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하는 미군의 눈초리도 두려운 줄 모르고 한걸음에 숲으로 들어간 할아버지는 쉽게 동굴 입구를 찾아냈다. 라이터 불에 의지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수습하지 않은 유골이나 유품들이 아직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벽에 남아 있는 까만 그을음이 화염 방사기에 의한 것임은 나중에 얘기를 듣고 알았다. 동굴 깊이는 기억 속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제일 안쪽까지 들어가 목덜미의 땀을 닦으려고 뜨거워진 라이터 불을 끄고는 어둠 속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이 동굴 속에 가족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지고 아려 왔다. 불을 켜고 닥치는 대로 돌을 제쳤다. 단지는 그대로 있었다. 바위틈에 아버지가 숨겨 두었을 때와 똑같이, 주변에 탄 자국이 남아 있는 기름종이와 탄화된 끈을 벗겨 내고 그을린 나무 마개를 뽑았다. 일순 꽃향기가 풍겨 나왔다. 그뿐이었다. 단지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차디찬 단지를 껴안고 어둠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부모 형제의 얼굴 모숩도 이젠 어렴풋하게만 생각났다.
"잊어버리지 마라."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