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욕의 명물, 플랫 아이언 빌딩>

 

오늘도 자다가 일찍 깼다. 시차 때문도, 낯선 환경 때문도 아니다. 다만 어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잤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진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는 찍어온 사진이 많지 않다. 미술관 대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책방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사진이 여러 장 있다. 미술관에서 그림 사진만 찍다가 카메라 렌즈로 거리 풍경을 스케치하니 이야기보따리가 하나 가득이다.


우선 뉴욕 날씨가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는 소식부터 전한다. 얇은 외투 하나면 충분할 정도다. 롱부츠를 신은 여자들, 두꺼운 노스페이스를 입고 나온 남자들은 어제 꽤 고생했을 것이다. 주말에는 미술관이 많이 붐빌 테니 오늘은 그냥 하루 젖히기로 했다. 그리고 예전에 살던 23번가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뉴욕 지하철은 아주 간단하다.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 좌우로 가고 싶으면 버스를 타면 된다. 한 번만 타보면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심한 길치다. 어느 날 파주 출판단지에 간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가, 어느새 저 위 국방 한계선 같은 곳까지 와 버린 적이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는 그곳,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었다. 철책과 가림막이 겹겹이 길을 막고 있었고, ‘돌아가시오라는 사인만이 크게 눈에 띄었다. 분단선을 실제로 마주하는 느낌은 왠지 썸뜩했다. 잔뜩 몸이 위축되면서, 기이한 불안이 가슴을 억눌렀다. 결국 차를 돌려 출판사에도 들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길치도 뉴욕에서는 전혀 헤맬 이유가 없다. 동쪽과 서쪽, 업타운과 다운타운.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23번가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니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플랫 아이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뉴욕 마천루 역사에서 초기 작품이라 하는데, 얼핏 다리미처럼 생긴 모습이 언제 봐도 신기하다.


옛날에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아간 기분은 묘하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고, 예전의 내 모습 또한 저기 어딘가 길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런 사연과 장면들이 아직도 이곳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오면 내가 머물렀던 장소를 한 번쯤 다시 기웃거리게 된다.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많이 내 모습을 지워버렸는지, 그로 인해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23번가 거리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다. 새로 개축한 빌딩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이 거리에 흐르는 냄새와 공기, 사람과 소리의 흐름은 7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가끔 아침마다 가던 베이글 코너 가게가 현대식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뉴욕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낡았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식당이었다. 가게 안에서 베이글도 직접 굽고 나이든 아저씨 서너 명이 투박한 말투로 장사를 하던 베이커리였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사진 <23번가, 옛집 아파트 입구에서> 2012

 

사보이 호텔 바로 옆, 예전에 우리가 살던 빌딩을 바라보는 심정은 남달랐다. 건물 앞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 더 낡고 초라해진 모습, 폐허 속 쇠락한 기둥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주변이 그만큼 산뜻하게 정비된 탓일 것이다. 근처에는 새로 생긴 콘도미니엄과 비주얼 스쿨 간판이 보였고, 길 건너에는 던킨 도넛 가게와 타이 식당, 편의점 같은 것들이 새로 문을 연 듯했다그래서 우리가 살던 그 빌딩만이 세월의 잔재에 파묻힌 듯 더 어둡고 그늘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옛날에 살던 집은 사람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옛집은 옛날의 내 모습이며 내 기억이다. 옛집의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사실은 나로부터 분리된 그 시절의 내가 아직도 이곳 언저리를 맴돌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하이 라인, 첼시> 2012

 

첼시 화랑가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육교처럼 생긴 구조물이 나타났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공원이라고 했다.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라니. 터키인지 스페인인지에서 공중정원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콘셉트인가 싶어 철제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하이 라인이라 부른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정보가 정확한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이 라인은 11번가와 12번가 사이에 있고 12번 스트리트에서 34번 스트리트까지 이어져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건물 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육교다.


뉴요커들은 육교라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곳이 새로운 명소인지 카메라를 메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도시의 지붕을 가로지르는 구조물과 중간중간 에 전시된 설치 조각들, 그리고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와 잔디밭 풍경은 아직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를 풍겼다.


