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대해
본명은 노르마 로사 가르시아 마이니에리
1940년 과테말라에서 태어나 과테말라 산카를로스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역사학·인류학·고고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사회과학 분야의 자료에서 얻은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집단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대표작으로는 「입 다문 마을」이 수록된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들』, 『행인의 시』, 『주변성, 여성과시」 등이 있다. - P51

작가의 말
글쓰기는 힘들고 끝이 없는 작업이다. 그것은 고독과 고통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갚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테말라에서 ‘문학적‘ 현실 속에 침잠하여 살아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작가들이 주제를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수많은 주제로 포위되어 공격받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란 도구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알고만있다면,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입 다문 마을」을 쓰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중심인물의 죽음이었다. 정확히 나는 그 대목을 열여덟 번에 걸쳐 다시 쓰면서. 가능한 한현실적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언젠가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놀리기도 했다.
"얘야, 불쌍한 아벨 사령관을 죽일 때면, 거기에 관해 너무 많은 경험을 갖게 될 거야. 그래서 아마도 살인자의 입장에서도 쓸 수 있게 될거야."
난 중요한 목표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대중들에게 읽히고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 중 대부분은 문맹이다. - P52

......그 지역에는 아무도 살지 않소. 기껏해야 코요테와 같은 동물만 살 뿐이오. 그러니 이제부터 이 사실을 명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로 고통을 받을지도 모르오."
그리고서 그 지역의 지도와 교통표지판, 그리고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바꿔버렸다. 친척들은 산타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에살던 친척들을 잊어버렸고, 전에는 채소와 꽃으로 가득 찼던 소란스러운 일요일이 아침에는 교회를 가고 오후에는 술집으로 향하는 슬프고 우울한 일요일로 바뀌었다. 건망증이 심한 친척들은 사진과 선물들과 로사리오를 장롱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그 누구도 그 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밤새에 망각의 전염병이 휩쓴 것으로도 충분치 않았다. 기억을 상실한 산헤로니모 마을은 변화를 겪었던 것이다. 우선 선생님들, 다음에는 우체국 직원들, 그러고는시장과 신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몇몇 사람들은 그것이망각에 저항했던 끈질긴 기억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
그러자 모든 마을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다. 기억과 말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입을 꼭 다문 사람들이사는 그 마을은 유령과 같은 마을이 되었던 것이다.
- P64


"아…… 벨사………… 령…………… 관!"
그는 혁명군이 해방시킨 새로운 영토의 첫 번째 방어선이었던 산타마리아 델라 벤디시온 마을의 혁명 사령관이었다.
불빛이 꺼졌다. 귀신 같은 사람들이 시체를 치웠다. 시체의 눈은 아직도 맑고 깨끗한 표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피를 닦았다. 그리고 무기를 철수시켰다.
"여기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작전 지휘관이 명령조로 말했다.
마을의 집들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닫힌 창문에서 물러나 침대로 돌아갔다. 이제 그들은 잠을 이룰 수 없을것이다. 기억은 되돌아왔고・・・・・・ 한 명의 증인이 있었다. 방금전에 죽은 남자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보았던 단 한 명의 증인이 있었던 것이다.
산타마리아 델라 벤디시온과 그곳의 주민들, 그리고 아벨사령관은 역사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되찾은 것이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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