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십 세에 처음으로 문단이란 데 얼굴을 내밀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 나이에 등단을 한다는 게 희귀한 예에 속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나이에 소설을 쓸 엄두를 냈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어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심심해서 글을 썼노라고 대답했다. 그게 그냥 기사화되자 뜻하지 않은 야단을 맞게 되었다. 문학이라는,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엄숙한 작업을 어떻게 심심풀이로 할 수 있느냐는 준엄한 전화 설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직 신인인 나는 말 한마디의 잘못으로 세상에 밉보이는 게 두려워 덮어놓고 사과부터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잘못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전쟁 중에 결혼해서 두 살 터울로 아이를 다섯씩이나 난 여편네가 언제 심심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을 위해 24시간 봉사해야 하는 생활로부터 어느 정도 놓여나 비로소 자기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생긴 걸 그렇게 말한 거였다. 그때까지 나는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심심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유년의 시간이 칠십 평생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의 넉넉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심해서 베개를 업고 자장가를 불렀고, 게딱지로 솥을 걸고, 모래로 밥을 짓고, 솔잎으로 국수를 말았다. 할아버지가 송도 나들이를 가신 날의 해질 무렵처럼 심심한 시간이 또 있을까. 그때 나는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재촉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사랑 툇마루 가운데 기둥을 한 팔로 감고 동구 밖 산모롱이에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밤이면 승냥이가 떼를 지어 나온다는 긴등고개를 넘을 때면 무서움과 할아버지의 무사를 비는 마음으로 가슴이 오그라져 붙는 것 같다. 할아버지를 따라 동구 밖까지 다 왔는데도 산모롱이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소리개

 

고개 쯤으로 할아버지를 후퇴시킨다. 이렇듯 내 어린 날의 심심한 시간은 내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초중고등학교 때도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은 넘치게 많았다. 심심한 시간이 넉넉해서 소설이나 시집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읽을거리까지 넉넉한 건 아니어서 정 심심할 때는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요즘 애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더러 들리는데, 심심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학교 성적과 무관한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그건 괜히 한번 해보는 걱정일 뿐 어른의 진심도 아니다. 아이들은 심심할 시간은 커녕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돌아가는 팽이와 다름없다. 자의로 도는 팽이는 없다. 자식이 행여 한눈이라도 팔세라 온종일 미친 듯이 채찍질 해대면서 책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P.214~217 )

 

 

 

                                                                   -박완서, <노란집>-에서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솔솔 부는 이 가을, '엄마의 휘모리장단'이라  제목을

    붙인 따님 호원숙님의 서문처럼, 박완서 선생님께서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쓰신 글들을 모은 책, <노란집>을 읽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친 미사어구도, 유난한 기교도 없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박완서 선생님

    다운 "내가 겪고 깊이 느낀 것 밖에는 잘 쓰지 못한다. 내가 죽도록 현역작가이고 싶은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신 말씀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 책을 읽으며 참으로 즐거웠다.

    박완서 선생님의 육신은 비록 이곳을 떠나셨지만, 그분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히...우리가 어떻게 잘 살아야 할 것 인가,를 마치 곁에 앉아 조근조근 말씀해주시는 듯

    하다. 그리고 더불어 이철원 화백의, 글과 꼭 어울리는 아름다운 삽화도 참 좋다.

    유난히 지독한  여름을 견디고 지낸...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추석선물로 주고 싶은

    차분하게 마음을 놓게 하는 그런 책이다. 초가을의 어느 좋은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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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9-07 14:25   좋아요 0 | URL
느긋하게 지낼 적에는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은
보드라운 맛을 즐겨요.
곧, '심심한' 맛이 되겠지요.

일본영화 <녹차의 맛>처럼 '심심하'면서
차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바란
박완서 님 늘그막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appletreeje 2013-09-08 06:45   좋아요 1 | URL
예~그러셨으리라 생각되요.
<녹차의 맛> 참 좋은 영화지요. ^^

비로그인 2013-09-07 15:50   좋아요 0 | URL
<노란집>에서 박완서 님은 '심심함'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트리제님은 노란 종잇장(옐로우 페이퍼?ㅋㅋ)에 그 말씀을 아주 삼삼하게 적어놓으셨고...