그래도 허공에 떠 있는 이 산책로에는 센트럴 파크와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도시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붕 위와 건물 틈새들, 오랜 세월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시간의 그림자들이 새삼 드러난다.


아무리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라 해도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정체들이 존재한다. 그 뒷모습의 표정과 흔적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각도와 높이와 깊이가 필요하다.


하이 라인은 그런 곳이다.


사람들에게 도시 지붕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고, 사람들은 다시 하이 라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사진 <뉴욕 ,하이 라인 내 산책로 풍경> 2012

 

사진<하이 라인에서 내려다 본 23번가 도로 모습> 2012


사진 <하이 라인에서 바라본 건물과 건물들 사이의 모습>

  

오후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유니언 광장으로 향했다. 토요일마다 프리마켓이 열리던 광장은 마침 공사 중이라 사방이 막혀 있었지만 공원 안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벤치마다 가득했다.


어딜 가나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옆에 앉아 있는 백인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다가 무시를 당했는지 그 나이 든 백인 남자는 자신의 과거사와 그 백인 아줌마의 야박함에 대해 한참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남자가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은 어떤 침묵의 벽도 뚫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외면했고 민망해했으며 심지어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백인 아줌마도 손에 들고 있는 아이팟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백인 남자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계속 떠벌려대는 그의 말들은 허공의 벽에 부딪혀 고스란히 그 자리로, 자신의 침묵 속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진 <유니언 광장의 어린 화가들> 2012

 

공원 한쪽에서 길거리 화가들을 보았다. 어린 소녀들이었다. 붓을 들고 쓱쓱 재미있게 그어대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이 든 백인 여자가 붓을 하나 달라고 하더니 꽃이 핀 풀잎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림에 몰두한 사람들, 그것을 구경하느라 발길을 멈춘 사람들.


11월의 맑은 햇살이 부서지는 한쪽에서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걸까. 색채 때문일까. 도구 때문일까. 예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그림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일까.


자신의 벽 안에서 맴돌고 있는 언어들, 생각과 소통이 필요한 사연들을 토해내기 위해 사람들은 붓을 들고 물감을 섞고 화폭을 펼친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린다.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유니언 광장의 반스 엔드 노블 서점> 2012

  

유니언 광장 근처에 있는 푸드 마켓에 들어가 뜨거운 클램 차우더 수프와 샐러드로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반스 앤 노블 서점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뉴욕에서 가장 큰 책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층부터 4층까지 수많은 책들로 빼곡한 곳이다.


예전에는 소설 섹션이 2층이나 3층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4층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4층에 있던 어린이 북 섹션이, 소설이 꽂혀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설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어,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소설은 죽었다, 그림은 죽었다고.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래도 한겨울 히말라야 꼭대기의 로지에서, 난롯가에 모여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책의 소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7년 전 뉴욕 거리에서도 여기저기 앉아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내심 기뻤다.

 

그런데 이제는 이 도시 어딜 가나 직사각형의 작은 액정 화면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도, 하다못해 무가지 신문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손바닥만 한 화면이 사람들의 시간은 물론 영혼까지 삼켜버릴 기세다.


몇 년 전만 해도 길을 가다 혼자 웃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실성했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계에 대고 혼자 말하고 웃고, 슬퍼하고 분노한다. 덕분에 소설책은 대형 서점의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조금씩 밀려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


소설이 고귀해 보이는 이유는, 이제 그것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멀리 있고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더 신비해 보이는 법이니까.


이러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 그 액정 화면만 덩그러니 남아 떠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이브 탕기 Yves Tanguy의 초현실주의 그림에서처럼, 모두가 사라진 회색 공간에 액정 화면들만 살아 있는 미생물처럼 증식해 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반스 앤 노블에서 4층으로 밀려난 소설 섹션을 보자 어쩐지 가슴이 답답했다. 한국이라고 다르겠는가. 돌이켜보니 교보문고에서도 참고서들이 예전에 있던 소설 자리를 조금씩 잠식해 오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소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사진 <이브 탕기의 작품>

*그다지 본문에 꼭 들어맞는 작품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메트에서 찍은 사진을 대신 사용했다.

