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0만 명 ‘
이 숫자는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UN이 발표한 2017년 말 기준 세계 ‘강제 이주자‘의 총 인구수다. 강제 이주자란 난민, 난민(비호) 신청자, 국내 실향민 등을 말한다. 이들은 무력 분쟁, 내란, 박해, 자연재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나 국내외에서 피난 생활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이 숫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로, 4년 연속 과거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이 6,850만‘이라는 숫자는 일본 총 인구수의 약 절반에 해당하며, 영국의 총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다. 만약에 강제 이주자들을모아 한 나라를 만든다면 세계에서 21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강제 이주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 명가량이 난민이다.
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논의되는 경우가 잘 없지만, 난민 문제는 이 시대의 국제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문제 중 하나다.
난민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 P31

이와 같은 난민 문제에 대해 종종 오해를 사는 부분이 있다. 근래의 보도를 보면 ‘유럽 난민 위기‘나 ‘세계 난민 위기‘와 같은 말이 자주 보이면서 마치 세계의 난민들이 선진국으로 밀려드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는데, 유럽과 그 외 선진국에 갈 수 있는 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세계에는 2,5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있는데,
그중 90% 가까운 인구가 개발도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350만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는 터키를 시작으로, 파키스탄, 우간다,
레바논, 이란이 2017년 기준으로 난민 수용 규모 상위 5위까지 차지하고 있다. - P33

난민이 발생하게 된 나라의 절대다수가 개발도상국 으로, 보통 그 주변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난민 수용국이 됨과 동시에 그곳에
‘난민 캠프‘가 설치된다. 예를 들어 시리아에서 온 난민의 90%는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 레바논, 요르단에 체류하고 있다.
그리고,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대륙이다. 현재 세계에는 소규모를 포함, 모두 150곳에 가까운 난민 캠프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중 약 3분의 2가 아프리카대륙에 위치해 있다. - P35


라이베리아 내전 - 아프리카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분쟁
대서양에 접해 있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정도 이동하면 부두부람 난민 캠프가 위치한 고모아 지역(Gomoa District)이 눈에 들어온다.
부두부람 난민 캠프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는데, 라이베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그다음 해인 1990년에 라이베리아에서 피난 온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가나 정부가 설치한 시설의 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 라이베리아 내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바로 라이베리아라는 국가가 성립하게 된 매우 특수한 배경이다.
라이베리아는 미합중국의 해방 노예를 이주시키기 위해 1847년에 건국된 사실상의 미국 식민지였다. 이 이주 작업은 1822년부터
‘미국 식민 협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라는 단체의 주도로 시작되어, 당시의 토착 원주민들의 땅을 일방적으로 빌리는 형식으로 이곳에 해방 노예들을 보냈다.
‘라이베리아‘라는 국가명은 ‘해방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Liberate‘
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라이베리아의 수도는 해방 노예들이 이주하던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로(James Monroe)‘의 이름을 따 ‘몬로비아‘로 부르게 되었다. - P43

또한 미국으로부터 ‘귀환‘해 온 해방 노예를 ‘아메리코 라이베리안(Americo-Liberian)‘이라고 부른다.
선진국인 미국에서 온 해방 노예들은 라이베리아의 원주민을 멸시하고, 철저히 탄압했다. 소수파였음에도 신생국인 라이베리아에서 부를 축적하고 정치·경제를 장악하여 20세기 후반까지 이나라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수파 엘리트인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의 독재에 불만이 쌓이고 쌓여, 1980년 원주민 출신 장군인 ‘새뮤얼 도(SamuelDoe)‘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었다. 당시 라이베리아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톨버트(William Tolbert)‘를 암살한 새뮤얼 도는 스스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로써 100년 넘게 이어진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의 권력 독점은 일단 막을 내린 듯했다.
그러나, 원주민 출신 첫 대통령이라며 기대를 모았던 새뮤얼도는 유감스럽게도 한 나라의 지도자로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권력을 손에 넣은 새뮤얼 도는 노골적으로 친인척을 편애하고 자신의 출신인 크란족(Krahn)을 우대하면서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되었다. 결국 이 정권도 쿠데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89년 크리스마스에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출신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일으킨 쿠데타로 새뮤얼 도 정권은 붕괴되었고, 이 나라는 내전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 P44

라이베리아 내전은 아프리카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분쟁으로 일컬어지는데, 시에라리온이나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다른 서아프리카 국가들도 말려들었고, 분쟁은 14년간 계속되었다.
분쟁이 계속된 14년간 약 30만 명이 사망했고,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분쟁을 피해 주변국으로 피신해 난민이 되었다. 부두부람캠프에서 생활하는 라이베리아 난민의 대부분은 이 장기간 이어진 내전이 한창이던 때 탈출하여 가나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라이베리아 내전 자체는 2003년 정전 협정으로 끝이 보이는 듯했지만, 많은 난민들은 라이베리아에 돌아가지 않고 그 후에도 주변국에서 난민 생활을 계속했다. - P45

나는 2012년 난민연구센터에 합류했으며, 현재 전문 분야는 난민의 경제 활동에 대한 조사다. 조국을 떠나 그간의 생업을 잃게된 이들이 어떻게 언어와 법률, 사회 제도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생계 수단을 구축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연구 주제는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앞서 설명한 ‘난민 상태의 장기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난민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것은 이들이 분쟁 등으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비호를 구하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 단계일 때다. 이 시점에는 미디어 또한 적극적으로 난민의 고통을 보도하며 공여국도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난민들의 수용국 체류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원조국의 관심은 줄어들고, 지원도 더 이상 모여들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들에게는 ‘스스로의 수입원을 확보하여 국제 원조에 기대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된 생활‘을 영위할 것이 요구된다. 탁 터놓고 말하자면, "당신들을 도와줄 돈이 없으니 힘내서 스스로 알아서 살아요."라는 것이다. - P47

