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주제로 한 식사 1
이를테면 길은
스파게티처럼 포크에 감아 먹을 수도 있지
먼 갈래로 쏟아진
여름 뜨거운 길들 위에
검붉은 태양이 쏟아져 꿈틀거리듯
뜨거운 스파게티 국수 위에
검붉은 소스를 끼얹어 먹는 거야
저것 봐. 그녀가 스파게티를 먹다 말고
냅킨을 접어 무언가 끄적거리고 있잖아
너무 뜨거운가봐 눈물까지 머금고 있네
그녀가 앉은 프라이데이 창문 밑으론
이 밤, 붉은 국수 가닥 같은 자동차길
누군가 그 길을 포크에 감아 먹고 있나봐
길이 자꾸만 어디론가 끌려들고 있잖아
아아, 이렇게 길이 엉켜들고 있을 땐
천천히 혼자 스파게티를 먹는 거야
높은 창문 아래 프라이데이 식탁에 앉아
수많은 세기를 기다려
바람이 산등성이를 깎아먹듯
모래가 바다를 마셔버리고 드디어
붉은 소스가 칠해진 모래 접시만 남듯
그렇게 용암처럼 붉은 소스를 끼얹어 꿀꺽 삼키는
거야
먼 그를 그녀가 먹듯 그렇게 (P.90 )
-김혜순 詩集, <불쌍한 사랑 기계>-에서
일 때문에 자료정리를 하다 이 詩를 만났다.
시를 읽다 보니 별안간, 뜨거운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
용암처럼 붉은 소스를 끼얹어 꿀꺽,
그렇지, 길은 때론 스파게티처럼 포크에 감아 먹을 수도 있겠지.
오늘 저녁 메뉴는 뜨겁고 붉은 스파게티를 해야 하겠다.
붉은 샹그리아 몇 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