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사람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 못하는 사람
(성석제 산문집, 문학동네, 2019)

예전에 성석제 작가님의 산문집 [소풍](성석제, 창비, 2006)을 읽고 글이 맛깔난다고 생각하여 작가님의 글을 더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말 못하는 사람]은 인터넷 서점에서 보고 발간 되었을 때 사두긴 했는데, 이사할 때 책을 고향집에 가져다 놓은 바람에 그만 2년 반이 지나서야 펴보게 되었다.... 아마 같이 샀었던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는 다음에 집에 내려갈 때나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1부 ‘기억‘에서는 어릴 적, 대학시절, 사회 초년생의 젊을 때 기억에 대한 글, 2부 ‘편력‘에서는 작가로서의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3부 ‘바라봄‘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바라본 사회 곳곳의 풍경들과 단상, 4부 ‘내가 만난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한 추모글들이 실려 있다.

1.
산문집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부분은 소설 <첫사랑>의 배경과 비슷한 부분을 본 책의 ˝나는 변두리에서 왔다˝라는 글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다.

.....
생각하면 나는 이제까지 대체로 변두리에서 살아왔다. 나는 변두리에서 태어나 변두리에서 자라 변두리에 살며 변두리를 이루어왔다. 내가 어딘가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내 출발점은 언제나 변두리었다.(104쪽)

내 머리 위로는 굴뚝 연기가, 키 높이로는 먼지가, 신발 밑에는 수채가 흘렀다. 쓰레기는 언제 어디서나 무차별적으로 쌓이고 구르고 채이고 불타고 있었다. 수챗물은 수평으로, 연기는 수직으로, 먼지는 아래위로 옆으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이 유동했다. (중략) 아침저녁으로 서로에게 무심한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씩 같은 길을 전진했다. 무심한 제복을 입고 무심히 번호를 받아 분류되었다가 무심하게 공장 같은 학교, 공장 같은 집으로 갔다.(106쪽)
.....

성석제 작가님의 이런 반복적인 가락이 좋다. 반복되는 표현으로 눈에 그려지듯 묘사하는 점이 글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2.
표제작인 ˝말 못하는 사람˝은 말을 심하게 더듬는 인쇄소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컨대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이 그의 인생에 일부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126쪽)‘ 그가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또 그는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허튼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었다. ‘말을 잘 못함으로써 누구보다도 말을 잘하는 사람(128쪽)‘이 된 것이 이 이야기의 교훈이겠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생각한 점은 그의 지위가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점이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직원들이 항상 귀 기울여 들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미담이 된 것은 그가 지닌 인품이 훌륭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3.
˝볼륨을 낮춰라˝에서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다닌 이야기와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단상이 나온다. 학교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는 생기(生氣)의 극치이지만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
표정 역시 극단적이고 몸짓도 과격하다. 텔레비전 드라마 안에서는 애 어른의 구별도 없고 모조리 중학생인 것처럼 느꼈다면 과장일까.(166쪽)

살아남으려면 재미있어야 하고 뭘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눈에 띄어야 한다는 논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시끄러우면 볼륨을 낮추면 되고 아예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167쪽)
.....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와 쇼와 가요 프로그램들에 대한 재미 있는 묘사가 많아 더욱 웃으며 읽었던 글이었다. 이제는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라 한다.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시선을 끌기 위해 ‘몸짓과 색깔은 현란해(166쪽)‘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럴 때일 수록 잘 듣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 겠다는 자기 반성도 해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