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폭력성은 세상을 바꾸는힘이 되었다. 1918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은 유라시아의 옛 제제국과 합스부르크제국, 오스만제국을 박살냈다. 중국은 내전으로 격동에 휩싸였다. 1920년대 초, 동유럽과 중동의 지도는 바뀌었다. 그러나 이렇게 확연한 변화는, 극적이고 또 논쟁의 여지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지지만 더 깊은 다른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완벽한 의미를 획득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새로운 질서가 출현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질서는, 신생국들의 다툼과 민족주의적 시위를 뒤로하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러시아, 미국 같은 강대국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조짐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1919년의 평화협정은 유럽사에서 중세 말부터 시작된 주권국의 자결권 논리를 강화하는 것 같았다.
19세기에는 이 논리에 따라 발칸반도에서 새로운 국민국가들이 건설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이 통일되었다. 그 논리는 오스만제국과 러시아제국, 합스부르크제국의 해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권국가가 늘어났지만 내실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모든 유럽 국가는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가장 강력했던 국가도, 승전국도 마찬가지였다.
1919년 프랑스 공화국은 베르사유의 태양왕 궁전에서 독일을 무찌르고 거둔 승리를 축하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세계적 강국으로서의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19세기에 세워진 작은 국민국가들에는 한층 더 깊은 상처가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