이다. 나이러 유발 데이비스(Nira Yuval Davis) 같은 사회학자들은이런 ‘내재화된 국경‘에 대한 선구적 연구로 그런 일과 행동이 최근 급속히 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식의 국경 만들기는 아웃소싱되기도 한다. 그래서 동료 시민들이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그들의 비자에 문제가 있다고 고발하도록 만든다. 예술가, 소설가, 언론인, 영화제작자, 전직 국경수비대원, 이민자, 사회운동가들은 이렇게 적대적 환경에 내몰린 일상의 국경을 글과 다큐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한다. 한편 특권층에게국경이란 그들의 삶에서 대체로 눈에 띄지 않으며, 단지 팬데믹, 사회혼란, 전쟁 등의 긴급 상황에만 겨우 인식될 뿐이다.
- P17

두번째는 확장하기..... EU에서 ‘경계지역‘은 자체적으로 1단계에서 3단계까지 구분해 놓은 EU 확장 개념의 한 단위다. 3단계가 경계지역으로, EU의국경들 그리고 그 국경의 25킬로미터 안쪽 지역에 국민의 절반이 사는 지역을 말한다. 이런 시스템은 언뜻 비정치적으로 보이는데,
EU가 스스로 ‘우호적 국가들의 국경 없는 블록‘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국경에 관한 생각이 이와 다르다. 미국-멕시코,
인도-파키스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경계지대는 ‘국경 이야기‘
를 찾는 리포터들과 예술가들에게 늘 풍부한 ‘꺼리‘를 제공한다. 크게 보아, 이쪽에 관심이 한껏 높아진 까닭은 그런 국경이 몰려드는 이민 희망자들을 막고 있기 때문이거나, 지정학적 긴장이 생생히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민자를 환영하고, 일부에서는 이민자를 환영한다. - P18

다음으로는 ‘따돌리기‘가 있다. 이는 이민자들이 농업, 요양산업, 식품업 등 수많은 분야에서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이슈를 피하기 위해 국경을 이용하는 행태를 말한다. 정치적 좌파는 국경과 관련된 도덕적 문제를 비난하는 한편, 정치적 우파는 다른 곳에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국경이 필수라고 본다. 양쪽 다 국경과 통제 체제의 법적·도덕적 ·경제적 문제를 따진다. 미국을 비롯한 구미의 많은 나라에서 이민 노동자는 사회 각 분야의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 나라에서 이민자가 피난처를 찾기 훨씬 어렵게 만드는 여러 조치가 실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치지도자들은 이민자, 피난민, 난민을 굳이 엄격히 구분지으려 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앙아메리카 난민이 난민 인정을 받기 전까지 때로는 몇 달씩이나 멕시코에 남아 있도록 강제했다. 과테말라같은 다른 나라들은 ‘안전한 제3국‘을 선언하는데, 이민자가 그 나라로 들어가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와 새 이민 협정을 맺었는데(온두라스, 엘살바도르는 1969년의 ‘축구 전쟁‘에서 볼 수 있듯 국경분쟁과 이민자 문제로 서로 으르렁대기로 유명한데), 그들 나라에 미국이 무역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대가에 따른 것이었다. 멕시코 역시 북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더 잘 차단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 P20

마지막으로는 ‘내쫓기‘가 있다. 최근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토를 지키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감시하며,
국경지대에 배치 인력을 늘리는 조치를 해왔다. 이런 ‘국경‘을 둘러싼 연극에는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쟁 충동이 치밀 만큼의 직접적 · 노골적인 적대적 태도는 취하지 않으면서도 국내외에 자국 정부는 강경하고 의지가 뚜렷한 듯 보이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민자들이 원주민들을 압도한 나머지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 깨질지 모른다고 이른바 ‘대체 불안‘을 자극하는 것도 그런 전법의 하나다. 전염력이 매우 높은 겨울철 독감, 또는 더 고약한 코로나19 전염병처럼, (자유민주주의 정부, 권위주의 정부) 세계 각국의 정부들도 국경을 둘러싼 열병을 이용해먹고 있다. - P21

접근이 어려운 오지라고 해서 국경 분쟁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수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다고 분쟁의 대상에서도 벗어나는 것은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나라의 변방은 말썽이 일어나기 쉽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인구도 얼마 안 되는 혹한의 고산지대는 군사적 대치가 종종 일어나는 곳이다. 양쪽 모두 수천의 병사를 그 땅에 주둔시키고 있으며, 그들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건강이 나빠진다. - P27

일반적인 국경은 사람들을 일정 구역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그 너머 지역들에서의 국경 경험은 매우 다양하다. 베스트팔렌 조약(1648)은 흔히 국민국가 수립의 초석을 놓았다고들 한다. 이로써 일정한 국경을 경계로 하는 영토를 통치하는 공인된 체제가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그 조약은 국경, 국가 주권, 국가 목표를 수립하는 길을 열었다. 그것은 30년 전쟁의 산물이었으며, 일부 정치체들에게 평화와 자기 방위, 독립과 영토를 보장해 주었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으며 스웨덴 같은 다른 나라들은 영토를 확장했다. - P28

인류세는 국가 간 그리고 지역사회 간 분쟁을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그 여파로 하천, 삼각주, 늪, 산, 호수,
삼림, 섬, 해안, 평야 등이 쟁탈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배타적 주권이라는 신화와 고정된 국경이라는 신화는 위험하다. 우리는 국경에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도입해야 한다. 국경이란 살아 있는 것이며,
자연의 변화가 가져오는 복잡한 현실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기후변화와 국제갈등이 깊어지는 지역에서 일어나게 될 사람들의집단 이주도 수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 P36

장래의 분쟁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을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세 가지 유형의 국경분쟁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물리적 분쟁, 비정통적 분쟁, 새로운 분쟁을 그러나 먼저, 우리는 어째서 이 국경이라는 것이 그토록 뻔질나게 논쟁거리가 되고, 행동, 논란, 수익을창출하게 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 P38

2019년 3월에 나온 보고서에서, 경영분석 그룹인 프로스트앤설리번(Frost and Sullivan)은 국경 안보 관련 시장이 2025년에 1,68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았다. 새로운 투자는 실시간 데이터 분석에 집중될 것이며, 국경 안보 기구는 이로써 사람과 물자의 비정규적인 움직임을 포착하고 예방하는 역량을 키울 것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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