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전성시대
먼 옛날에는
호(號)나 자(字)를 썼었지
지금은 에스엔에스나
아이디에 별칭이 따로 있지
나의 닉은 무엇이라 지을까
한참을 궁리하다
힘든 세상이라
강호의 웃음을 잃지 않는,
소림강호(笑林江湖)라 지었지
강이나 호수의 물을 퍼담지는 못해도
냉수 한 사발 뜰
그릇 하나는 간직하며,
인형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
중심을 지키는 모습되기
가상의 공간,
세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얼굴 없는 영혼의
전성시대
실명에 금이 가지 않도록 (P.13 )
국수를 말다
나이 숫자만큼 면 가락을 빼내어
냄비에 붓고 휘젓는다
공기와 힘의 회전이 생명이다
얇은 국수가 성질도 얇진 않을 거란 생각을 한다
쫄깃한 인생과 퍼진 생이 한순간이다
국수처럼 길고 가늘게 먹는 생활이
한밑천이라 한다
재빨리 넘어가는 것은 국물이다
살다보면
국물의 힘도 밑거름이지
얇지만 긴 그것이 얼마나 힘이 있으랴
백합처럼 하얗게
익은 국수가 센 입김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그 생애만큼 엉키고 감겼던
인생들을 읽어본다
구수한 향만 나지 않았으리라
뜨거운 물과 찬물을 오가야만
오묘한 끈기를 내는 맛,
그렇구나, 그렇구나
생(生)은 국수처럼
뜨거움과 차가운 것이 서로
교차하는 탱탱한 줄다리기구나 (P.14 )
-임낙균 외 지음,<닉네임 전성시대>-에서
책머리에
<시와 여백〉 동인들의 엔솔로지가 어느새 6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는 동인들이 『시문학』과 『문예 감성』 등의 문예지를 통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온 결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세월을 짚어보니 동인들의 작품 활동이 주로 탈경계의 담론으로 전개되어 온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탈경계.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만 보아도 이제 무역협정이 국가 간, 지역 간의 경계를 넘어 탈경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세계가 ‘경계-탈경계-경계-탈경계’ 등으로 새롭게 묶여져 감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 머니 은행 등이 생기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의 경계가 새롭게 재편되고, 전문 영역 간의 탈경계가 이루어지면서 문학에서도 탈경계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중간 소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탈장르화가 진행되면서 시에 소설적인 스토리와 대사, 수필적인 산문율, 희곡적인 구성이 원용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시와 여백〉동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무선 상상(無線想像)이나 컨시트의 기법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동인들의 관심은 공간으로 따지면 시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골은 자연과 도시가 탈경계로 만나 독특한 공간을 이루는 곳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미와 인공미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는 미래에 인간이 현실과 상상을 어떻게 가로지르기 하며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시와 여백〉은 『시문학』 『시와 반시』 『애지』 『현대시』 등의 문예지를 내는 출판사에서 동인지를 출간해 왔습니다. 이는 경계를 넘어 포월적 시선?현실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면서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사물의 본질을 모색하는 탈경계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6년을 서로의 인간미를 챙기며 지속하여 온 동인들의 한결같은 끈기에 박수를 보내며, 탈경계의 정신이 영원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하여 봅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