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을 강원도의 여러 오지에서 보냈다.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교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세속에는 무욕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적적한 오지들만 전전하실수 있었겠는가, 결국 아버지께서는 환갑이 지나셨는데도 도회지 변두리의 작은 학교에서 오학년 담임선생님으로 명퇴를 하셨다.
젊은 아버지는 오랜만에 도회지로 나갔다가 컴컴한 오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셨는지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시곤 했다. 종종 버스 앞에 나를 세워두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버스가 먼저 출발할까봐 마음 조이곤 했다.
아마도 그때 젊은 아버지는 터미널 근처의 다방에 다녀오셨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오지에는 다방도, 커피도, 젊은 레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주 아프셨고, 세상사에 쑥맥이던 아버지가 다방의 레지와 노닥거리기 위해 다방을 찾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오지와 도회지 사이에 있는 터미널 근처에서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그냥 좋으셨을 것이다. 그곳이 꼭 다방이 아니라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젊은 아버지만 한 나이가 되었을 때 어느덧 나 또한 그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슬프게도 이번에는 아버지와 나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늙으신 아버지는 버스가 떠나기 전에 어서 아들이 돌아오길,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계셨다. 마치 버스 앞을 떠나면 길을 잃어버릴 듯이 두려움에 떠는 어린 아이가 되어 있었다. (P.202~203 )
터미널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P.201 )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에서
이홍섭: 1965년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등이 있다.
식구들이 아직 자고 있는 휴일 아침.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를 읽다가, 이홍섭님의 '터미널'에
눈이 멎고, 詩集<터미널>의 시들을 생각한다.
고요한 눈길과 나직한 말들로 어쩌면 세상의 가장 접경지역일
'터미널'과 '병원'들을 쓴 시인의 눈과 마음을 생각한다.
어쩌나, 하는 마음에...괜찮아요 답해주시는 시인의 시.
문득, 바쁘다는 구실로 찾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고 살아가는구나.
다음 주에는 꼭 만나서 '사는 기쁨'을 함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