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완벽주의자들'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내 안에서는 미묘한 진동이 일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정밀함'을 추구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릴 적 내가 빡빡한 성격이었는지 완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곤 했었다.


  그래서 완벽주의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졌고 나는 매사 완벽하지 않기 위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기 위해 애를 써왔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 문화와 정서에서는 완벽함은 미덕이 아니었다.


  감성적 성향이 풍부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이 책에 매력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인류 최초의 정밀한 기계라고 할 수 있는 안티키메라, 시계, 부품화된 총의 주조, 엔진과 제트 엔진, 계측을 위한 기구들, 자동차와 비행기, 우주 망원경,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 등, 허용오차 "0"을 향해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있다.


  과학이나 공학적 지식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밀성'이라는 큰 흐름을 따라가며 읽으면 누구라도 충분히 책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기계류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정밀성'이 제일 먼저 추구되었던 분야는 시계였다. 정밀한 시계를 먼저 만들었던 영국은 한 세기 이상 바다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정밀성'은 장인의 기술과 인내심에 의존한 손끝 감각에서 나왔다.


  '정밀성'이 다수를 위한 물건을 만드는데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영향력은 커지기 시작했고, 필요성은 '정밀성'을 이끌었고 편리성과 이익은 '정밀성'을 더 고도화시켰다.


  산업 혁명을 이끌었던 와트의 증기기관도 총기나 대포를 만들었던 윌킨슨의 정밀한 신기술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정밀한 기계가 생산될수록 허용 오차는 점점 줄어들었고 노동자와 기술자들의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의 정밀성은 인간의 손끝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밀함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1800년대 전장에서 이용되었던 총은 기술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총이 망가지면 수리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부품들을 동일하게 제작할 수 있다면 총이 고장 나도 쉽게 수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됨에 따라 정밀하고 똑같은 부품을 제작하여 총을 조립하게 되었다. 덕분에 군인들은 부품을 갈아끼우기만 하면 고장 났던 총도 쉽게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서로 똑같이 고도의 완벽한 '정밀성'을 추구했지만 정반대의 방법을 구사했던 헨리 로이스와 헨리 포드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름도 똑같이 헨리이다.


  헨리 로이스는 만들기 어렵고 비싸더라도, 훌륭한 자동차의 가치를 알아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고, 반면 헨리 포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다.


  헨리 로이스는 최고의 기술자를 모았고 정성을 들여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자동차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장인의 손에서 정밀성으로 완성된 자동차는 완벽했고 돈이 많은 귀족들은 자동차에 열광했다.


  헨리 포드는 동네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가 말끔히 해체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일명 '생산 라인'에서 정밀하게 제작된 부품을 단계별로 조립하며 대량으로 자동차를 생산했다.


  마케팅의 천재 롤스와 손잡은 로이스의 자동차는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으로 성공했고 자동차의 절정, 최고 자리를 잡으며 자동차계의 신화가 되었다.


  포드는 자동차를 생산하는데 많은 기술자나 장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립라인에서 단순히 부품을 끼울 노동자들만 있으면 생산이 가능했고 자동차의 가격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자동차는 중산층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로이스는 부자가 되었지만 포드는 갑부가 되었다. 이제 조립 라인이라는 방식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계로 영향을 미치며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정착되고 확장되었다.


  제트 엔진까지 발명하게 된 인류는 하늘을 날고 우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허용오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점점 더 줄어들고 기계화와 자동화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정밀한 기계의 도입은 산업 현장에서 불필요한 인력의 해고로 이어졌고, 오늘날 현대 기술의 분야에서 노동자들이 할 일은 상대적으로 더 줄어들고 있다.


  현대의 정밀한 기기들이 요구하는 허용 오차는 기본적으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수는 허블 우주 망원경 제작에서 일어났다.


  허블 우주 망원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측 막대의 작은 오류가 있었다. 미미한 실수였지만 1990년 우주에서 보내온 이미지들은 쓸모가 없었고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간 허블 우주 망원경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후 우주로 직접 가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했고 사용 연한을 넘긴 오늘날까지도 허블 우주 망원경은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GPS,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폰도 고도 의 '정밀성'을 추구한 결과물이다.


  현재의 기술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의 증거가 되는 중력파를 발견할 정도의 정밀성에 이르렀다. 1991년 중력파 관측소, 즉 라이고가 탄생했고 2016년 역사상 가장 정밀한 계측 장비를 이용하여 중력파를 발견했다.


  또한 광자의 직경의 1만 분의 1까지 측량할 수 있으며 지구에서 4.3광년 떨어져 있는 켄타우루스자리의 알파성 사이의 거리를 사람 머리카락 두께 이하의 오차로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이 정밀성이다.


  인류는 '정밀성'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양자의 단계를 넘어서는 '정밀성'은 양자적 특징으로 인하여 오히려 '모호성'이 된다고 한다.


  저자의 아내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일본 이야기가 나오는데, 쓰나미가 덮쳐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무너지고 녹이 슨 채로 남겨졌을 때 대나무밭은 멀쩡했다고 한다. 정밀성은 영원하지 않지만 정밀하지 않고 불완전한 대나무는 살아남았다.


  오늘날 인류는 고도의 정밀성에 집착하고 있지만 자연의 질서 역시 똑같이 중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인류가 고도의 정밀한 문명을 이루었어도 자연과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면 자연이 세상을 장악해서 인간이 만든 모든 '정밀성'의 발명품을 휘감아 버릴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현재 세계는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 세계는 무너졌고 소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방역은 현재까지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추구했던 정밀성은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인류는 다시 한번 완벽한 '정밀성'에 도전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난 후, 지구상의 우리는 인간의 '정밀성' 추구와 자연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살아나가야 할지, 삶의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공계로 진로를 정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밀하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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