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세탁소

 

            이찬

 

 

 

          길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세탁소에 들려야 한다 지나온 길들

          을 빨아야만 길 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길들을 만나는 일은

          죄를 짓는 밤 길들에게 죄를 짓는 밤은 세탁소의 신부에게 고

          해성사를 하는 아예 육체를 다시 헹구어야 하는 불안의 밤이

          다 불안의 밤을 세탁소에 맡겨 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의 몸

          에 악착같이 달라붙은 길들의 먼지 먼지들의 영혼을 다림질해

          야 하는 것이다 길의 세탁소는 늘 불안히 깜박거리고 네온의

          침들을 질질 흘리고 있다 길 안의 영혼 길 밖의 세탁소에서 너

          무 오래이 맡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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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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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2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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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이진명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빛 하늘누리 백합미소 한빛자리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하

      지요?)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앉아서마늘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완전 부엌 냄새 집구석 냄새에 김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었죠

        암만 하늘할애비라도

        마늘짓쪄 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근데 그들이 엄지를 세우고 와 박수를 치는 거예요

        완전 한국식이 세계적인 건 아니고 인디언적인 건 되나 봐요

        이즈음의 나는 부엌을 맴돌며 몹시 슬프게 지내는 참이었지요

        뭐 이즈음뿐이던가요 오래된 일이죠

        새 여자 인디언 '앉아서마늘까'였을까요

        마룻바닥에 무거운 엉덩이 눌러 붙인 어떤 실루엣이 허공에 둥

      떠오릅니다

        실루엣의 꼬부린 두 손쯤에서 배어나오는 마늘 냄새가 허공을

      채웁니다

        냄새 매워 오니 눈물이 돌고 줄 흐르고

 

 

 

        인디언 멸망사를 기록한 책에 보면

        예절 바르고 훌륭했다는 전사들

        검은고라니 갈까마귀 붉은구름 붉은늑대 선곰 차는곰 앉은소

      짤막소......

        그리고 그들 중 누구의 아내였더라 그 아내의 이름 까치.....

        하늘을 뛰어다니다 숲속을 날아다니다

        대지의 슬픈 운명 속으로 사라진 불타던 별들

 

 

 

        총알이 날아오고 대포가 터져도

      '  앉아서마늘까'는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을 깝니다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옵니다.

 

 

 

                                                 -이진명 詩集, <세워진 사람>에서

 

 

 

 

 

  詩를, 부침개 한 장 받아서 먹듯( 재료들의 뒤섞임과 휘저음, 간과 기름과 후라이팬과 불의 공존으로 완성되는 그 부침개 한 장의 공덕으로,)

 읽는다.

 고양이가 열심히 구르밍을 하듯,

 아이가 흙에다 그림을 그리고 하늘을 한 번 보다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 또 내일을 꿈꾸는 일처럼,  개별적인 삶의 포옹.

 세상이 새해를 앞둔 갖가지 포즈로 분주하다.

 얼결에 어수선해진 나도 ,

 이럴때,  '앉아서마늘을까'면 참 좋겠다.

'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을 까면',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오겠구나

 나의 인디언식 이름은,  '곰에게생선을' ? 아니면 좀더 희망적으로, '당신이걷고또걸으면'이나 '날아가는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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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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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2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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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남았고 끝까지 찾아주는 누군가도 생겼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

 지난 1년 지나보니 잔치의 연속이었다.

 마음으로 춤을 추면서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바라봐주고 손을 잡아 줄거라는 희망도 생겼다.

 이제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가려 한다.'

 

 

 좀 전에 어느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 노숙인과 함께 춤을 추는 까닭은?' 이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서울발레시어터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전이, 자립의 기틀을 잡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 '빅이슈'라는 노숙인 자립잡지를 파는, 다섯 명의 노숙인들에게 자신의 재능기부로 직접 발레를 가르치고 ' 서울발레시어터 성탄특별 프로그램 호두까기 인형'의 공연을 한 이야기다.

 

 '자기 몸은 다이아몬드보다 제일 중요합니다'

 

 종일 서서 잡지를 팔며 재활의 꿈을 일구는 그들에게 몸을 위한 자유와, 마음의 치유와 향상을 이끌어내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정말 충만했다.

 무엇보다, 무엇인가를 상대의 처지나 사회적 위치를 떠나서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향하는  '공감하는 자'의 '동행'을 만나서이다.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에는

'홀로 족한 자'와 '공감하는 자'가 나온다.

