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주제로 한 식사 1

 

 

 

 

              이를테면 길은

              스파게티처럼 포크에 감아 먹을 수도 있지

 

 

              먼 갈래로 쏟아진

              여름 뜨거운 길들 위에

              검붉은 태양이 쏟아져 꿈틀거리듯

              뜨거운 스파게티 국수 위에

              검붉은 소스를 끼얹어 먹는 거야

              저것 봐. 그녀가 스파게티를 먹다 말고

              냅킨을 접어 무언가 끄적거리고 있잖아

              너무 뜨거운가봐 눈물까지 머금고 있네

              그녀가 앉은 프라이데이 창문 밑으론

              이 밤, 붉은 국수 가닥 같은 자동차길

              누군가 그 길을 포크에 감아 먹고 있나봐

              길이 자꾸만 어디론가 끌려들고 있잖아

 

 

              아아, 이렇게 길이 엉켜들고 있을 땐

              천천히 혼자 스파게티를 먹는 거야

              높은 창문 아래 프라이데이 식탁에 앉아

              수많은 세기를 기다려

              바람이 산등성이를 깎아먹듯

              모래가 바다를 마셔버리고 드디어

              붉은 소스가 칠해진 모래 접시만 남듯

              그렇게 용암처럼 붉은 소스를 끼얹어 꿀꺽 삼키는

           거야

              먼 그를 그녀가 먹듯 그렇게    (P.90 )

 

                                         -김혜순 詩集, <불쌍한 사랑 기계>-에서

 

 

 

      일 때문에 자료정리를 하다 이 詩를 만났다.

      시를 읽다 보니 별안간, 뜨거운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

      용암처럼 붉은 소스를 끼얹어 꿀꺽,

      그렇지, 길은 때론 스파게티처럼 포크에 감아 먹을 수도 있겠지.

      오늘 저녁 메뉴는  뜨겁고 붉은 스파게티를 해야 하겠다.

      붉은 샹그리아 몇 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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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1-17 20:31   좋아요 0 | URL
시인은 참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하는것 같아요.

'뜨거운 스파게티'라는 글을 읽는 순간 먹고 싶었는데,
뜨거운 길을 읽는 순간 냄새나는 아스팔트가 떠올라 갑자기 식욕을 잃었어요. ^^ㅋㅋ

뜸금없지만 혹시 짜구리를 드셔보신적 있으신가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건데 맛있어요. 아쉽다면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서 최소 2인은 있어야한다는거죠. ㅎㅎ

appletreeje 2013-01-18 00:23   좋아요 0 | URL
ㅋㅋ, '냄새나는 아스팔트가 떠 올라 갑자기 식욕을 잃었어'요에 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해 먹었어요~^^

짜구리는 안 먹어 봤는데요~~낼 친구집 약속이 있는데 가는 길에 꼭!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사서 둘이 '짜구리'를 해 먹으려구요~~보슬비님이 맛있다하시니,분명히 맛있을 거예요~~감사합니다.좋은 레시피 주셔서요.ㅎㅎ

보슬비님! 좋은 꿈 꾸세요~`^^

이진 2013-01-17 23:49   좋아요 0 | URL
시가 참 좋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름아니라 김혜순의 시였군요.
길의 스파게티라... 뭔가 생각하고 싶은데 지금 군대 만화를 보고 온 터라 머릿속에 군대군대군대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흑흑

appletreeje 2013-01-18 00:29   좋아요 0 | URL
ㅎㅎ~~이진님! 김혜순 좋아하시죠? '당신의 첫'의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군대는 아직 멀으셨으니, 지금은 이진님께서 행복한 일만 생각하세요.^^

소이진님!! 좋은 밤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