심심하면 좋겠습니다,정말로요. 어디 무인도에서 굶어죽게 되더라도..
아니 아니 다시 말 바꿀게요. 그런 데 혼자 떨궈놓으면 무서워서 단 1초도 심심하지 않겠단 생각이..ㅎㅎ

appletreeje 2013-09-08 06:51   좋아요 1 | URL
옐로우 페이퍼...ㅋㅋ
정말 요즘 세상은 좀처럼 '심심하기'가 어려운 듯 해요.
심심할 수 있다는 것은 느긋할 수 있다는 의미일텐데...
저도 무인도에 혼자 가는 것은 무서워요~~ㅎㅎ

안녕미미앤 2013-09-07 22:51   좋아요 0 | URL
에이요! ^^ 잘 있었어요? 헤헤~~ 박완서님의 이 이야기는 다 아는 글이었는데 또 읽으니 또 좋네요 헤헤 나 약속했던 거 얼마나 기다렸어요? 많이 기다려줬음 좋겠다 생각도 했었는데 나 넘 이기적이라고 싫어할거에요? 실은 기다려줬음해서 늦은 건 아니구(나 그렇게까진 안 나빠요^^;) 좀 바빴어요 아프기도 했고.. 그런데 그날 날씨가 뭐 날릴만한 날씨가 아니었던것 알아요? 헤헤 그냥 패키지만 했어요^^ 그래도 뿌듯했답니다^^ 어느 탈북하신 분 간증도 듣고.. 완전 기적적이더라구요, 정말.. 놀라움^^ 음음~~ 다음에 또 소식 전할께요^^ 뿅~^^*

appletreeje 2013-09-08 06:57   좋아요 0 | URL
왕~~안녕미미앤님! 잘 지내셨지요~?^^
그럼요, 8월 24일 거사. 많이 기다렸지요~날씨도 그랬던 것도 알구요.^^
패키지만 하셨어도 참 잘 하셨어요!! 어떤 마음인지 다 잘 아니까요.
이궁..아프셨구나...바쁜 건 좋은 일이지만, 아프지는 마시길 바래요...
언제나 착하고 예쁜 안녕미미앤님!
늘 즐겁고 행복한 날들 되시길 바라며, 빨리 또 만나요~*^^*

안녕미미앤 2013-09-12 00:32   좋아요 0 | URL
왕~~ 감사해요!ㅠㅠ
 

 

 

 

 

   오늘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서울시에서 '헌책방 지도'를 만들었다고 서울 도서관 누리집에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가 나와 있다는 글을 읽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헌책방 '책 백화점'엘

   다녀왔다. 상계역 1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눈앞의 약국 지하라 찾기가 너무 쉬웠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빽빽하게 책이 쌓인 좁은 통로를 지나 비닐막이 쳐진 입구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어서 오세요~"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 한 사람이 겨우 지날만큼의 통로 사이에서

   주인장의 얼굴은 여전히 안보이다, 또 서가를 하나 돌아가니 50대 후반의 주인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니 "어떤 책 찾으세요?" 하신다.

  " 예~구경좀 해보고요~" 여쭙고 또 좁은 서가를 돌아가 보았다.

 

 

 

 

    

 

 

 

    가장 먼저 관심있게 눈에 띄인 미술서가에서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와 화집들을 열심히 펼쳐보

   고, 그 다음으론 바로 앞 서가에 있는 그림책들을 반갑게 이 책 저 책 펼쳐보다 몇 권을 고르고

   시집들이 꽂힌 서가도 보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그래도 요 몇년 전의 눈에 띠는 소설이나 산문집

   도 보였다.

 

 

 

 

 

 

 

   헌책방은 어렸을 때, 을지로 평화시장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들을 다니고는 그후론 아주 드물게

   가보곤 정말 실로 오랫만이라...느낌도 새롭고 헌책들이 솔솔 풍기는 헌책냄새도 기분좋게 맡으

   며 책들을 고르는데 오늘은 첫날이라 그런지 너무 많은 책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골라야할지

   도 막연했고, 아주 좁은 통로에 의자 하나 없어 한 시간 쯤 고르려니 다리도 좀 아파오고, 그리고

   책정가를 알 수 없었는지라. 오늘은 그냥 그림책만 다섯 권 고르고, <느림보 2011>이라는 느림보

   에서 나온 4호 크기의 180쪽 짜리 책도록을 한 권 사 가지고 나왔다.