'홀로 족한 자'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하게 자신만 만족하면 되는 사람이고, '공감하는 자'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사람이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그런데 오늘 태어난 아기는  '홀로 족한 자'일까, 아니면 '공감하는 자'로 이 세상에 왔을까 다시금 되새기는 밤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희망'이라는 얼굴을 마주 바라보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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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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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2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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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낡은 나무 창틀은 겨울이 오면 심하게 운다. 냉기를 막아 보려고 커다란 김장용 비닐을 통채로 창문에 덮어 본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다란 비닐이 오르락내리락 숨을 쉬고, 야심한 겨울의 밤, 나는 창가 앞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영화를 본다. 발이 시려 의자 위로 발을 모아 올리고 생강차를 마시며 나루세 미키오의 오래 전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낯선 나라의 옛정취가 그리 먼곳에 있지 않다. 흑백의 사각 프레임 안에 그 시절의 골목이 보이고 영화는 사라질 샤미센과 미싱소리를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이나 자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를 보다가 이제 이런 영화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니,

'영화의 중요한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아닐까'

또 한번 아쉬움이 스친다. (133쪽) /옛날 영화.

 

 

해 질 녘, 정확히 조니 하트만의 'I see your face before me' 가 흘러 나오고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춤을 출 때부터가 좋다. 적당히 영화를 모니터에 띄워 놓고 적당히 볼륨을 올려놓으면 방안에 음악이 넘친다. 창문으로는 앞 건물 유리에서 반사된 누런 빛들이 들어온다. 빛은 흩어져서 방 전체에 일렁인다. 노래를 해치지 않을 만큼 두 배우의 숨소리와 낮은 대화소리가 들린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영화는 계속해서 낮게 읇조리거나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 옆에 같이 누울 누군가가 있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혼자 있다면 영화가 끝나기전 낮잠에 돌입하는 것이 좋겠지.(136쪽)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나도 영화를 '들으며' 즐길 때가 있었다. 중학교 때는 영화를 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서, 라디오로 영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밤 9시면 라디오에선 이선영의 <영화음악실>이 흘러 나왔고, 난 할머니 집에서 몰래 가져온 복음성가 테이프에다 영화음악을 녹음했다. 녹음방지 탭 부근을 휴지로 틀어막은 채, 영화 <백야>의 주제곡이나 <실버라도>의 배경 음악 등을 녹음 한 후 듣고 또 들었다. <영화음악실>은 금요일에는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소개해 줬는데 내가 가장 사랑한 시간이었다. 이불 안에 누워 존 맥티어난의 <다이하드>를 들으면, 나긋한 목소리가 긴장 넘치게  영화의 서스펜스를 전달했다. 난 머릿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브루스 윌리스를 그리며 테러리스트와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숨죽이며 경청했다. 나중에 친구 집에서 비디오로 <다이하드>를 보게 됐는데, 상상과 실제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눈으로 본다는 것에 감동에 눈물이 돌 정도였다.

시각화의 예술인 영화를 귀로 듣는다는 건 매력이 있었다. 나도 가끔 본 영화나 만들 영화를 주위에 들려주곤 하는데, 들은 것이 더 낫다는 평가를 들을 때면 난감해지곤 한다. (149쪽) / 듣는 것이 낫다.

 

 

영화가 편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누구에겐가 편지를 보내고, 읽혀지기를,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는 것. 그러한 목적이 살아 있을때 영화도 살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고단한 여정에 아랑곳 없이 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되어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기도 한다.

긴 죽음의 시간. 만약 시네마테크가 그러한 영화들의 마지막 숨결을 불러 일으키고, 다음 세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그 영화가 아직 살아 있다는 이야기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어떤 이에게 도착한 편지처럼, 우리 앞에 당도한 영화인 것이다. 죽은 영화들은 그렇게 살아 있고 시네마테크에는 수취인불명의 은밀한 편지들이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151쪽) /아네스 바르다의 <방랑자>와 시네마테크.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기억밖에 없다.

   영화는 잊혀질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리셋.

   다 떼어버렸으니 새로 시작해야지.

   말끔하게 떼어버렸으니 나는 새로 산 다이어리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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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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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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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카타리나 부부께서 성탄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금일봉이 든 봉투도 함께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무지무지 춥습니다. 오늘밤 눈이 내리면 내일은 더 추울 것 같습니다. 어제는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 찜질방 티켓을 많이 나눠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시는 고마운 분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지난 해에도 성탄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성탄 캐롤이 울려 퍼집니다.

벌벌 떨면서 밥을 접시에 담는 우리 손님의 모습과 묘한 대조가 됩니다

 

 

가난한 어머니는 마을에서 방 한 칸 구하지 못했습니다. 
짐승들이 사는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가난한 어머니에겐 젖마저 부족합니다.

 

                  -민들레 국수집, 민들레소식. 12/24일,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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