 

밤이 되어 밖으로 나오니 유니언 광장 한가운데 높이 서 있던 동상이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 위에 이미지를 비추고 연설 내용을 크게 틀어놓은 듯했다. 어둠 속에서 펼쳐진 일루전 효과 때문에 정말로 동상이 손을 움직이고 표정을 지으며 연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의 음유 시인이 다시 환생한 듯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 채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어쩌면 반스 앤 노블 4층으로 밀려난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나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책의 또 다른 변신이라고 할까. 종이 문명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새로운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당도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 <유니언 광장의 동상1, 한낮의 모습>

 

사진 <유니언 광장의 말하는 동상2, 밤에 촬영한 모습>

 

돌아오는 길, 지하철 역사 안에서 길거리 가수와 악사들을 보았다. 그녀는 도나 서머 Donna Summer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노래 가운데 빠른 템포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바로 그 곡이었다.


여가수는 몹시 피곤해 보였고 옷차림도 남루했다. 목청에도 이미 무리가 간 듯했지만 얼굴에는 어딘가 만족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누군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매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 인생일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한 가지쯤 자신에게 소박한 선물이라도 허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도 모든 이의 하루에 작은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사진 <33번가 헤럴드 광장 지하철역 구내에서 공연 중인 흑인 여가수와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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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2012-11-1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he works hard for the money or Hot stuff?
 

사진 <모마 미술관의 어느 대머리 아저씨> 2012

 

새벽에 문득 깨어 컴퓨터 앞으로 다가앉았다. 지금 나는 맨해튼 안에 머물고 있다. 메이시 백화점 바로 앞, 럭셔리 렌탈 빌딩 안에 있는 한국인 숙소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름처럼 그렇게 럭셔리한 장소는 아니다.


그래도 함께 지내던 다른 게스트들이 모두 나간 뒤라 거의 혼자서 내 집처럼 지내는 중이다. 여자 관리인이 함께 있는데 한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 날씨 때문인지 여행객이 뜸한 모양이다. 하루 45달러만 지불하면 되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아니, 환상적인 조건이다.


뉴욕에 온 뒤로 거의 매일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도 찍고(요즘에는 디카와 휴대폰을 사용해서인지 사진 촬영이 허용된 곳이 많다), 무작정 작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 앞에 앉아 연필이나 펜으로 모사를 하기도 한다. 확실히 손으로 직접 따라 그리다 보면 훨씬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의 깨달음과 의문들이 잇따라 떠오른다.


금요일 오후에는 4시부터 모마에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아침 내내 메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곧장 모마로 향했다. 관람객들의 줄이 어찌나 길던지,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대한극장 앞에서 <벤허>를 보기 위해 끝도 없던 사람들 꽁무니에 매달려 서 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금요일 밤 행사에는 나름의 요령이 있는 듯했다. 관람객들은 금세 티켓을 받아들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은 역시 시내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뉴욕 사람들이 모두 모인 듯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미술계의 변방 노릇을 해왔다.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저변에서부터 쌓이고 숙성되어야 한다. 건물만 지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이 조직적으로 미술계에 투자하고 활성화에 나선 것은 1930년대부터다. 당시 유럽은 전쟁 중이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덕분에 유럽의 많은 뛰어난 문화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미국이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부 차원의 지원과 미술 비평가들의 활발한 활동, 그리고 미술관들의 영악하다 할 만한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힘들이 모이고 모여 뉴욕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었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모마의 소장품 목록은 아주 화려하다. 얼마 전 내가 4. 죽음에 대한 응시- 쌍둥이 그림들에서 소개했던 뭉크의 작품도 그중 하나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 할 수 있는 절규앞에 사람들이 빼곡하다.


맨 위에 올려놓은 사진은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 겨우 촬영한 것이다. 오일도 아닌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런데 그림 앞을 막고 서 있던 대머리 아저씨의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다음 사진을 보기 바란다.

