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ㅣ 카이스트 명강 2
정재승.정용.김대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책은 당연히 눈으로 읽는데 귀에서 저자들의 강연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저자들의 열정과 진지함이 강하게 느껴져 온다.
이 책은 『카이스트 명강』두 번째 책으로 ‘뇌’에 대해 세 명의 교수가 이야기한다. 먼저 KAIST 바이오공학과 정용 교수로,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이며 뇌의 물리적인 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두 번째,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정재승 교수는 인간이 행동할 때 그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무엇일까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해석을 이야기 한다. 마지막으로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는 동물 행동을 유전자 관계의 다양한 예로 설명하며, 인간으로 생각을 확장시킨다. 3명의 저자, 3가지 주제, 3차례씩의 강연을 통해 흐르는 일관된 주제는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생각한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이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기에 나오는 깊은 성찰들이 돋보이고 최근 과학계의 동향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열린 자세와 겸손함이 전달되는 강연자들에게 감동을 느낀다.
그런데 책을 덮고 생각해봐도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누구일까?’, ‘내 마음과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내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뇌 때문일까?’...... 답을 얻지 못한 것은 이 책의 한계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 과학의 한계 때문이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한계는 하나하나 극복되나갈 것이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정말 기발하고 좋은 기획의 책이다. 요즘 키워드는 공감과 소통이다. 그런 시대적 흐름과 점점 높아지는 일반인들의 뇌에 대한 관심과 지적 욕구를 잘 결합하여 만든 책이다. 일반인의 뇌에 대한 관심은 많은 부분 철학적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철학적 질문을 과학으로 대답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다만 서문에서 옥의 티가 자꾸 거슬린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대학 시절로 돌아가 좁은 강의실에서 열정으로 가득한 강의를 듣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또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 책을 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획하신 분이나 훌륭한 책을 쓰시는 분들이 기억해주었음 좋겠다.
1. 뇌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신경 생물학으로 들여다본 뇌의 일생
신경 생물학으로 들여다본 뇌의 일생
생물체가 뇌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움직임을 조절하기 위해 신경계가 발달되었고 이후 움직임의 정교한 조절을 위해 주변 환경을 보고 듣는 감각계가 생겼다고 본다.
신경세포는 바깥쪽에 돌기가 튀어나와 있다는 점이 다른 세포와의 차이점이다. 활동전위를 만들고 기다란 축삭돌기를 잘 유지하기 위해 세포 뼈대인 미세소관이 발달 되었다. 절연률이 높은 말이집이 누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축삭돌기를 감싸고 있다. 신경 세포 사이에는 20에서 40나노미터의 틈인 시냅스가 있어 전기 신호를 화학신호로 바꾼다.
발생 3주면 뇌가 될 부위가 생기기 시작한다. 뇌라는 컴퓨터에서 회로에 해당하는 신경세포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래서 결국 어떻게 마음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풀지 못했다.
뇌는 경험을 통해 시냅스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면서 신경세포들은 네트워크를 현성한다. 네트워크는 창발성을 갖는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대사가 활발히 일어나는 부위들이 있고 이들을 연결한 것이 내재 상태 네트워크다. 이곳에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축적될 때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유전자와 행동은 상관관계이지 인과 관계는 아니다. 최근에는 환경이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를 연구하는 것이 후성유전학이다.
죽음과 탄생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만들어 내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 속에서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몸은 대부분 태어날 때하고 전혀 다른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한 번 뇌사에 빠지면 소생할 여지가 정말로 없는지 현대 의학의 수준에서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기능 차이는 그리 크지 않으며 절대적이지 않다. 현재 수준에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의 전환처럼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뇌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는가?
