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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세트 - 전10권 - 개정판 ㅣ 홍명희의 임꺽정 1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평점 :
삼국지, 토지, 장길산,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객주, 대발해, 여명의 눈동자...
한국을 대표하는 대하소설들이고 최근 호흡이 긴 소설을 읽고 싶어서 매달려온 작품들이다. 대하소설을 낱권으로 구매하기 답답하여 이미 절판 상태인 임꺽정을 빼놓고 보니 아무리 해도 이가 빠진 허전함을 메울 수 없었던 중, 임꺽정 재출간 소식에 적잖이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구매 하고 책이 도착하던날은 설빔을 받아 들던 어린시절과 같이 들뜬 마음으로 첫권을 펼쳤다.
첫권, 둘째권으로 접어들면서 장길산, 객주는 분명히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의형제편에 접어들면서 점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화적편을 접어들면서 드는 생각, '어, 이게 아닌데!' 그러나, 그러나 끝끝내 기대하던 장면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 모두 잘못 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임꺽정은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결코 의적이 아니었던거다. 그가 가난한 양민을 위해 도적질을 하는 장면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양민을 수탈한 것으로(오해가 있을 지 몰라 언급하건데, 그가 마신 술, 먹은 고기 등속은 결코 평양봉물 빼앗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술과 고기, 떡이 풍성한 잔치 벌이기를 쉽게 한다.
그 숱한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은 모두 사기였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가난한 양민을 심지어는 별다는 이유도 없이 마구 죽이기 까지 서슴치 않는다. 또한 그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도 최악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자기들의 근거지인 청석골을 버리고 다른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 혼자 서울에 가서 계집질에 미쳐 처첩, 기생이나 계속 거느리질 안나, 급박한 상황에서 신속한 결정도 못하고, 수하들이 제시하는 온당한 근거를 무질버 버리기 일쑤요,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며, 부하들보다 너무 많은 것을 누리기나 하고, 부하들간의 갈등(특히, 서림과 곽오주의 갈등) 해소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는 그 짐을 부하에게 넘기기 까지 한다.
한마디로 그는 요즘의 제대로 된 조폭만도 못한 양아치류에 불과할 뿐이다. 저자가 계획하고 있었던 '자모산성 편', '구월산 편'이 계속 되었더라도 임꺽정은 이정도의 부류를 넘어서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다못해 그는 본심이 아니더라도 민심을 얻기 위해 양민들을 구휼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속았다. 그리고.... 슬프다.
이쯤하고... 작품에 대해 조금 얘기 하자면..
극적 스토리 전개 등은 상당히 부족하다고 본다. 뭐 이점은 작품이 탄생된 상황들을 고려하여 이해하기로 한다.
이런 점을 빼면 언어적 유희 또는 우리글 읽는 재미가 남는데, 이런 점에서는 김주영의 객주 또는 화척 등의 작품, 황석영의 장길산 등과 비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장길산 보다는 객주쪽이 무게가 실리고, 임꺽정과 장길산을 비교한다면, 글쎄...
쓰다보니 나쁜 얘기만 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고은 선생이 벽초를 우리 문학사의 첫손가락으로 꼽는다는 말과, 여기저기에서 주워읽은 서평, 추천글 등이 내게 지나친 기대를 갖게 하였던 것이 화근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뭐든 원래의 모습을 알기 전에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음을 확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