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였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끝없이 버림 받았던 그의 이력도 좋았다. 저명한 핵물리학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스터리한 아버지의 실종으로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뉴욕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성장한 가수였다. 그래서 그에겐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망명자의 냄새가 늘 풍겼다. <물 좀 주소>는 그의 첫 앨범 <멀고 먼 길>에 실려 있는 곡이었다.
"한대수를 좋아하시나 봐요?"
좋아하는 가수라서 나는 무심코 물었다.
"오, 한대수를 아는군요!" 그의 표정에 단번에 서기가 반짝했다. 막막한 모랫길에서 동행이라도 만난 표정이었다. "그럼요. 포크록의 대부인데 왜 모르겠어요?" 내 말에 그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맞아요. 한대수는 70년대 유행했던 정통적인 포크와는 좀 다르지요. 풍파가 유달리 많았던 그의 삶이 깃들어 그런지도 몰라요. 아니면 뉴욕에서 일찍부터 히피 문화를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세시봉 출신인데 세시봉 가수들과는 좀 다르잖아요. <멀고 먼 길>재킷 사진 혹시 봤어요?"
"손바닥으로 턱을 잡고 있는?"
"보셨네. 하, 여기서 그걸 아는 분을 만나다니. 그 사진도 참 강렬했지요. 발칙하다고 할까."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어요."
"옳거니! 그럼요. 한대수, 사진작가이기도 하니까요. 그 사진 한 장 땜에.....젊은 한때 한대수에게 빠져 산 적이 있었어요. 볼은 홀쭉하고 눈은 흰 창이 하얗게 나오고, 정말이지 그 사진, 목마른 표정 아니었나요? 유신 시대였으니까, 뭐 목마르지 않은 젊음이 없었겠지만. 특히 <물좀 주소>는 물고문이 연상된다든가, 암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끝내 금지곡이 됐었지요. 밥 딜런이 엘비스 프레슬리하고 비틀즈 사이에 끼여 화려한 평가를 못 얻은 것처럼 한대수도 세상 틈새에 끼여 속절없이 늙어버린 거지. 세월 참, 아득해요. 한대수 같은 사람은 볼 수조차 없고, 국적 불명의 아이돌인가 뭔가 하는 젊은 애들만 판치고... ."
청동조각이 가장 길게 이야기한 게 그 대목이었다.
그러나 나를 정작 감동시킨 것은 그다음에 들려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노래들이었다. (P.68~69 )
"햇빛이 죽인 거지. 소금이 죽인 거지! 그래도 모르겠어요? 소금 만드는 양반들이, 참 뭘 모르네. 안먹고 땀만 많이 흘리면 몸속의 소금기가 속속 빠져 달아나요. 이 양반, 몸속 염분이 부족해 실신해 쓰러졌던 거예요. 만들기만 하면 뭐해요, 자기 몸속의 소금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P.15 )
-박범신 장편소설, <소금>-에서
어젯밤, 음주회동이 있어 뛰쳐 나간 술집의 바로 옆에 서점이 있었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지라, 옆에 있던 선배를 꼬득여 내 손에 들려진 세 권의 책을 오늘 펼쳐 보다, 퍼뜩..한대수,라는 이름이 나오는 페이지를 가벼운 흥분과 설렘을 안고 읽었다. 그래...한대수.
박범신 작가의 신작인 <소금>을, 나는 채 읽기도 전에 좋아해 버린다.
소금을 만들기만 하면서, 자기 몸속의 소금은 챙기지도 못했던 아버지들의 노래, 같은 이야기.
책장을 살풋 넘기며 읽으니, 배롱나무와 나비와 노래들과 늙은 개와 어느 시인들의 시들과 젓갈과 재봉틀과 소설속의 사람들이 환하게 웃기도 하고, 몸속으로 스며드는 눈물처럼 울고도 있다.
박범신 작가가 데뷔하고 만 4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40번째 장편소설이다.
고향 논산에서 최초로 쓴 소설이며, 자본에 대한 저자의 '발언'을 모아 빚어낸 세 번째 소설이라는
<소금>. '생명을 살리는 소금'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
한대수의 <멀고 먼 길>,을 옆구리에 끼고 명륜동에서 수유리까지 걸어오던 그 아득한 시간을 생각하며, 오늘은 <소금>을 읽겠구나. 오월의 첫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