어딜 봐도 개업을 위해서는 상당한 자본금이 필요한 곳뿐이었다. 난민 기업가의 대부분은 앞서 만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존처럼 선진국에 가족이 있는 등 해외에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특권층‘에 속했다. - P104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UNHCR의 지원은 축소되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에 라이베리아 내전의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2005년에 내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가 평화적으로 실시되면서, 공여국의 관심은 난민 지원에서 내전으로 폐허가 된 라이베리아의 재건으로 옮겨 갔다.
연간예산의 대부분을 선진국의 자금 협력에 의존하는 UNHCR은, 결과적으로 라이베리아 난민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었다.
부두부람 캠프를 위한 예산이 축소되면서 UNHCR은 캠프의수도와 공중화장실 등의 서비스를 모두 유료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UNHCR은 이러한 기본 서비스에 대한 재정지원은 제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2만 명이 넘는 캠프 주민들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는 게 불가능했다.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난민 스스로 요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덧붙이자면 내가 캠프에서 머물던 때 공중화장실의 1회 이용료와 물 한 동이의 가격은 각각 5 페세와(약 40원, 100페세와=1세디)였다.
캠프에는 UNHCR이 설립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는데, 학비는 6학년 아이의 연수업료가 45세디(약36,000원), 중학교 3학년은 203세디(약162,400원)로, 현지 물가 수준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 P87

들쑥날쑥한 원조
이처럼 장기화된 난민 캠프에서 난민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생활을 꾸려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민 수용국의 정부로부터 협력을 얻지 못하는 경우는 더욱 큰 문제다.
가나 정부는 라이베리아 난민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며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는데, 특히 앞서 설명한 것처럼 노동 허가증 발급을 지체하거나 은행 대출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등 제도적 장벽을 통해 난민이 노동 시장에 유입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난민을 받아들인 고모아 지구의 경우, 지역 주민들도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 왜 자국민도 아닌 난민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것이 가나 정부의 입장이었다.
또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 원조‘를 둘러싼 국제기구의 복잡한 줄다리기 문제가 난민들의 경제생활을 한층 힘들게 하고 있었다.
난민 지원은 본래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인도적 지원의 가장 큰 역할은, 분쟁과 재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생존‘을 돕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제공되는 것은주로 물이나 식료품, 텐트, 약, 담요 등이다.
하지만 장기화된 난민 캠프에서는 이러한 인도적 지원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121

국제 원조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난민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도록 돕는 개발 원조지만, 이는 인도적 지원에 중점을 두는 UNHCR의 영역에서 벗어나 UNDP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UNDP는 난민 원조의 전반은 어디까지나 UNHCR의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에 UNDP가 난민의 경제 활동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은 없다.
부두부람 캠프에서도 UNHCR이 지금까지 몇 차례 난민의 경제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조직했지만 들쑥날쑥한 부분이 많아 실효성은 미미했다.
예를 들어, 2009년에는 난민 중 희망자에게 6개월간 전기 공사,
석공, 미장이, 재봉, 컴퓨터, 미용 등의 분야에서 직업 훈련을 제공했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UNHCR은 2003년 이후 마이크로 파이낸스 등 대출 프로그램의 운영을 중지했다(106쪽참조).
가나 금융 기관으로부터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하는 난민들은 새로운 직업 기술을 익히더라도 이를 실제로 비즈니스로 실현하기 위한 창업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난민을 위한 직업 훈련 프로그램 수강자 사이에선 이러한 현실을 자조하는 말이 있다.
"We were trained but not economically empowered.
기슬만 배웠을 뿐 경제적인 힘을 얻은 건 아니다.)" - P122

난민의 생계 수단 형성을 지원한다는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약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말이다.
여기에, 제1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장기화된 난민 캠프에 대한 공여국의 관심 또한 크지 않아 애초에 원조 자금 자체가 모이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조사 기간 중에 UNHCR 가나 사무소의 관리직 스태프들과의미팅 자리에서 캠프 빈곤층의 생활 상태가 너무나도 열악한 점을지적하고, 이러한 빈곤층에게 UNHCR을 포함한 국제기구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한 미국인 스태프가 다음과 같이 냉정하게 말했다.
"더 이상 여기(라이베리아 )난민들을 공여국에 ‘세일즈‘해 봐야 소용없어요 내전도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어느 공여국도 돈을 내지않을 겁니다. UNHCR도 곧 가나에서 철수할 예정이고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UNHCR은 2009년부터 2011년에 걸쳐 지원 프로그램을 하나둘 종료하고, 체류 중인 난민들에게 출신국인 라이베리아로 귀환하도록 적극적으로 권했다. - P123

경제 활동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같은 캠프에 사는 난민들 사이에도 상당한 경제적 격차가 존재하고, 생활 수준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차차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격차를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으로부터 ‘송금‘을 받는지의 여부였다. 개개인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빈부가 결정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하지만, UNHCR과 같은 원조 기구의 지원이 격감할수록 캠프에서 해외 송금이 갖는 영향력이 커져 가는 것을 목격한 난민들은 미국, 유럽 등에 대한 과장된 꿈을 꾸며 선진국으로의 이주를 갈망하게 되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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