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이진명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빛 하늘누리 백합미소 한빛자리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하
지요?)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앉아서마늘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완전 부엌 냄새 집구석 냄새에 김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었죠
암만 하늘할애비라도
마늘짓쪄 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근데 그들이 엄지를 세우고 와 박수를 치는 거예요
완전 한국식이 세계적인 건 아니고 인디언적인 건 되나 봐요
이즈음의 나는 부엌을 맴돌며 몹시 슬프게 지내는 참이었지요
뭐 이즈음뿐이던가요 오래된 일이죠
새 여자 인디언 '앉아서마늘까'였을까요
마룻바닥에 무거운 엉덩이 눌러 붙인 어떤 실루엣이 허공에 둥
떠오릅니다
실루엣의 꼬부린 두 손쯤에서 배어나오는 마늘 냄새가 허공을
채웁니다
냄새 매워 오니 눈물이 돌고 줄 흐르고
인디언 멸망사를 기록한 책에 보면
예절 바르고 훌륭했다는 전사들
검은고라니 갈까마귀 붉은구름 붉은늑대 선곰 차는곰 앉은소
짤막소......
그리고 그들 중 누구의 아내였더라 그 아내의 이름 까치.....
하늘을 뛰어다니다 숲속을 날아다니다
대지의 슬픈 운명 속으로 사라진 불타던 별들
총알이 날아오고 대포가 터져도
' 앉아서마늘까'는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을 깝니다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옵니다.
-이진명 詩集, <세워진 사람>에서
詩를, 부침개 한 장 받아서 먹듯( 재료들의 뒤섞임과 휘저음, 간과 기름과 후라이팬과 불의 공존으로 완성되는 그 부침개 한 장의 공덕으로,)
읽는다.
고양이가 열심히 구르밍을 하듯,
아이가 흙에다 그림을 그리고 하늘을 한 번 보다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 또 내일을 꿈꾸는 일처럼, 개별적인 삶의 포옹.
세상이 새해를 앞둔 갖가지 포즈로 분주하다.
얼결에 어수선해진 나도 ,
이럴때, '앉아서마늘을까'면 참 좋겠다.
'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을 까면',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오겠구나
나의 인디언식 이름은, '곰에게생선을' ? 아니면 좀더 희망적으로, '당신이걷고또걸으면'이나 '날아가는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