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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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심란하고 슬펐으며 가벼운 회한을 느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 젊은 여인은 그와 함께 있는 동안 행복해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친절했고 진심을 다했지만 그녀를 대하는 그의 목소리와 애무에는 가벼운 조롱, 그리고 나이가 거의 두 배나 많음에도 행운을 거머쥔 사내의 거친 오만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결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분명히 그녀에게는 그의 진짜 모습을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엔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얼마간 속였다는 뜻이 된다...... - P31

감정이 격해져, 그리고 두 사람의 삶이 그토록 애처로운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에 그녀는 울었다. 마치 도둑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비밀스럽게 만날 수밖에 없다니! 이런 삶이 파멸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 P53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어루만지며 농담을 건네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느새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늙고 추해진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손을 얹은 어깨는 따듯했고 가볍게 떨고 있었다. 그는 이 생명에 연민을 느꼈다. 아직은 이렇게 따듯하고 아름답지만 분명 머지않아 그의 인생처럼 퇴색하고 시들기 시작할 것이다. 어째서 그녀는 이토록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 P54

이 참을 수 없는 속박에서 어떻게 하면 해방될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며 그는 물었다. "어떻게?"
그러자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아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끝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힘겨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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