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지 딱 한 달이 된 詩集,을 여태 미처 못 읽고 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시인의 20주기를 맞은, 951쪽의 시집이다.
나의 나태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생으로는 그저 욱씬욱씬, 부끄러워
간간히 빚쟁이처럼...몇 편씩만 읽고는...무거운 가슴을 뒤로 한 채, 오늘도 또
빚쟁이가 되어 책장을 덮는다.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다 우선/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달라질 것이다'
라는 495쪽의 어느 귀절을, 내 평생 써야 할 연작시라 한...이제는 없는 시인을
아득하게 생각하는 여전히, 부끄러운 밤이다,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 보며 (P.738 )
- <김남주 시전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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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저항의 삶과 시, 김남주의 시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다
변혁운동의 뜨거운 상징으로서 한국시사에 우뚝한 자취를 남긴 김남주 시인(1945~94)의 20주기를 맞아 그의 시 전편을 망라한 『김남주 시전집』이 출간되었다. 1974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한 이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0년 가까운 투옥생활을 겪고 1994년 49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시인이자 전사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김남주 시인이 남긴 총 518편의 시를 집대성한 이 전집은 그의 시세계를 문학사적으로 온당하게 자리매김하고 그의 시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한 기초로서 뜻 깊은 성과이다.
『김남주 시전집』은 특히 여러 시집에 중복 수록되면서 개제·개고된 경우가 많은 그의 시를 전 시집에 걸쳐 면밀히 검토해 시 텍스트를 확정하고 작품의 개제(改題) 내역을 상세히 밝혔을 뿐 아니라, 각 시의 집필 시기와 제재 등을 고려해 시의 순서를 세심하게 새로 배열함으로써 김남주 시의 전체상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본(定本)으로 완성되었다.
총 7부로 구성된 전집은 시의 집필 시기에 따라 크게 시인의 초기작과 옥중시, 출옥 이후의 시로 나누어 엮였다. 1부는 등단 이후부터 1979년 시인이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기 이전에 발표된 초기시들이며, 2부~5부에 실린 옥중시 가운데 2부는 감옥 안의 상황과 옥중투쟁의 정황이 비교적 잘 드러나는 시들, 3부는 광주학살에 대한 대응과 현실상황에 대해 발언하는 투쟁적인 시들, 4부는 주로 서정성이 짙게 드러나는 시들, 그리고 5부는 감옥에서 썼으나 출옥 후에 발표되거나 퇴고한 시들을 묶었으며, 6, 7부에는 각각 출옥 후에 출간된 시집과 유고시집에 실린 시들이 나눠 실렸다.
김남주는 1945년 전남 해남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 유신반대 운동에 앞장서다 1973년에 8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대학에서 제적된 후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농민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는 한편으로 습작에 몰두했다. 1974년 『창작과비평』에 발표되어 시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잿더미」 「진혼가」 등 8편의 등단작은 순수한 열정과 언어적 활력이 넘치는 김남주 문학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로서 돋보이는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초기시에서부터 드러나는 ‘피’와 ‘꽃’의 눈부신 상징은 시인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대는 타오르는 불길에/영혼을 던져보았는가/그대는 바다의 심연에/육신을 던져보았는가/죽음의 불길 속에서/영혼은 어떻게 꽃을 태우는가/파도의 심연에서/육신은 어떻게 피를 흘리는가//(…)//꽃이여 피여/피여 꽃이여/꽃 속에 피가 흐른다/핏속에 꽃이 보인다/꽃 속에 육신이 보인다/핏속에 영혼이 흐른다/꽃이다 피다/피다 꽃이다/그것이다! (「잿더미」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