 

 

 

 

 

 

 

 

 

 

 

 

 

 

   참, 도날드 달의 '맛'이 입구에 있길래 값을 물어보니 6000원이라 해서 왠지 좀 센듯하여 그냥

   두고. 주인 아주머니의 말씀이 이 헌책방은 19년이 되었는데 교통이 편하고 찾기 좋은 곳은

   책방 임대료가 높아 점점 헌책방들이 줄어가고 있다 하시며, 자주 놀러오라 하셨다.

   함께살기님 덕분에 이젠 '헌책방'의 '아름다운 진정한 의미'를 하나 둘 알아가고, 즐거운 나들이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덕분에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에 대한 글을 올려주셔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잘 다녀왔다.  

 

   역시 '헌책방'에 가서 오래된 책들을 펼쳐보고 고르는 일은

   '새책방'에서 새로 나온 빠릿한 책들을 고르는 맛과는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헌책방'도 '새책방'도 '알라딘 중고서점'도 다 좋다.

   그곳이 어디든 책이 있는 곳이라면~ㅎㅎ

 

 

 

   오늘 우선 맛보기로 사온 그림책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오래된 안경 속에 숨어 있는 핏줄간의 따뜻함과 손때가 묻은 물건이 풍기는 정겨운 향기를 맡게끔 하는 그림동화이다. 어떤 강요나 직접적인 설교보다는 조그만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쓰여졌고,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사실적인 삽화들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개구쟁이 해리-바다 괴물이 되었어요》는 해리가 가족과 놀러 간 바닷가에서 한바탕 벌이는 소동을 재미있게 그려 내고 있다. 해리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가족의 파라솔과 아이들이 만든 모래성에 들어가지만 금방 쫓겨난다. 그래서 뚱보 아줌마의 널찍한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지만, 결국엔 그마저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 더위에 지친 해리는 몰아친 파도에 휩쓸려 온 바닷말을 뒤집어쓰고 바다 괴물로 변신하게 된다!
바닷말을 뒤집어쓴 해리가 귀여운 강아지가 아닌 바다 괴물로 오해를 받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물이나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싫어하는 해리를 위해, 그리고 또다시 길을 잃을 경우 가족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리를 닮은 파라솔을 준비한 해리의 가족. 다음 해에 바닷가로 놀러간 온가족이 해리와 함께 커다란 파라솔 아래에서 쉬고 있는 모습에 아이들은 함께 기뻐할 것이다. 가족 간에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시인 백석이 시와 동화를 하나의 틀 속에 조화시켜 낸 동화시.'귀머거리 너구리', '개구리네 한솥밥', '집게네 네 형제'등 4편이 실렸다. 평등하고 올바른 세상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시인이 쓴 글답게 우리말의 리듬과 운율이 아름답다.

한국 어린이 문학의 대표 작가들의 동화를 모아 놓은 '빛나는 어린이 문학' 시리즈로, 지난 2000년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다.

 

 

 

 

 

 

 

 

100년 전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그 때도 학원이나 학교가 있었을까? 요즘처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오락기는 없었을텐데, 지겹지 않았을까? 그 때 아이들은 간식으로 무엇을 먹었을까? 어린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아니 어린이날이 있긴 했었나?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길어진다.

