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 밑으로 아씨들의 등이 보인다. 비스듬하게 붙은 몸이 위로 가 있어 작은 아씨보다 큰아씨가 조금 더 커 보인다. 그래서 큰아씨다. 자리에 앉을 때 방석을 괴어 수평을 맞추는 이유는 엇갈려 붙은 옆구리 때문이다. 작은아씨는 큰아씨, 작은아씨라고 하면 언니 동생이 된 것 같다고 불만이 많다. 다소곳이 머리를 붙이고 두런두런 속삭이고 있다. 어쩐지 세상에 둘만 남은 것처럼 외로워 보인다. 둘은 사이가 좋을수록 가련해 보이고 성미를 부리며 툭탁거릴때는 완전하게 독립된 두 사람으로 보인다.
아씨들이 해주의 이씨 집안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교동 사모님에게서 들어 알고 있다. 아씨들이 얄밉거나 측은하거나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아 섭섭할 때면 사모님이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소곤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흙구덩이 밖으로 포대기가 보였다지. 애기 둘이 요래 붙어 있는데 희한하게 울지도 않더란다. 생년월일하고 출생지를 넣어두고. 도대체 왜 아그들을 묻어버렸을꼬. 남의 집 대문 앞에나 놓을 것이지. 고추가 달렸나 포대기를 벗겨보고는 사람들이 놀라 자빠졌지. 기함을 했을 거라."
아가들의 움푹 들어간 눈가에는 붉은 흙이 소복했다고 한다. 흑범벅이 된 이불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아기들은 젖은 흙투성이였는데 속싸개에 수놓인 목숨 수(壽)자의 바늘땀만은 정갈하고 촘촘했다. 젖을 물려주던 목사관의 유모는 어린것들의 기형적인 몸보다 속싸개에 정성껏 새긴 수(繡) 때문에 가슴이 아렸다고 한다. 그 어미는 왜 그리 독한 마음을 먹었을까, 괴물을 낳았다고 얼마나 자책했을까, 나날이 묵직해지는 쌍둥이를 품에 안을 때면 그 어미 생각에 마음마저 묵직해지더라 했다.
해주에서 평양을 거쳐 경성에 정착하는 동안 아씨들은 여러 집을 전전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창씨개명까지 해야 하는 처지라 이름은 더 늘어날 판이다. 아씨들은 별칭처럼 불리던 이로니, 이디시라는 이름을 제일 마음에 들어한다. 그와 유사한 발음으로 조선식 이름이 이동희, 이덕신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젖은 책더미 사이에서 작은아씨의 이디시 공책이 끼어 있다. 다행히 하나도 젖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남의 험담이나 신세한탄을 글로 적어 마음을 정화하는 비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이디시라고 했다. 아씨들의 양어머니가 가르쳐준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불쏘시개를 하라고 아궁이 앞에 획 던져놓은 공책을 행여 탈세라 내가 고이고이 간직해두었다. (P. 52~54)
가장 자주 등장하는 큰아씨에 대한 글은 세세하기가 돋보기로 땀구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저애 귀에서 냄새가 난다. 곱게 지적을 해줬으나, 화를 내며 얼굴을 저리 치우라고 한다. 붙었는데 어찌 치울 수가 있나. 툭하면 몽상에 빠져 멍해진다. 골똘하게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는다. 괜히 운다. 요상한 목소리로 주절주절 혼잣말을 한다. 머리가 돌았다. 본인은 재미난 이야기를 꾸며내느라 그렇다고 변명을 하지만 명백히 미친 거다. 몸통이 아닌 머리로 연결이 되었다면 같이 미칠 뻔했다. 어째서 나는 이런 아이와 붙어 있는가. 어째서 나는. 내 몸은 왜." (P.55)
내가 띄엄띄엄 글자를 읽기 시작하던 어느날, 작은아씨는 연필과 갱지를 내 앞에 내 주었다. 필기도구만 보면 글을 익히느라 아씨들에게 혼쭐이 났던 생각에 겁부터 더럭 났다. 사양을 하는 내게 아씨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도 글을 적어봐. 속상하다고 아궁이 앞에서 눈물 짤짤 흘리지 말고 속 시원하게 종이에 써보라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다 풀어내. 어찌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은 다 이디시란다. 분해서 써내려간 것이지. 이렇게 쓰는 건 속을 풀어내는 굿 같은 거란다." (P.55~56)
툇마루에 앉아 마늘을 까면서 아씨들에게 내 이야기를 슬금슬금 털어놓았다. 반지르르한 마늘을 쏙쏙 까면서 내 껍데기도 하나씩 벗어던졌다. 아씨들은 한숨을 쉬다가 배를 잡고 웃었고,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도리질하다가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며 내 얘기를 살뜰하게 들어주었다. 하룻밤으로는 부족해 연 닷새 동안 눈물 콧물을 쏟으며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빨래터에 가질 않아 묵은 빨래에서는 쉰내가 진동을 했고 망석에 늘어놓은 무말랭이는 비를 맞고 썩어버렸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마치 작두를 탄 것처럼, 폭포처럼, 용암처럼 속엣말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반은 미친 듯이 굴었다. 눈물이 마르자 이야기도 말라버렸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고 하자 작은 아씨가 한참만에 입을 뗐다.
"우리가 너의 공책이 되어주었구나." (P.56~57)
오늘도 아씨를 만날까 하여 종일 서서 기다렸다. 아씨들 생각이 날 때마다 이 거리로 온다. 아씨를 본 탓인지 보문동에서 종살이를 하던 때가 부쩍 떠오르는 요즘이다. 단장을 짚은 아씨는 글을 쓰는 사람이란다. 변하지 않는 용모에 걸맞은 직업이라, 실낱같은 믿음이 점차 두툼해졌다. 아씨와 마주쳤던 날, 어머니를 보내놓고 도로 이곳에 왔었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계단 주위의 가게를 돌고 돌았다.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인중에 검은 기름을 묻힌 사내가 단장을 짚은 여자를 안다고 했다. 인쇄소에는 교정 때문에 들렀을 뿐 연락처는 모른다고 했다. 그가 전해주는 이름은 전혀 낯선 것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아씨의 걸음새는 몹시 휘청거리고 뒤뚱거렸다. 묘하게도 재봉가위로 잘라냈던 인형이 생각났다. 인형의 몸통에서 빠져나온 솜과 메밀껍질들. 얼기설기 꿰맸던 서투른 바늘땀까지 문득문득 떠올랐다.
"귀신이 옆구리에 딱 붙은 걸 그 여자도 알 거라. 죽은 걸 붙이고 다니니 걸음새가 그 모양이지. 글이란게 다 귀신 목소리 아니가. 귀신이 옆에서 술술 불러주는 대로 글을 쓰고 있을 거라."
내가 만난 아씨는 이로니일까, 이디시일까. 둘 중에 무엇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어머니의 말이 허무맹랑한 것 같아도 귓전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꼭 그럴 것 같았다. 둘은 붙어 있다. 혹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건 아닐까.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다.
어쨌든 아씨를 다시 만나면 내가 살아온 얘기부터 들려줄 것이다. 예전처럼 미칠 듯이 한풀이를 하고 싶다. 내 인생을 가지고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라고 떼를 쓸 것이다. (P.66~67)
"이름은 약속이고 신호이고 가면이며, 농담이고, 은유면서, 거울이지. 그리고 존재의 이로니야. 이로니." (P. 48)
- 명지현 소설, <이로니, 이디시>/ 문학동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