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김하나 지음 / 콜라주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_나는 내 말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하지 않도록 꽤나 열심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생각지못한 부분이 남아 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하다. 말은 생물이어서 말과 말을 둘러싼 맥락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나는 힘닿는 한 업데이트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2020년의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나는 'X신' '귀X거리' '벙X리' '절름X이' '앉은X이' 같은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장애인 혐오 표현이기 때문이다.(190쪽)

 

이 책에 실린 산문 중에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말들'이라는 글의 일부분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말이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방향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부지불식 간에 내뱉은 말로 상처를 준 적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우리에게는 끊임 없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윗글을 읽고 떠오른 일이 있다.(사람은 재미있게도 내가 상처를 준 기억보다 상처 받은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인용한 글 중에서 'X신'은 표현은, 나에게는 유난히 뾰족하게 느껴지는 단어이다. 어릴 때 장애인인 가족과 함께 단둘이 있을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곧잘 듣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어른이 되어서인지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어릴 때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직장에서 나이가 엇비슷한 직장동료가 자기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여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일로 마찰이 있었고 화해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그 단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그 단어가 나에게는 아픔이라는 말은 끝끝내 하지 못했다. 괜히 예민하다는 말을 들을까봐여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관계를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혐오 표현을 사용했던 것처럼, 나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을지. 그 사람 또한 나처럼 아픈 속을 참고 넘겼을 지 말이다.

나는 내 말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하지 않도록 꽤나 열심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생각지못한 부분이 남아 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하다. 말은 생물이어서 말과 말을 둘러싼 맥락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나는 힘닿는 한 업데이트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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