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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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처럼 스러져가는 마을의 꿈

딩씨 마을의 꿈(2006, 옌렌커, 김태성, 자음과 모음)

딩씨 마을은 인구가 다 합쳐서 팔백 명도 안 되고, 전체 가구가 이백 호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이 책의 화자는 이미 죽은 열두 살의 소년으로 이곳에서 지난 십 년동안 마을이 등불처럼 스러져간 일을 할아버지가 꾸는 꿈과 함께 풀어나간다.

1부는 세 가지 꿈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 있는 '꿈'이 어떤 양상의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책을 모두 읽은 후 다시 1부를 읽으면 3가지의 꿈이 어떤 꿈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부의 세 가지 꿈의 비유를 지나 2부에서는 12살 소년의 화자가 할아버지의 꿈과 마을의 과거를 뒤섞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옛 가치(혈족)을 지키려는 할아버지 딩수이양과 재물을 탐하는 아버지 딩후이는 둘 다 화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직계존속)이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또한 소설 내내 대립하지만 인연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을 아끼는 것도, 아버지가 도시로 떠난 뒤에도 다시 마을에 계속 들리는 것도 마을이 '딩씨' 마을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2부에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갈등이 시작된다. 처음 시작에는 상부의 명으로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매혈을 장려하였지만 비양심적인 매혈로 인하여 큰 돈을 번 이는 아버지 딩후이이다. 이에 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마을사람 앞에서 개두를 하며 아버지 또한 개두(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예법)와 죽음으로써 마을사람들에게 사죄하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립도 있지만 병에 걸려 욕망에 솔직해져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미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순간의 사랑(둘째 삼촌과 링링)을 탐하기도 하고, 옛날의 영광에 자나 깨나 집착하기도 한다(관인에 집착하는 리싼런). 도둑질로서 재물을 탐하거나 병에 걸리지 않은 가족에게 버림 받기 싫어 발버둥치기도 한다. 이러한 이기심은 죽은 뒤 땅에 묻히는 '관'에서도 드러나는데, 남은 것이 다가올 죽음 밖에 없는 사람들은 마을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의 물건(책상, 칠판)을 분배하며, 삼촌과 링링의 화려한 무덤을 도굴하기까지 이른다. 이야기 초반 추자희를 공연하는 마샹린의 그림을 무덤에 넣어주거나, 잃어버린 관인 대신 새로운 관인을 리싼런의 관에 넣어주며 죽은 이의 넋을 달래주던 인간적인 모습은 이야기 후반에 이르러 아버지의 손에 의하여 남은 사람들의 욕망으로 탈바꿈 된다. 이야기의 화자인 12살 소년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화려한 관과 그림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마을을 떠나기 싫어하는 영혼의 절규에서 앞서 할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죽은 이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버지는 처음 할아버지가 권유한대로 개두를 하는 대신 끝없이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고 중간에서 돈을 빼돌려 부를 축적한다. 마을 사람들 몇몇이 진실을 알고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나 결국에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 것을 댓가로 자신의 이익을 탐한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혈족이기에 쉽사리 아버지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 또한 할아버지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할아버지의 제자들이며 '딩씨' 마을에 속해있는 먼 친척이나 다름없기에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여기서 다시 1부로 돌아가 세 가지 꿈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서 관원장은 포도나무(마을)에서 포도주(피)를 짜서 파라오(정부)의 잔에 채운다. 두 번째 떡 맡은 관원장의 꿈에서 관원장은 세 광주리 중 파라오(정부)의 것인 가장 위의 광주리에 담긴 떡(재물)을 새(아버지 딩후이처럼 중간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긴다. 세 번째 파라오의 꿈은 동일한 내용의 꿈을 두 번 반복한다. 살찌고 아름다운 암소 또는 곡식(순박하고 아름답던 삶)이 흉악하고 파리한 암소 또는 곡식(열병으로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삶)에게 전부 잡아먹히는 꿈이다. 파라오는 처음 불길한 꿈을 꾸고 깨어났다가 다시 잠에 들지만 암소가 이삭으로 변했을 뿐 아름다운 것이 흉악한 것에게 삼켜지는 것을 무력하기 다시 보았을 뿐이다. 1부의 꿈 이야기는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끝나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조금 다르다. 할아버지가 텅빈 마을로 돌아왔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잠이 든 할아버지가 꾸는 딩씨 마을의 마지막 꿈은 쏟아내리는 소나기에 튀어오르는 흙방울처럼 생명력이 가득하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꿈의 존재 의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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