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년의 폭발 -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
그레고리 코크란.헨리 하펜딩 지음, 김명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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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적 사실들을 인용하여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지만 이 책은 과학책은 아니다. 흥미 있게 진화를 이야기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된다. 사회적 진화론에 바탕을 둔 인문학 책이며, 인종차별주의를 옹호했던 우생학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인류의 진화는 농경이 시작된 1만 년 전부터 가속화 되었고 지난 몇 천 년 동안의 진화의 변화율은 몇 백만 년 동안의 진화의 변화율에 비해 100배 이상 빨라졌다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5만 년 전에 멈추었다고 한 굴드와 같은 과학자들의 무지(?)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우리는 인종 집단들 사이의 명백한 차이들은 최근에 빈도가 증가하여 적응도에 큰 영향을 미친 유전자 변종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33)

 

   5만 년 전에 인간의 진화가 멈추었다는 표현에서의 진화는 인간의 종 분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저자들은 개념 구분 없이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위의 표현에서 보듯이 인종간의 차이를 강조한다. 진화의 가속도란 인종간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인다. 이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인용한 여러 가지 과학적 예들의 적합성은 전문가들이 밝힐 일이지만 이 책의 기본 전제 자체가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니까 약 4만 년 전, 인간은 해부학적으로나 행동에서나 현대적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보다 엄청나게 큰 혁신 능력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아마 어느 정도는 그들의 네안데르탈인 사촌들에게서 훔친 유전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문화가 변하는 속도는 10배쯤 증가했고 빙하가 물러나고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그 속도는 더 가속화되었다.’(86)

 

   ‘인간개체군들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는 오직 한 꺼풀 깊이의 피상적인차이일 뿐이라는 해묵은 이야기는 이제 재고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기능들에 존재하는 유전적으로 유발되는 차이들을 알고 있고 이러한 차이들은 모두 적응도(자식의 수)의 유의미한 증가를 일으킬 만큼 중요했다.‘ (118)

 

   농경으로 인해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변했다고 한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유전적 돌연변이도 더 빨리 발생할 수 있어서 1만년이란 시간 동안 유전적 변화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유전적 변화의 증거로 골격의 변화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그 근저에 흐르는 저자의 생각은 조금 염려스럽다. 

 

   ‘가장 흥미로운 종류의 유전적 변화는 인간의 성격과 인지 능력에 영향을 주는 변화들이고, 그러한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 (127)

 

   농경의 경험이 가볍거나 없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오랫동안 농경문화를 경험한 집단의 구성원들보다 평균적으로 덜 복종적일 것이다. 1636년 피쿼트 전쟁에서 청교도에게 포로로 잡인 인디언들처럼 멍에를 고분고분 견디지 않는다.’ 고전적인 수렵채집인으로 사는 전형적인 부시먼들이 남아프리카의 무정부주의자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145)

 

   ‘현대 인류의 최근의 팽창들이 모두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생각은 모든 지역의 현대 인류가 본질적으로 똑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인류가 진화를 멈추었다고 생각할 때 얻을 수 있는 논리적인 결론이다.’ (196)

 

   소를 기르게 되면서 돌연변이가 나타나 성인도 락타아제를 생산하게 되어 우유를 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절대적인 이점을 가지게 되며 넓은 지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만일 팽창하는 집단의 성공이 어떤 개선된 전술이나 무기에 의존했다면 도전자들이 그것을 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를 복제할 수는 없었다. 생물학적 우월함과 싸워 이기기는 어렵고 그러한 우월함을 바탕으로 하는 팽창은 일시적인 문화적 이점을 바탕으로 하는 팽창보다 훨씬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98)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평균 지능이 높고 우월하다고 한다. 그들은 동족끼리 결혼을 했고 그래서 유전적으로 독특하게 되어 이웃들과 다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돌연변이들은 그들의 지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돌연변이들이 생긴 것은 이 집단의 구성원들이 중세 유럽에 금융 직업에 종사하면서 맞닥뜨린 독특한 자연선택 압력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265)

 

  저자들의 결론은 무엇일까?

