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이 활짝
빌딩 사이로 돌아눕는 노을이 동네 아이들의 가무잡잡
한 얼굴을 닮아 가면 밥을 안친 엄마들은 아이들과 어둠
을 집 안으로 끌어당긴다 귀가가 늦은 사내의 아이들이 다
세대 주택 사이 계단에 앉아 졸고 있다
사내는 일당과 맞바꾼 돼지고기 두 근을 얇은 불볕에
굽는다 한 점, 한 점, 사내의 아이들이 활짝 입을 벌리고
지저귄다 사내는 상추쌈을 싸서 아이들의 입속에 넣어 준
다 사내의 혀끝엔 봄 내를 덜 씻은 쑥갓처럼 쓴 약 냄새가
퍼져 나간다
방문으로 기웃거리다 입맛이 돋우어진 자목련, 꽃필
시기를 미루던 꽃망울에 구수한 냄새가 어린다 혹여나 집
주인이 잠을 털고 나와 홍자색 꽃망울을 바라볼까 봐 사
내는, 조, 조바심을 낸다
달빛이 소곤소곤 잠든시각, 사내와 아이들이 오붓하게
배꼽을 내밀자 자목련이 활짝 얼굴을 편다 ( P.53 )
단단해지는 법
물고기의 뼈는 가시라는 것
구운 생선을 발라 먹는데
가시 하나가 목에 걸려 꺼끌꺼끌할 때
문득 알게 된 것
그리운 것들도 가시라는 것
자꾸 마음에 걸려 나오지 않는 것
빼내려 하면 할수록 더 아픈 것
마음의 뼈는 그리운 것
물고기처럼 마음도 뼈를 가지고
너에게 헤엄쳐 갔다 올 때
네가 내 마음에 걸린다는 것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배 속으로 꾸역꾸역 삼켰을 때
잊어야 한다는 것
그리운 것들이 마음 아프게 할 때
흐르는 눈물의 뼈도 가시라는 것
가시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뼈를 감싸는 모든 살들은 물렁하다는 것
내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고 삼키려 할 때
단단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마음의 뼈는 물렁한 것 (P.32 )
봄밤에 아득한 소리는
수런거리던 비가 멈췄다 슬레이트 지붕에 감꽃이 떨어
졌다
부엌 아궁이에서 검부러기 같은 옛이야기가 풀릴 즈음
안채 창호지 문짝이 귀 열고 덜렁거렸다
첫날밤 손가락으로 뚫어 놓은 구멍에서 수백 년 묵도록
감 익어 가는 소리 수줍어하는 門에 꽃문양 새기고 있었다 (P.93 )
-윤석정 詩集, <오페라 미용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