서양인과 일본인이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과자, 빵, 케이크 같은 새로운 음식이 유행하게 되고, 양말, 석유 램프, 양잿물 같은 새로운 생활품도 등장하게 되었다. 전화와 전기, 전차도 이때 들어왔다. 이런 눈부신 변화 속에서 조선은 암흑의 시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변화와 쇠퇴하는 국운이라는 서로 상반된 요소가 급격히 뒤섞이던 100년 전, 변화와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은 밝게 자라났다. 사극 속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은 어린이의 생활이나, 교육, 놀이 문화에 대해 다룬 책. 10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책표지에는 4-4 오수민, 이라고 연필로 이름이 적혀 있다~)

 

 

 

 

 

 

 

 

쌍둥이 남매는 도시 생활을 하며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쌍둥이 남매를 따라 농장을 지나 늪으로 가면서, 마치 생태 현장학습을 하듯 자연스럽게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쌍둥이가 메뚜기를 잡으려다 흠칫 놀라는 장면이나, 조랑말이 물까 봐 먹이를 주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 등에서는, 실생활 속에서 자연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낯설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비가 왜 오는지, 비가 오면 동물은 어떻게 피하는지, 무지개는 어떻게 생기는지 등 어린이들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호기심을 그림과 이야기, 정보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서 풀어 주는 그림책이다.

 

 

 

 

 총 5권을 15,500원에 샀다.

 손글씨 영수증도 받았고, 다음에는 상봉역의 '좋은책 많은데'를 다녀와야겠다.~

 새로운 이번 가을은 내게 아마 서울의' 헌책방 나들이'로

 더욱 한층 풍성하고 즐거운 가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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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7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09-05 20:09   좋아요 0 | URL
품절되거나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찾는 즐거움에다가,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잊고 지나간 책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또 여러 가지 아름다운 웃음을 베풀어 주는 헌책방 나들이
틈틈이 즐겨 보셔요.

저는 서울 시내 헌책방을 머릿속에 다 담아 놓았기에
어디를 가든 꼭 들르는데,
약속이 있어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그곳 둘레에도 헌책방 있나?' 하고 살피면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돌아보면,
동무한테 선물할 재미난 책도 만나곤 한답니다~

appletreeje 2013-09-07 08:15   좋아요 0 | URL
예~그래야겠습니다~
벌써부터 함께살기님께서 일러주신
헌책방 나들이에 무척 설레고 즐겁습니다~
감사드려요. ^^

블루데이지 2013-09-06 09:23   좋아요 0 | URL
아~너무 멋스러운 나들이를 하셨네요^^

appletreeje 2013-09-07 08:14   좋아요 0 | URL
즐거운 나들이였어요~
책들의 또 다른 세계!
블루데이지님께서도 기회되시면
인근의 헌책방 함 나들이 해보셔요~*^^*

보슬비 2013-09-06 17:04   좋아요 0 | URL
가까운곳에 헌책방이 있었네요. 서울에서 헌책방하면 청계천 헌책방만 떠올랐는데, 헌책방이 근처에 있다는것이 무척 신기해요.

'개구쟁이 해리'는 나무늘보님이 올려주신거 말고 다른 책으로 제가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할때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어요. 귀여운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시리즈였었나보네요.^^

appletreeje 2013-09-07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막연하게 언제 헌책방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 헌책방이 있어서 신기하고 좋았답니다~
이제 첫나들이를 했으니까 차례차례..즐거운 나들이 하려구요~^^

저도 '개구장이 해리'는 한참 전에 '목욕은 정말 싫어요'를 즐겁게 읽었는데
이번에 또 이 '바다괴물이 되었어요'를 보고 반가워서 얼른 집어왔어요.
언제 기회되면 '해리: 꽃무늬 옷은 싫어요'도 꼭 읽고싶어요.^^
 

 

 

 

 

 

                          수종사 뒤꼍에서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서 오는 작은 강물과

                        작은 강물이 만나 흘러가는 큰 강물을 바라보았어요

                        서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몸을 합쳐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온 삶을 풀어놓다가

                        그만 똑! 똑! 나뭇잎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눈물에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는 나뭇잎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 다짐하며

                        수종사 뒤꼍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서 뒤돌아보니

                        나무 밑동에 단정히 기대고 있는 시든 꽃다발

                        우리는 수목장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거였지요

                        먼 훗날 우리도 이곳으로 와서 나무가 되어요

                        나무그늘 아래서 누구라도 강물을 바라보게 해요

                        매일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  (P.11 )

 

 

 

 

 

 

                       염소 브라자

 

 

 

 

 

                         북쪽에서는 염소가

                         브라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웃으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먹어야 하니까

                         젖을 염소 새끼가 모두 먹을까봐

                         헝겊으로 싸맨다는 것이다

 

