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일이다.
욕실수납장이 낡아서 새 것으로 교체하며, 기존의 수납장을 버리기 위해 주민센터 대형폐기물코너로 갔다.
내가 갔을 때는 먼저 온 민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의 차례를 기다렸는데, 그 과정이 이상한 불쾌감을 주었다.
먼저 온 그 아주머니는, 60대로 보이는데 왠지 그 담당자에게 기가 죽어 보였다.
폐기물에 붙일 용지를 한 장 떼려온 용무임에도, "주민등록증 가지고 왔어요?" 묻는 담당자에게
예..여기요..허둥지둥, 지갑에서 황급히 주민등록증을 꺼내 내미는 모습을 보고, "아, 폐기물처리용지 떼는데도 주민등록증을 내야 되나요?" 궁금해서 물어 보니, "아, 이 사람은 글을 몰라 대신 써주는거예요." 대답했다. 그 순간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붉어지며 더욱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쩔쩔맸다.
"이천원이요." 퉁명스럽게 말하는 그 담당자에게 또 쩔쩔매며, "만원짜리밖에 없는데 미안해서 어떡하지요.."하는 아주머니에게 "그냥 주세욧!" 대꾸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뭔가 울컥하고 뭔지 모를 화가 치밀었다. 그분이 가시고 내 차례가 되어 폐기물품명을 말하며 내가 물었다. "뭐, 혹시 화나는 일 있어요?" '아닌데요." "그럼, 다행이구요. 혹시 용무를 보러 오시는 민원인들이 오해할 수도 있으실까 그냥 있으려다 말씀드리는거예요. 그럼 수고하세요~!" 방긋 미소까지 지으며 나오는데 그 담당자는 여전히 뻣뻣하게 묵묵부답. 갑자기 성질이 팍 더 났다. 뭐 저런 눔이 있나, 하며. 그러면서 나오는데 등본이니 그런 민원서류를 떼주는 담당직원이 내 얼굴을 보더니 "뭐 필요하신 일이 있으신지요?" 급친절하게 물어 봤다. "인터넷으로 민원 넣을 수 있지요?" "그러긴 한데 무슨 일이신지?"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대답하며 종이떼기를 펄럭이며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데, 아 이 무슨 크게 문제될 사인은 아니지만, 뭔가 심히 불쾌했고 석연치 않은 감정을 진정시키기가 조금 힘들었던 오전의 일.
다시 나의 일로 바쁜 하루를 지내고 저녁에 식구들이 돌아와 밥을 먹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라
얘기를 하니, 저마다 흥분을 하며 여러가지 처리방법을 제기하는데 그대로 하면 일이 크게 시끄러워질 것도 같고,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 뭔가 문제를 확대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잠히 마무리를 졌는데..아, 왠지 모르게 아직도 그 불쾌하고 화가 났던 기분은 사라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까? 바쁘지도 않던 그 업무는 내가 보기엔 편안하고 손쉬운 업무같기만 보였는데 뭐가 그리 큰 권력을 지닌 것처럼 굴었을까? 아니면 그 담당자의 개인적 소양이 덜 되었던 탓일까.
그리고 또 뒤늦게 생각이 들었던 것은 소소한 생활용품을 폐기하러 주민센터로 가서 그 용무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야말로 서민들이라는 현장성. 이곳 주택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직접 그런 용무를 보러 간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수거날 아침에 경비실 앞의 수거함에 분리용품들을 갖다 놓았을 뿐이었고, 혹간 이번처럼 용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 용지값을 경비 아저씨에게 대신 드렸었다는 기억이 들었다. 아 이게 뭐야?, 주택의 상대평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곰곰 생각해 보니, 이런 이 삼천원의 딱지를 붙이려고 직접 갔던 일은 없었었다는 사실이 들었고, 그러면 어쩌면 더욱 서민(?)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구에서 정한 규정을 처리하기 위해 방문했던 공공기관에서 느꼈던 이 난감했던 기분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 보니 지난 2년동안 폐기물 때문에 몇 번쯤 이 담당구역을 찾았던 일이 있었는데 묘하게도 그때마다 뭔가 불쾌했던 기억이 났다.
아, 뭐 대단히 큰 일도 아닌데, 민원을 넣어 사안을 확대시키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지금까지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찝찝하고 불쾌한 나의 이 기분은.. 그것도 권력이라고 생각했나? 그 젊고 훤칠하게 생긴, 근무중 야구모자까지 쓰고 있던 그 담당자가 문제인가, 아니면 별 것도 아닌 일로 소심하게 반응하는 나의 피해의식인가..아직도 모르겠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그때는 정말로 크게 민원을 제기시키리라 다짐하는 나의 졸렬함이 문제일까..아 답답하다. 그래서 이렇게 페이퍼라도 쓰며 정리를 해 보는 중이다..
김수영 시인의 詩,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가 떠오르는 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말 얼마큼 적으냐....
방금 전, 어느 男이 내 서브 모니터 바탕화면을 바꾸어 놓았다...
쓰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