樹話에 대하여
-김영태
아무때나 저는
실물보다 아름다운 祭器와
제기 안에 들은 마른 열매 두 개를
보러 가곤 합니다
이 조그마한 소품은
凡夫인 제게
평범하지 말기를
애써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만
樹話가 그린 제기는 아무리 봐도
비뚤어진 선이
아래로 처진
그릇 모양과
오래 덧발라 피 마른 색
작고 쓸쓸한 열매가
평범해지면 못 쓴다구!
꾸지람을 대신하곤 합니다
말년에는 그의 붓이 點이 됐습니다 별 하나 별 둘 그리운 얼굴로 변했
습니다 점 찍으려고 구부린 樹話의 큰 키가 저같이 볼품없는 제자도 자
네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꼬, 점 중에 끼워 주었을 때 그의 손
바닥이 조아린 저의 머리꼭지에 살며시 내려와 쓸어주곤 했습니다
(1978 )
어제 저녁, 김환기 화백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나온 <김환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대한 책소개를 읽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김환기 화백의 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생각했고, 그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의 마지막 귀절을 빌어 樹話 김환기 화백이 뉴욕생활 11년 말년에 그린 작품의 제목이다. 수많은 인연들을 하나하나의 點으로 사람들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우주적 윤회를 그린 작품이다
내가 1995년에 김환기 화백의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사서 읽고 그리고 몇년이 지나고 어떤 개인사적인 변동의 시기에 있었을때, 그리고 몇 번의 이동이 있었을 때 아마 이 책을 잃어 버린 듯 하다. 이 책뿐만 아니라 요절화가 최욱경의 책이나 권진규의 화집, 그리고 김환기나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의 화집등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책들을 그 시기에 잃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는 이제 그 책들에 대해 잊고 있었고, 그 시간들에 대해서도 또한 잊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다시 찾아 왔다.
혼란과 어쩌면 피폐하기까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그때는 꿈이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깜박깜박 눈에 잘 보이지는 않아도 그래도 조그만 별빛으로 삶 안에 빛나고 있었던 것 같다.
김영태 시인의 '樹話에 대하여'도 오랜 시간동안 사랑했는데 이 詩도 역시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 다시 찾아 읽었다. 내가 사랑했던 이 詩人도 이제는 별이 되어 떠났다.
인터넷 책방이 없었던 시간에 발품을 팔아 화랑으로 미술관으로 서점으로 삶의 기쁜 꿈들을 가슴속에 가득 담아 무엇인가 희망을 기다리고 사람과 사람에 대해 아름다운 정을 나누던 그 시간이 떠올랐던 어제 저녁이었다.
다시 일어나 걷는다.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부디 우리 무엇이 되더라도 아름답게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