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설립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립대학을 세우는 것이 모순이며 그 과정도 비민주적이라는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서울대학교의 설립은 결국 인가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지식을 담당하던 일본 제국대학의 ‘법문학부‘는 미국식 교양학부를 변용한 ‘문리과대학‘ 이라는 새로운 제도로 바뀌었다.
실증주의와 함께 근대적 학문을 대표한 두 축 중 하나였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이 대거 월북한 상황에서, 진단학회 및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문리과대학의 핵심을 장악했다.
제국의 지방학으로 수행되었던 ‘조선학‘은 새로운 국민국가의 동질적 자아를 형성하는 규범적 지식인 ‘한국학‘으로 변모했다.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8월 10일, 서울대는 맥아더 장군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 1호를, 곧이어 하지 충성이게 2호를 수여했다. 1949년에 수여된 3 호 명예법학박사는 이승만이었다. 이러한 박사학위 수여 순서는 당대의 권력관계를 투사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신생 서울대와 그것이 생산할 지식이 냉전의 세계지리 속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할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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