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된 사람들을 수용하는 난민 캠프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본국에서 대립하던 그룹이 같은 장소에서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라이베리아 내전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이라는 지배 계층에 대해, 원주민인 크란족 출신 군인 새뮤얼 도(후일 대통령이 됨)가 무장봉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4년에 걸쳐 내전이 벌어졌고,
민족적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군벌이 등장하여 처참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2003년 내전 종식 후에도 이 민족 간 앙듬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고, 때때로 이 분쟁의 망령이 떠돌며 부두부람 캡프의 정치 역학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 P192

일반적으로 ‘인도적 지원‘의 대상인 난민은 수용국에서 ‘지원은 감사히 받고 불평은 하지 않는 피해자‘로 지낼 것이 요구된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권력에 순응하는 난민은 모범적인 ‘착한 난민(Good refugees)‘이며, 캠프를 총괄하는 측에 소중한 존재가 된다.
한편, ‘카운티 대표자 협회‘와 같이 소리 높여 자신들의 권리를주장하는 정치 활동을 하거나 하면 ‘나쁜 난민(Bad refugees)‘이라는 낙인이 찍혀 수용국 정부나 UNHCR과 멀어지게 된다.
난민이라는 ‘피해자‘가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는 행위이며, 하물며 수용국에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시위는 허용될 수 없는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난민의 정치 활동에 대한 UNHCR의 반응은 내게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본래 난민을 보호하고 이들의 권리를 수호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UNHCR의 스태프는 부두부람 캠프에서 일어난 일련의 시위를 보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UNHCR 스태프 중 한 명에게 2008년에 캠프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그 일은 몇몇 ‘불량한‘ 사람들이 다른 주민들을 선동해서 일어난 거예요. 우리는 시위를 해산하도록 수차례 경고했지만 그들은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 행위를 하면 가나 정부도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 P204

언론과 표현의 자유, 결사와 집회의 자유는 세계 인권 선언에도 명기된 기본적 권리로, 난민이 되었다고 해서 박탈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라이베리아 난민의 정치 활동에 대한 가나 정부의 극심한 탄압과 UNHCR의 냉정한 반응을 보면 난민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가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라이베리아 난민의 경제 활동이나 상업 활동에는 큰 제약이 있지만, 그럼에도 캠프 안에서의 활동은 허락된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어쨌든 안 돼!‘
라는 게 현실이다. - P205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가장 많이 머여드는 곳은 세간의 관심과 동정이 쏠리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 곳이다. 요즘 한창 심각한 상황에 놓인 시리아 난민의 대량탈출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장기화된 난민 상태‘는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말한다.
이미 이들의 피난을 받아 준 수용국에서 몇 년(혹은 몇 십 년)을보낸 난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거의 사라졌고, 기삿거리를 찾아 미디어가 찾아오는 일도 없다. 이들의 이야기가 미디어에 오르는 일은 그래 봐야 매년 6월 20일에 돌아오는 ‘세계 난민의 날‘ 즈음이 전부다.
그 결과 공여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축소되고, 그로 인해 수용국정부 또한 난민에 대한 지원을 줄여 갈 수밖에 없다.
현재 세계 난민의 약 90%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등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수용국은 난민 수용하는 한편, 공여국으로부터 받는 원조의 일부를 난민을 받아들인 지역 사회에 지원하는 식으로, 일종의 교환이 성립하게 된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난민을 둘러싸고 도상국인수용국과 선진국인 공여국이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여국의 관심이 떠난 ‘장기화된 난민‘에게는 지원을 모으기가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난민 수용국은 ‘원조받는 맛‘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 ‘거래‘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 P254

부두부람 캠프에서 생활하는 난민들은 앞서 말한 장기화된 난민 상태의 전형적인 사례로, 2003년 내전이 종결된 후 UNHCR과 가나 정부는 이들에게 본국으로 귀환할 것을 강하게 추천하고 있었다.
UNHCR은 2004년에서 2007년에 걸쳐 대규모 ‘라이베리아난민 본국 귀환 추진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이들을 조국인 라이베리아로 귀국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진행된 캠페인이었음에도, 프로젝트가 실시된 3년간 가나에서 라이베리아로 귀국한 난민은 2004년 당시 부두부람 캠프에 체류하던 4만 명의 25%인 1만 명 정도에 그쳤다.
대대적인 본국 귀환 추진 프로젝트가 별 소득 없이 끝나자,
UNHCR은 바로 차선책으로 ‘영구적 해결 방안‘의 하나인 ‘지역통합‘으로 초점을 옮겼다. ‘본국 귀환‘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라이베리아 난민을 현재 수용국인 가나에 정착시키는 것으로, 20년이나 지속되어 온 라이베리아 난민 문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나 정부는 당시 재정착프로젝트 후 잔류 중인 3만명의 라이베리아 난민을 ‘지역 통합‘으로 영구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에 난색을 표했다. - P255

UNHCR은 가나 국내에서 라이베리아 난민에 대한 비난이 가장 거세진 이 기회를 공교히 활용했다. 2007년에 이제 막 종료된 본국 귀환 추천 프로젝트를 재개하여 귀환하는 난민에게는 라이베리아까지 무료로 이동할 수 있도록 운송·교통 서비스를 지원했고,
한 명당 100달러의 지원금(이때까지는 난민에 대한 지원금이 1인당 고작5달러였다)을 약속하며 다시 한번 본국 귀환 추진에 나선 것이었다.
UNHCR은 가나에 머물고 있는 난민의 수가 대폭 감소하면 난민의 ‘지역 통합‘ 안에 대한 가나 정부의 태도도 유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심산으로, 캠프에 설치된 게시판을 통해 "이번 본국 귀환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각자의 미래에 대해 합리적인 결단을 내립시다."라며 난민들에게 재차 호소했다.
2008년 4월에 재개된 본국 귀환 추진 프로젝트의 접수 마감은처음에는 2008년 9월까지였으나, 이를 두 차례 연장하여 최종적으로는 2009년 4월까지 였다. - P257

‘캠프에서 나고 자란‘ 난민 2세, 3세들에게 라이베리아는 ‘낮선 나라‘가 되어 있었다. 한 번도 모국 땅을 밟아 본 일이 없는 이들의 눈에 UNHCR이 추진하는 ‘본국 귀환‘은 큰 모순으로 비칠 뿐이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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