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아주 빨리 달려야만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
만약 다른 곳에 가려면 여기서보다는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 P15

나는 두 켤레를 오리건대학교 시절 나의 육상 코치인 빌 바우어만 코치에게 보냈다. 바우어만 코치는 내가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도록 해주신 분이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일본에서 보내온 신발을 보냈다. 바우어만은 천재적인 코치이자 동기부여의 대가로, 젊은 선수들을 가르치는 데 타고난 지도자였다. 그는무엇보다 젊은 선수들의 기록을 향상시키는 결정적인 도구는 신발이라고 믿었다. 그는 인간이 신고 다니는 신발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나는 오리건대학교에서 4년 동안 육상 선수로 뛰었는데, 당시 바우어만 코치는 로커룸에 들어와 선수들이 신는 신발을 몰래 가져가기로 유명했다. 그는 며칠 동안 선수들의 신발을 뜯어서 개조하고는 다시 꿰매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바우어만 코치가 개조한 신발을 신고 더 빨리 질주할 때도 있었지만, 발에서 피가 날 때도 있었다.
바우어만 코치는 결과에는 상관없이, 신발 개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발의 발등 부분을 떠받치고 중창midsole. 신발 바닥을 더 두껍게 하기위해 안창과 결창 사이에 삽입한 창 -에는 쿠션을 대고 앞발에는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의 신발을 좀 더 날렵하고 푹신하고 가볍게 만들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특히 신발을 가볍게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마일- 1.6킬로미터을 달릴 때 신발이 1온스-28그램만 가벼워져도 55 파운드킬로그램의 충격 완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계산은 정확했다. 보통 선수가 6피트- 183 센티미터의 보폭으로 달린다.
면, 1마일을 달릴 때 880 스텝을 밟게 된다. 각 스텝에서 1온스를 덜어 내면, 정확하게 55파운드가 나온다. - P68


판매 전략은 간단했다. 그리고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나는 몇몇 스포츠용품점에서 거절당하고는 여보게, 세상에 흔해빠진 게 운동화야!", 북서태평양 연안을 누비고 다니면서 육상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은 모조리 찾아다니기로 결심했다. 나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코치, 선수, 팬 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가져온 신발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반응은거의 똑같았다. 나는 주문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포틀랜드로 차를 몰면서 림버 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마일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 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 P86

1962년 - 미친 생각
1963년 - 성공할 수 있을까?
1964년 · 자동차에서 신발을 팔다.
1965년 - 자기자본 딜레마
1966년 · 말보로 맨과의 전쟁
1967년 · 신발에 미친 괴짜들
1968년 - 나의 파트너, 팍스 나이트
1969년 . 사장으로 산다는 것
1970년 · 현금, 현금, 현금이 필요해
1971년 - 부도 위기, 그리고 나이키의 탄생
1972년 - "우리의 방식, 아이디어, 브랜드로 승부합시다"
1973년 - 프리폰테인 정신 :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어라
1974년 - 오니쓰카와 결별하다.
1975년 - 돌려막기 인생
당신은 슈정을 깬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1976년-버트레이스:나이키가 문제를 해결하는 법
1977년-에어 쿠션,스포츠스타, 미국 판매가격
1978년-급격한 성장,그리고 좌충우돌
1979년-내부의 적과 중국이라는 기회
1980년-결승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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