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들은 부상했다가 쓰러진다. 동맹들은 손을 잡았다가 놓기도 한다. 나폴레옹 전쟁 (1797-1815년) 이후에 맺어졌던 유럽의 합의는 60여년간 이어졌다. 히틀러가 꿈꾸던 천년제국은 고작 10년을 웃돌았다.
따라서 다가오는 시대에 어떤 식으로 <힘의 균형>이 바뀔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적, 지정학적 공룡들이 여전히 국제정세를 부여잡고 뒤흔들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EU의 각 나라들, 또 인도처럼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 강국 등이그들이다. 그러나 보다 작은 나라들이라고 간과할 수는 없다. 지정학은 동맹을 끌어들이며, 끊임없이 요동치는 현 세계 질서에서 강대국들은 반대편 못지않게 그들 편에 설 약소국들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은 터키나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같은 나라에게 미래 권력을 향해 전략적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현재는 그 만화경의 조각들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어서 완전히 제자리를 찾지는 못하고있지만 말이다. - P13

이제 오스트레일리아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민이 외교정책과 국방 문제에 이르렀을 때 이 나라의출발점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주 그러했듯 지리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에게 그 나라의 면적과 위치는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덕분에 외부의 침략에는 안전했지만 정치적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또한 광범위한 장거리 교역망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해상 항로를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하다. 게다가 주요 우방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 P24

시드니 주변으로 정착촌이 자리 잡자 멜버른, 브리즈번, 태즈메이니아 등지의 정착촌도 성장해 갔다. 이것이 훗날 개척전쟁 (FrontierWars, 1788-1934년)으로 알려진 과정이다. 역사가들 사이에선 그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의 수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2천 명의 식민지 주민들과 그보다 몇 배 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추정한다. 특히 원주민들은 대량 학살을 당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아무런 권리도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식민지 주민들이 많았다.
이러한 문화 파괴 행위는 일찍이 1856년에 발표된 한 글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당시 저널리스트인 에드워드 윌슨은 멜버른의 《아르고스Argus》라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섬뜩하기 짝이 없는 글을 실었다.

20년도 채 못 돼 우리는 지구상에서 그들을 거의 쓸어내 버렸다. 우리는 개들에게 하듯 그들에게 총질을 퍼부었으며.… 전체 부족들을극심한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그들을 술독에 빠뜨리고, 질병을 퍼뜨려서 성인들의 뼈를 썩게 하고, 그들의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슬픔과 고통을 겪게 했다. 우리는 그들을 그들 땅에서 쫓아냈으며 머지않아 전멸될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살벌한 장면은 19세기와 20세기 내내 진행되었다. 노골적인 학살이 멈춘 뒤에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1910년부터 학살에서 살아남은 원주민 가운데 아이들은 가족과 떨어진 채 백인 가정이나 국가 시설에 맡겨졌다. 두 경우 모두 강제적인 흡수와 동화가 그 목적이었다. 이 정책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중단됐는데 그때까지 소위 <도둑맞은 세대 >가 10만 명 이상을 헤아렸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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