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생이 깜깜한 밤중을 헤맬 것 아니냐. 저 하나만 그러고 마는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엄하고 혹독하게 서러운 굴레를 써야 하니,
불행히도 그런 사람을 선조로 둔 후손은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상고(上古)에서는, 살인한 죄인을 참수하고 그 처자를 몰수해서 노비로 삼었다는데, 백제에서는, 간음한 여자를 노비로 만드는 형법이있었다더라."
그러니 죄(罪)의 씨가 종인가.
이렇게 죄를 지어 그 벌로 한번 노비가 되면 그는 종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신분을 물려받은 신분 노예가 생기고, 또 다른 곳에서는 지은 빚 때문에 몸이 잡힌 부채(負債) 노예가 생겨났으며, 나라가 멸망하면서 끌려간 포로들이 노예의 멍에를 쓰기도 하였다.
또한 역모를 꾀한 자의 집안 가솔들도 공천(公賤) ·사천(私賤) 노비로 곳곳에 박히었다. 심지어 몹시 곤궁한 집에서는 제 가족을 노비로 팔기도 하였으며, 일반 양인(良人)의 붙이라 할지라도 어쩌다가족을 잃고 저 혼자 떨어져 궁글어 다니다가, 할 수 없이 누구네 종으로 주저앉는 경우도 있었다.
그 연유 곡절이야 어떤 것이든, 한번 사내종 노(奴)와 계집종 비(婢)가 되어 신분에 낙인이 찍히면 그들은 그날로 저의 주인 상전의 마소(馬牛)나 전답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세습되었다.
백 년, 이백 년이 아니고, 천 년, 이천 년만이 아닌 기나긴 세월을두고, ...... - P18

역사도 마찬가지야.
이미 지나간 시대, 죽은 자들의 넋두리라고 휴지처럼 구겨서 쓸어내 버리면 시간의 배설물, 한 더미 두엄만도 못한 것이 역사고,
그것이 몇천 년 혹은 몇백 년 전의 이야기일지라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근본이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역사지.
그러나,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야.
오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오늘의 ‘나‘다.
강태는 진진하게 말을 하다가 주먹 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펴자기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가리켰다.
"오늘은 역사가 될 현실이거든."
기차는 공중에 떠 강바닥을 드러낸 한내의 다리 위, 철교를 지난다.
나는 이상해. 왜 오늘이라는 현실, 현실이라는 오늘은 늘 그렇게 몽상적일까. 삶이 실감나지 않아요. 내 몸이 구체적으로 그 어떤 사건을 겪고 있을 때에도, 그것은 꼭 감각 없는 껍데기가 저 혼자 몽유하는 것 같고, 그 몽유 혼몽의 무감각 안쪽에 오히려 눈뜬 내가 또 하나 냉소로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으니, 그 두 사람이 서로 일치해 본 일이 나는 없어요.
유체(體)와 신체(身體) 사이.
그 중간에 나는 떠 있습니다.
"막막해요."
"무엇이 …?"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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