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1월 종전 3기념일, 소수의 지도자들이 미국이 전례없이 엄격하게 정한 국제 질서를 수용하고자 워싱턴디시에서 처음으로 보였다. 위싱턴 해군회담에서 국력은 전함을 기준으로 측정되었고, 트로츠키가기조롱하듯 내뱉은 말에 따르면 ‘배급식량‘처럼 분배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의 모호함도 국제연맹 규약의 당혹스러움도 없어야 했다. 전략지정학적 힘, 즉 해군력의 분배는 10:10:6:3:3의 비율로 결정되었다. 상위는 영국과 미국이 차지했다. 두나라는 도처의 공해에 해군을 주둔시킨 진정한 세계 강국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일본은 한 대양에만, 즉 태평양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해양 강국으로 세 번째 위치를 얻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대서양 연안과 지중해에 국한된 강국으로 전락했다. 이 다섯을 제외하면 어떤 나라도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과 러시아는 회의 참여국으로 고려되지도 않았다. 전략적인 군사력이 오늘날의 핵무기보다 더 엄격하게 억제되는, 모든것을 포괄하는 국제 질서, 바로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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