 

   ‘농경의 확산에 뒤따른 우리 종의 급속한 진화는 실로 ‘1만 년의 폭발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 폭발은 현재진행중이다. 인간 진화는 해부학적으로 현대적인 인류가 출현했을 때 혹은 아프리카 밖으로 나왔을 때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진화는 결코 멈춘 적이 없다.‘(276)

 

   ‘역사의 실험들이 내놓은 결과의 일부는 인간의 수명과 인지 능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우리의 더 야심찬 시도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277)

 

   ‘이제 과학 연구자들이 진화의 정체나 심적 동일성같은 일련의 도그마들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잃을 시간이 없다.‘(277)

 

   인류의 문명이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생물학적 변화가 다시 문명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저자들은 인종간의 차이와 그들이 생각하는 우월한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의 정당성을 말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말하는 세상을 얻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다윈은 진화론에서 적어도 방향성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성의 증가를 이야기 했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촛불 집회가 매주 진행되고 있다. 그에 맞서는 집회도 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촛불에 맞서는 집회에 참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사회와 인류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판단력의 밑 걸음이 현재로서는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만 할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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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안의 신 - 진화론 시대의 종교에 대하여
존 호트 지음, 김윤성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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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종교의 화해 가능성에 관심이 있던 차에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막연하게 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책의 결말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도 10년이 넘었다. 최근에 전개되는 과학과 종교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논의들이 궁금하다.

 

  현대 과학은 종교를 불필요한 존재 아니 오히려 사회의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기독교 근본주의는 창조과학 또는 지적설계론을 내세워 과학적 발견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며 고립된 종교를 형성하고 있다.

 

  저자 존 호트는 진화론에 집중하며 과학과 종교가 함께 공존할 때 생명 현상에 대해 더 잘 이해 할 수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롭게 창조해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진화론적 유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내 관심에 따라,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의 주장에 대한 저자의 비판보다는 진화론적 유물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에 각각 적합한 독법이 있으며 자연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차원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연을 읽는 독법과 종교에 접근하는 독법을 식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학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 내재한 듯이 보이는 대부분의 갈등이 바로 문자주의로 기울기 쉬운 인간들의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훈련받은 오직 한 가지 차원에서만 읽으려는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58)

 

  각각의 독법을 익히고 자연적 사실과 종교적 차원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반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학을 모르던 시대부터 존재했던 종교는 주로 인간 역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우주, 진화, 등의 과학의 발견은 오히려 종교의 폭과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점점 확대되었다고 현대 과학적 인식에서 종교적 의미를 끌어내리려 한다면 영적으로 공허하고 도덕적으로 무능하며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이 존재하는 것의 모든 범위를 망라할 수 있다는 신념 자체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과학주의는 과학탐구의 논리적 결과가 아니라, 과학 안에서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하는 가정일 뿐이다. (115)

 

  과학이 아무리 빨리 발전하고 이 세상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삶은 과학과 비례해 더 깊어지지도 넓어지지도 또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종교는 아무리 과학적 발견이 크게 이루어진다 해도 필요하다.

 

  유물론에 입각한 다윈주의자들은 진화론적 설명으로부터 형이상학적 교의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혼성적 독법을 구사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오늘날 헛된 궁극이론의 꿈은 다윈주의 주창자들뿐만 아니라 물리철학자들에게도 두드러진다. 다른 모든 범주를 막아버리려는 이런 망상은 창조과학자들의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독선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190)

 

  ‘과학적 탐구에서 신학적 형이상학을 성급하게 끌어들이는 것은 아직 남아있는 발견의 여지를 흐려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조직화된 복잡성에 내재한 형이상학적 뿌리로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현대 진화론적 유물론의 무능함은 진정한 궁극의 설명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욕구에 대한 모욕이다.’ (190)

  다윈 전쟁은 과학과 종교 간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형이상학의 충돌이라고 한다.

 

  ‘과학적 자연화의 방법이 근본적이고 궁극적이며 적합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설명하리라는 생각 자체는 과학이 아니라 단지 신념일 뿐이다.’(240)

 

  과연 과학적 발견들이 우주의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는가? 과연 과학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 과연 과학적 사실들이 진정한 실재를 향해 충분히 깊이 데려다 줄 수 있는가?이 질문에 대해 어느 누구도 확신에 차서 대답할 수는 없다.