                         나는 한참이나 심각해졌다가

                         그만 서글퍼졌다

                         내가 남긴 밥과 반찬이 부끄러웠다  (P.22 )

 

 

 

 

 

 

                        속빈 것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

                          가수 김태곤이 힐링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

                       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P.63 )

 

 

 

 

 

                                                        -공광규 詩集, <담장을 허물다>-에서

 

 

 

 

 

 

 

 

 

 

 

 

경계와 구분을 지우는 무소유의 충만함

1986년 등단 이후 줄기차게 자본주의 현실의 모순을 강렬한 언어로 비판해온 공광규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담장을 허물다]가 출간되었다. 전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를 통해 치열한 현실 비판의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양생(養生)의 시학'을 모색한 시인은 5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순정하고 투명한 서정"(유성호, 해설)이 깃든 웅숭깊은 내면적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통찰과 예지로, 진부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구"하며 "광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이재무, 추천사)가 어우러진 견결하고 단아한 시편들이 삶의 그늘 속에 희망의 언어를 지피며 따뜻한 감동과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201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자 표제작 [담장을 허물다]를 비롯하여 진솔한 삶의 체험 속에서 일구어낸 45편의 시를 수록했다
.

 

 

 

 

어젯밤, 잠자리에 들다 문득 생각했다.

이번 가을엔 아주..조용히...천천히 살아야겠다고.

우리집 민달이처럼, 그렇게 예쁘고 즐거운 산책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좋아하는 프란치스코 회관에 가면, 정동 길거리에서

맑은 소리 나는 오카리나 두 개 사서, 그대와 나 둘이 오카리나 불며

정답고 환하게 웃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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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9-04 10:36   좋아요 0 | URL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목청을 거쳐
언제나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나요.

우리는 누구나
'몸 악기'가 있답니다.

가을볕 즐거이 누리는 하루 되소서~

appletreeje 2013-09-05 05:4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께서는 언제나 즐거이 노래 부르시지요!!
저도 그렇게 즐겁게 아름다운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알케 2013-09-04 19:57   좋아요 0 | URL
아...시 좋네요. 공광규 시인...시집 한권 사야겠습니다. <염소 브라자>..아픈 시.

appletreeje 2013-09-05 05:46   좋아요 0 | URL
예, 알케님. <염소 브라자>를 읽다가 마음이 얼얼했습니다..
염소도 사람들도...다...

블루데이지 2013-09-04 20:13   좋아요 0 | URL
저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배달된 공광규시인 시집 받았어요!
읽기전에 appletreeje님 서재에서 맛보기 시 세편!
더 이 시들이 좋아져요!

appletreeje 2013-09-05 05:47   좋아요 0 | URL
저도 떨리는 마음으로 블루데이지님과 함께 이 시집을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더욱 기쁘고 좋은지요~!!

블루데이지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보슬비 2013-09-06 17:09   좋아요 0 | URL
'염소 브라자' 읽는 순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작가인 셸 실버스타인의 시가 하나 생각나서 웃었어요. (그 시에는 낙타 혹에 브라자를 채웠는데... ^^;; 삽화와 시가 재미있는 시랍니다.)

그런데 저도 읽다가 아기 염소들에게 미안해졌어요... ㅠ.ㅠ

appletreeje 2013-09-07 08:06   좋아요 0 | URL
아 셸 실버스타인의 시에 그런 시가 있었군요~^^
궁금하고 읽고 싶은 책이네요~
염소 브라자, 참 슬픈 시예요...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며 읽었다. 시종 유쾌하고 진지한 이 책을, 나 역시 유쾌하고 진지하고 즐겁게 읽었다. 책과 사람들, 책벌레 세계의 슬로푸드 운동,같은 책이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보슬비님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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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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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06: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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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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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열세 번째 에도 시대물을 펴내며 잠시 감개가 무량해진, 이 책의 편집자인 마포 김 사장의 후기가 아니더라도, 에도시리즈는 내게도 언제나 따뜻한 즐거움을 주었다. 200년 전의 에도시대에는 작은 사람들과 요괴들까지도 서로를 도우며 살았다. 부디 지금 이 세상도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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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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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0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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