 

사진 <뭉크의 절규> 모마 미술관에서, 2012

 

뭉크의 그림 속에서 대머리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연치고는 꽤 묘한 우연이다. 참고로, 나는 대머리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는 사람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예술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우연성의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뒤에 서 있던 누군가 내 카메라 액정에 비친 이 장면을 보고는 자기도 한 장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소장 가치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위의 장면은 대머리 아저씨가 비켜선 바로 그 직후, 0.2~0.3초 사이에 찍은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빼곡히 둘러서 있을 때는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순간이 제한적이다. 그때를 놓치면 영영 찍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디카 촬영이니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디카는 화가들에게 신의 선물과도 같다. 작품 사진도 바로 찍을 수 있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풍경도 순간적으로 기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마의 절규는 두꺼운 플라스틱 액자로 보호되어 있다. 흑인 여자 경비원이 옆에 서서 조금이라도 그림의 최후 방어선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큰 소리로 주의를 준다. 절규를 보며 파리 루브르에 있는 모나리자방이 떠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그 작품 하나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장벽 말이다. 모마가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해 뭉크의 파스텔화를 구입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명품 좋아한다고 여자들의 허세만 욕할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모마가 절규를 구입한 것과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미국은 늘 유럽에 대해 문화적인 열등감을 느껴왔다. 프랑스식 발음이나 영국식 억양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모마에도 이제 모나리자급 작품이 등장했으니 어느 정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자세히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그림 테두리가 약간 특이하지 않은가. 나무 프레임을 둘러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장자들의 센스 있는 안목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파스텔 작품을 다른 드로잉이나 수채화처럼 종이 테를 두른 유리 액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화처럼 정식 왁구를 짤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뭉크 작품에 대한 설명은 4. 죽음에 대한 응시-쌍둥이 그림들에 얼마간 적어두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

 

눈이 와요! 눈입니다!

 

사진 <11월의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1> 2012


아무래도 뉴욕이 미친 것 같다. 11월의 뉴욕에서 이런 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한다. 메트 폐장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오니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예고도 없이 펑펑 쏟아진다. 허리케인 샌디가 지나가자마자 폭설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9·11 테러 이후 뉴요커들은 아예 인생에 달관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비행기 공격도 받았는데 이까짓 눈보라쯤이야, 하는 분위기다. 지하철 안은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꽉 찼지만, 거리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다.


사진 <11월의 첫눈 내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2> 2012

 

바로 하루 전에는 대선 투표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타임스퀘어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사진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마련된 대선 관중석> 2012

 

어떤 사람은 뉴 이어스 이브 이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거리 전체에 눈발이 몰아치며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전날 찍은 타임스퀘어 사진도 함께 올린다.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1> 2012

 

사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전광판-2> 2012


대선 당일 밤 930분경에 찍은 사진이다. 전광판만 보고는 롬니가 이기는 줄 알았다. 빨간색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알 수 없다. 한국도 곧 대통령을 뽑게 된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 있는 정부가 앞장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정치는 문화를 키우고 문화는 그 시대를 포장해 후세에 남긴다. 인류사는 늘 그렇게 작동해 왔다. 오래전 백 년 동안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했던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테네를 비롯한 헬레니즘 문명은 지금까지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제 오후 모마 미술관에서 운 좋게 건진 사진 한 장이다.


사진 <연인, 모마의 계단에서> 2012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조차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 유명한 모마의 계단에서 한 여자가 올라가고 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떠오른다. 이 여성은 실제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마 이쪽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편에는 뒷모습만 보면 어쩐지 리키 마틴을 연상시키는 남자가 서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수십 번 셔터를 누른 끝에 겨우 한 장 건진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에 연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연인이란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이다. 그렇게 마주 보는 관계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헤어지거나 결혼을 하게 된다. 흔히들 부부는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로를 마주 볼 때 더 강한 생의 스파크가 튀는 것은 아닐까. 앞을 바라본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희생하기에는 이 삶이 너무 짧고 아깝다.