 

  자연의 이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면 이해 가능성에 내재한 무한한 깊이에 대한 감각을 지켜주는 것은 종교의 핵심 기능이다. 저자는 현재 존재하는 종교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학은 과학적 발견 내용을 받아들여 종교가 다루는 내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진화론적 유신론의 내용을 이야기 한다.

 

  ‘종교적 희망은 과학과 전혀 다르지만, 인간이 여전히 생성중인 거대한 우주의 일부라는 새로운 과학적 인식과 잘 들어맞는다.’(329)

 

  ‘신학은 이제야 신에 대한 생각을 진화의 커다란 규모에 맞추어 다시 되짚어 보기 시작하고 있다.’(332)

 

  ‘넓은 의미에서 보면 원죄는 지구에만 국한되는 병도 아니고 인간 세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원죄란 단지 관련된 모든 존재의 실존에 수반되는 악의 불가피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원죄는 유한한 것들이 창조행위에 대해 보이는 필연적 반응이다.’ - 피에르 테이아르 드 샤르댕 (342)

 

  과학적 사실,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현재의 문제점이 많은 종교를 불필요한 것으로 파악하며 혼성적 독법의 실수를 범한 진화론적 유물론에 비해, 현재의 한계를 가진 종교가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여 영역을 넓히고, 과학이 미쳐 못 건드리는 존재의 깊은 차원으로의 인도를 책임져야 한다는 진화론적 유신론이 훨씬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저자가 서양 사람이라 종교를 그리스도교라는 틀로 설명하는 한계는 있지만 진화론적 우주론에서 말하는 우주에는, 무질서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수렴되는 궁극적 목적이자 약속인 장대하고 아스라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아마도 진화론적 유물론자들은 인정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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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탄생 - 피투성이 이빨과 발톱의 과학혁명
마이클 루스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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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까지 빅토리아 시대의 지질학과 과학 철학 분야에서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적 원리>는 생물 기원에 대한 초석을, 로버트 체임버스의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은 생물 세계에도 법칙이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

 

   리처드 오언은 당시 종교적 영향으로 팽배해있던 인간중심주위적 진화론의 시각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사람을 향해 뻗어가는 진보는 없으며 생물은 저마다 특정 생태자리에 맞춰 분화하고 적응한다.’

 

   이러한 사상적 과학적 바탕을 토대로 다윈의 진화론이 나왔다. 모든 생물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며 생물세계도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을 위한 특별한 생물세계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다윈 진화론의 핵심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후 많은 논란을 일으켰는데 사실은 과학적 논란이었다기보다는 종교의 문제였다. 진화론은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등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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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트의 별 - 우주 크기의 실마리를 푼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조지 존슨 지음, 김희준 옮김, 이명균 감수 / 궁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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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의 거리 측정을 하는데 기준이 되는 변광성의 존재를 알아낸 헨리에타 리비트에 대해 쓴 책이다. 전기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는 리비트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은 과학자 특히 천문학자가 될 수 없었고 단순히 관측된 별을 비교하며 자료화하는 단순한 일밖에 할 수 없던 시대였다.

 

  관측 자료를 꼼꼼하게 처리하고 데이터화하며 규칙까지 발견했던 리비트는 스스로 천문학자라고 칭하고 싶어 했고 천문학자이길 꿈꿨다. 그동안 과소평가되었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리비트의 발견이 있었기에 별까지의 거리 측정이 가능해졌고 천문학계에 큰 공헌을 한 것에 대해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단순히 리비트에 대한 이야기를 뛰어넘어 천체의 거리측정 방법 등과 당시 천문학계의 흐름에 대해서도 나와 있고 두껍지도 않아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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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 후성유전학 -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
리처드 C.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시공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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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의 변화만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후성유전학에 의하면 DNA의 염기서열 변화 없이 메틸기 등의 후성 유전 물질에 의해 유전자의 발현이 일어나고 그것은 유전될 수 있다고 한다. 즉 환경에 의해 세포의 변화가 일어나고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암이나 비만 등도 후성 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고 치료도 후성 물질적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도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후성 유전학에 의하면 환경의 영향은 무엇보다 중요하거니와 인간의 개조가 가능하다는 이론으로까지 나아가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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