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부인의 침묵The Reticence of Lady Anne

에그버트는 널찍하고 어두컴컴한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때 그는 자기가 비둘기장에 들어가고 있는지 폭탄 공장에 들어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태도 각오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점심 식탁에서 벌어진 사소한 부부 싸움은 아직 확실한 결말이 나지 않았고, 문제는 앤 부인이 싸움을 재개하거나 그만둘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였다. 차 탁자 옆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의 자세는 좀 부자연스럽게 딱딱했다. 12월 오후의 어스름 속에서 에그버트의 코안경은 아내의 얼굴 표정을 분간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둘 사이에 놓인 냉랭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그는 희미한 종교적 빛에 대해 자기 소견을 말했다. 겨울이나 늦가을 오후 4시 반부터 6시사이에는 에그버트나 앤 부인이 그 말을 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것은 그들 결혼 생활의 일부였다. - P11

거기에 대해 특별히 정해진 대답은 없었고, 앤 부인은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돈 타르퀴니오‘는 페르시아 융단 위에 몸을 쭉 뻗고 누워서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언짢을 수도 있는 앤 부인의 기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혈통은 융단만큼 흠잡을 데 없는 순종 페르시아 고양이였고, 그의 목털은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여 보기 좋게 풍성해지고있었다. 고양이한테 돈 타르퀴니오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은 르네상스를 좋아하는 급사 아이였다. 에그버트와 앤 부인이었다면 플러프‘라고 이름을 지었을 테지만, 그들은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에그버트는 직접 차를 따랐다. 앤 부인이 먼저 침묵을 깰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또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베리아를 정복한 예르마크와 같은 노력을 해 보기로 했다.
"점심때 내가 한 말은 순전히 학문에만 적용되는 거야. 그런데 당신은 거기에 불필요하게 개인적인 의미를 덧붙인 것 같아."
엔 부인은 침묵의 방벽을 고수했다. 피리새가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에 나오는 가락으로 간격을 메웠다. 에그버트는 그 가락을 당장 알아들었다. 피리새는 그 가락밖에 부르지 않으며, 또한 애초에 그 피리새를 사온 것도 그 가락을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 P12

에그버트와 앤 부인은 좋아하는 오페라인 런던탑의 근위대에 나오는가락을 불러 주기를 더 바랐다. 그들은 예술적인 문제에서는 취향이 비슷했는데, 예술에서는 정직하고 명백한 그림, 예를 들면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그림을 좋아했다. 마구가 채워져 있지만 기수가 타지 않은 군마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안마당으로 들어온다. 안마당에는 기절하여 창백한 얼굴로 쓰러진 여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그림의 가장자리에 ‘나쁜 소식‘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으면, 그것은 어떤 군사적 이변을 설명하는 그림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분명히 암시해 주었다. 그들은 그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더 둔감한 지성을 가진 친구들에게 그것을 설명했다.
침묵이 계속되었다. 앤 부인의 불만은 4분 동안 예비적인 침묵이 계속된 뒤 분명히 표출되고 현저하게 유창해지는 것이 통례였다. 에그버트는 우유병을 집어 들어 돈 타르퀴니오의 접시에 우유를 조금 따랐다. 접시는 이미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지저분하게 넘쳐흐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리 와서 흘러넘친 우유를 핥아 먹으라고 에그버트가 호소하자 돈 타르퀴니오는 놀라움과 흥미가 뒤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흥미는 곧 스르르 사라지고 고양이는 일부러 모른 체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돈 타르퀴니오는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진공 카펫 청소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가 좀 어리석게 굴고 있다고 생각지 않아?" 에그버트가 쾌활하게 말했다. 앤 부인은 설령 그렇게 생각했다 해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 P13

"아마 잘못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나한테 있을 거야." 에그버트가 말을 이었지만 쾌활한 태도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인간일 뿐이야. 당신은 내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아."
그는 사티로스의 피를 이어받아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염소라는 암시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 점을 강조했다.
피리새는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에 나오는 가락을 다시 부르기시작했다. 에그버트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앤 부인은 차를 마시고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몸이 찌뿌듯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이 찌뿌듯할 때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앤 부인의 버릇이 아니었다.
"내가 소화불량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무도 몰라." 이것이 그녀가 즐겨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소화불량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무도 그녀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정보량은 연구 논문 한 편을 충분히 쓸 수 있을정도로 어마했다.
분명히 앤 부인은 몸이 찌뿌듯한 게 아니었다.
에그버트는 자기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는 양보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벽난로 앞에 깔아 놓은 융단으로 걸어가서 돈 타르퀴니오에게 자리를 좀 비켜 달라고 설득하여 최대한 깔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나서 말했다.
"내가 책임을 져야 마땅한지도 몰라. 그렇게 해서 상황을 좀 더 행복한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고 기꺼이 약속하겠어." - P14


과연 그게 가능할지는 좀 의심스러웠다. 중년에 접어든 뒤 그에게도 이런저런 유혹이 다가왔다. 하지만 모두 집요하거나 강렬하지 않은 일시적인 유혹뿐이었다. 그 유혹은 12월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못한 푸줏간 아이가 새삼 희망을 가질 이유도 전혀 없는데 2월에 그리스마스 선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여자들이 1년 내내 광고 매체를 통해 사도록 강요당하는 생선용 나이프와 모피 목도리를 살 마음이 전혀 없는 것처럼 그런 유혹에 굴복할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래도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그 잠재적인 죄를 이렇게 자진해서 포기하는 것은 꽤 감동적이었다.
앤 부인은 감동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그버트는 안경을 통해 신경질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내와의 말다툼에서 지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독백에서 지는 것은 처음 맛보는 굴욕이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가겠어." 그는 의도적으로제 목소리가 약간 엄격하고 단호한 울림을 띠게 했다.
문간에서 결국 마음이 약해진 그는 한 번 더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말 어리석게 굴고 있지 않아?"
에그버트가 나가고 문이 닫혔을 때, 돈 타르퀴니오는 속으로 ‘바보!‘
하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앞발을 허공으로 들어올리더니, 피리새 새장 바로 밑에 있는 책꽂이 위로 가볍게 훌쩍 뛰어올랐다. 그가 새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사실 녀석은 오랫동안 공들여 세운 행동 방침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실행하고 있었다. 자신을 절대 군주로 여겼던 피리새는 갑자기 몸의 배기량을 평소의 3분의 1로 줄였다. - P15

그런 다음 무력하게 날개짓을하면서 새된 소리로 울었다. 새장을 뺀 그의 몸값은 27 실링이었지만,
앤 부인은 전혀 개입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죽은 지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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