뉴욕은 젊음의 도시이고 연인들의 도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한국인의 도시이기도 하다. 적어도 맨해튼 안에서는 어디를 가도 한국인을 만난다. 오래전에 미국 동부에만 살다가 LA에 갔을 때 수많은 한국인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뉴욕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32번가 한인타운도 계속 팽창 중이다. 사방에서 드릴 소리가 요란하다. 곧 한국식 바비큐 와인바가 새로 문을 열 모양이다. 사우나도 있고 때도 밀어준다고 한다한국 책방도 있고 한식만 파는 푸드코트도 있다.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뉴욕이다. 손님의 절반쯤은 미국인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인구 구성 변화 때문에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뉴욕에 있으니 그 말이 실감난다


지하철을 타면 양쪽에서 여러 나라 언어가 들려온다. 여기서는 백인이 오히려 소수 민족처럼 느껴진다. 오래전 막강한 군대를 앞세워 지구상 최초의 세계화를 이룬 고대 로마가 이런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 것은 아닐까, 너무 뻔한 생각이지만 그런 상상도 떠오른다.

 

이 글을 알라딘에 무사히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숙소에 있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아 불안하다. 마우스도 없고 한글 프로그램도 깔려 있지 않다. 가끔 화면이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맞춤법까지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다. 여기 도착한 다음 날 한 번 시도했다가 써놓은 글을 전부 날려버린 적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글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우주 어딘가에 사라진 글의 행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 적막한 행성의 오래된 도서관에서 어깨가 구부정한 늙은 사서 한 명이 책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오늘도 중간에 한 번 글을 날리고 다시 작업해서 여기에 올리는 중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서울의 일은 모두 잊고 이곳의 시간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두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 욕심이 생겨 이렇게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행 노트에 먼저 적은 뒤 워드패드로 옮기고, 다시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사진도 올려야 하는데 중간에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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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2012-11-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마바가 머리 쥐어짜면 뭉크 그림 속 인물처럼 보일텐데...

김미진 2012-11-16 10:02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이 올라왔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작가 사진 <야외 스케치, 의정부 장암동에서> 2012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예약해 둔 필자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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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미술관에서>

oil on canvas, 80.3×65.2cm, 20132014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약으로 미리 걸어둔 작품입니다

  며칠 동안은 그림 한 점만 조용히 남겨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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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여름을 건너는 조각배, 양평>

65×50cm, 캔버스에 유채, 2012-14

 

올해도 끝자락을 향해 흘러간다.

11, 낮은 햇살이 바람에 실려 오고 나뭇잎은 땅에 수북이 내려앉았다.

지난 2, 소설 연재 하나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한 그림 작업까지, 나름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온 듯하다. 성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잠시 접어둔다. 늘 부족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죽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숙제인 듯하다.

 

추위가 깊어지기 전에 잠시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머리를 식히고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이다. 떠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하필이면 뉴욕이 허리케인 샌디로 어수선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두 달 전 티켓과 숙소를 예약해 둔 터라 마음이 묘하게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다.


그래도 여행 계획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샌디가 지나간 자리에 금방 또 다른 태풍이 몰려오지는 않겠지. 미국 대선이 코앞이라는데, 맨해튼의 거리 풍경도 평소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2005, 뉴욕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다. 서울보다 차가웠던 공기, 분주한 거리와 고요한 골목, 그 사이로 드리워지던 빛과 그림자. 여행 가방을 꾸리며 옛 기억과 함께 두꺼운 스웨터와 모자, 장갑을 하나씩 차곡차곡 담는다.


뉴욕에 가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 앞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다. 1517,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미술관에서 하루를 통째로 보내도 아깝지 않다. 내가 살던 공간을 잠시 벗어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출발이다.


여행은 마음을 설레게 하면서도 동시에 초조하게 만든다. 모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화실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멀리 떠날 때면 늘 이것저것 치우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떠난 자리에는 여운처럼 정적이 남도록. 돌아와 문을 열면 빈 공간에 비친 쓸쓸함이 나를 맞이한다. 떠난 자와 돌아온 자의 그림자가 겹치는 그 순간 역시 긴 여정의 일부일 것이다.

 

그림 <비 그친 오후, 덕포진>

65×54cm, 캔버스에 유채, 2012-14

 

오늘은 야외 스케치 동호회 2012년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작품 두 점을 올린다. 끝내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작품들이지만, 하나의 통과의례라 생각하며 담담히 받아들인다. 비가 그치면 공기는 더 차가워지겠지만,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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