의사 결정의 신경 과학
20세기까지 우리 지식은 인간을 합리적 의사 결정자로 가정한 ‘합리적 동물 가설’이란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는 인간의 의사 결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반복되는 선택에서 뇌는 최고의 보상을 얻기 위해 그다지 노력하지 않는다. 예전에 내렸던 결정을 유지하여 인지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자신의 힘을 다른 곳에 쓰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습관’이란 것이 생긴다. 성공과 혁신은 탐색의 과정에서만 나올 수 있다. 습관화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 버튼은 『뇌, 생각의 한계』에서 혁신적인 리더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의외의 말을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려고 노력한다. 이들과 보통 사람들과의 중요한 차이점은 적절한 타이밍에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21세기는 ‘마인드 파워’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의사 결정도 적절한 순간에 빨리 해야 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조정할 수 있는 정도로 유연해야 하며, 의사 결정전에 수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
여러 가지 게임 이론을 통해 본 결과 인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자가 아니다. 같은 물건이지만 어떤 프레임에서 팔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호도는 달라졌다. 손실을 피하고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뇌는 또한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즐거움이란 내가 얻는 효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효용에 대한 기대와 실제 얻은 효용 사이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기대보다 보상이 적게 주어지면 오히려 화가 난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매우 복잡한 정보처리 과정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이익이라는 보상체계의 민감한 역할만을 강조해 왔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충분히 고려해 복잡한 의사 결정과 선택을 한다.
3. 뇌는 무엇을 원하는가?
동물 행동학으로 푸는 생존과 번식의 방정식
현대 동물 행동학의 근본적인 질문은 ‘행동의 원인은 무엇인가’이다. 칵테일파티 효과에 의하여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나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와 성에 관한 키워드가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인다.
사마귀를 보면 생존과 번식이 상충할 때 ‘번식의 뇌’가 ‘생존을 위한 뇌’를 압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곰은 번식보다는 오래 사는 생존 전략을 펼쳐 최강의 생존 능력을 보인다.
행동이란 환경과 그 종의 지속 가능성을 연결하는 매개 변수이다. 영양이 충분한 상태에서 자란 소똥구리 수컷은 멋진 뿔이 있는 반면 눈이 퇴화하였고 영양이 불충분한 환경에서 자란 수컷은 뿔이 작지만 눈이 발달해 암컷을 찾을 수 있다.
침노린재는 수컷이 알을 보호하지만 매일 몇 개의 알을 먹으며 영양 보충을 한다. 반면 큰가시고기는 진짜 부성애가 있다. 북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의 옆줄무늬 도마뱀은 수컷의 목 색깔이 주황, 노랑, 파랑으로 모두 다른데 색깔에 따라 성격이 다르고 해마다 우세한 옆줄무늬 도마뱀의 색깔이 달라진다.
생존을 위한 경쟁과 생존을 위한 협력 사이에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뇌의 존재 이유이다.
개미나 벌 등 진사회성 곤충에서는 이타행동이 많이 관찰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혈연으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희생하지만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친족들이 대신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그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게 된다.
집단으로 보면 어떤 고민을 하든 결국은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으로 귀결된다. 개인으로서는 그것이 당위가 아니며 나에게 주어진 특권,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틈새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제시한 규칙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낸 이들의 창조력을 본받아야 한다.
행동이나 재능이 유전된다고 본 최초 인물은 플라톤이다. 후에 골상학과 우성학으로 연결되었고 1940년대 미국의 단종법,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인종차별의 근거를 제공했다.
1973년 카를 폰 프리슈와 콘라크 로렌츠는 배우지 않아도 동물의 뇌 속에 내재 되어 있는 고정 행동 양식의 존재를 규명했다. 소프트웨어는 항상 정해진 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환경 혹은 자극에 의해 발현한다.
옳고 그름이 계속 바뀌는 한 순간의 지식보다는 이 지구상의 다종다양한 생물들이 선보이는 온갖 행동과 그 행동들이 품고 있는 경이로움을 더 기억하길 바란다.
책을 통해 강연장의 후끈한 열기를 느끼고 일상 생활로 돌아왔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이 이젠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신경 세포들의 네트워크에서 비롯되었는가? 경이롭다.
삶에 좀 더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멍청하게 선택했다고 스스로 자책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란 오리만큼도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은 동물이니까.
그리고 좀 더 자유로움을 느낀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과학이라는 틀 안에 가두고 답답해 할 필요도 없다. 어짜피 과학적 진실이란 과학의 폭이 넓어지고 발전하며 변할 것이다. 나의 유전자를 가진 미래의 나는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