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하나 붙잡고 육십 년 - 상처받은 내면을 마주하고 비로소 첫 인생이 시작되었다
임영빈 지음 / 슬로래빗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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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넘는 나이.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에겐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나이이고, 누구에겐 넘고 싶지 않은 절망의 나이이다. 나의 엄마는 전자였고, 이 책의 저자는 후자였다.

 

<미움 하나 붙잡고 육십 년>(임영빈 지음 / 슬로래빗 / 2019)은 63세의 저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내면서, 마음에 쌓여 있던 나쁜 감정들을 내려놓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 에세이다. 아니,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혹은 비망록이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하루 아침에 가정이 주저앉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긴 가족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저자의 평생을 좌우했다. 서울대 간호학과에 갔지만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고, 이후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전교조 남편을 만나 서른 넷에 결혼한 여자. 이렇게만 봐도 삶 자체가 평탄하진 않아 보인다.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는 평생 계속되고, 아이들과 한편을 먹고 남편을 배척해온 세월을 지나 50대 후반엔 집을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공부를 하게 되었고, 지리산에서 3년 7개월 동안 수양하는 동안 내면을 돌아보고 다시금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뻔한 이야기겠지만, 출판사에서 근무한 덕분인지 눈에 담을 문장이 자주 보였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에게, 사실은 사랑을 받고 싶어하던 아이가 있었고, 엄마처럼 절대 살고 싶어하지 않던 내가 이제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심경의 변화가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나 역시 저자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따라갔다.

 

63세의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지금의 행복을 찾게 되었다는 저자의 글이 첫 장에 비해 많이 가볍고 행복해 보였다. 마음공부의 힘, 글쓰기의 힘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배라서 그런지 마치 엄마가 쓴 것 같은 감정 표현들이 곳곳에 보여서 눈물이 날 뻔했다.

 

육십 넘어서 깨닫게 된 행복. 그 누구보다 진하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나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조금 더 이른 나이에 행복을 느껴야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물고 빠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 주는 것도 사랑임을, 그것이 엄마식 사랑임을 그제야 알았다.

 

 

 

 

 

 

 

미움은 결국 내 괴로움일 뿐,

미움받는 당사자에게는 이무런 괴로움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 보았다면 아름답다 했을 광경,

그러나 아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 마음 깊이 외로움이 흘렀다.

 

 

젊은 시절 밖으로 나돌 때 어쩌다 한번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내 밥이 있었다. 아랫목에 묻어 둔 따뜻한 밥.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집 떠난 자식 밥 한 그릇 떠서 아랫목에 묻어 두고, 국 한 그릇 떠서 찬장에 넣어 두었다. 자식이 들어오지 않은 날에는 식은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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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기계 - 인공지능의 간단한 경제학
어제이 애그러월 외 지음,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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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ICT...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이 단어들이 불과 1년 만에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막연한 개념으로만 알던 정보통신기술이 디지털 기기에 하나 둘 적용되면서 더 편리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세상이 올 것이란 기대도 갖게 되었다.

 

<예측기계>(어제이 애그러월, 조슈아 갠스, 아비 골드파브 지음,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2019)는 '인공지능의 간단한 경제학'이란 부제로 인공지능의 예측 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책이다. 저자 3인은 모두 토론토 대학교 로트만경영대학원의 석자교수로 토론토대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럭션 랩의 설립자, 수석 이코노미스트, 데이터과학자이다. 그야말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딥러닝, 인공지능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지금 같은 진보의 물결은 우리에게 지능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지능의 중요한 한 가지 요소, 즉 '예측'을 가져다준다.

 

예측은 의사결정 과정에 가장 중요한 입력 데이터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던 것을 넘어 '예측'까지 가능한 게 지금의 인공지능기술이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는 기계로서의 인공지능은 매우 획기적인 방법이자 기술이다. 사람이 기계보다 나은 게 예측과 대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기계가 예측까지 해준다는 글을 보고 세상이 달라지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은 빠진 정보를 채우는 과정이다. 예측은 흔히 데이터라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사용해 갖고 있지 않은 정보를 만드는 행위다.

 

그렇다면 왜 머신러닝을 인공지능이라고 하는가? 머신러닝의 출력 결과, 즉 예측은 지능의 핵심 요소다. 그 때문에 예측의 정확도는 배워서 향상시킬 수 있고 예측의 저확성이 높으면 기계가 대상 인식 같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지능이 개입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편리한 생활이 이루어지지만, 반면에 '5년 안에 없어지는 직업' 등 미래 일자리에 관한 명암이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전문직으로 각광받는 직업이 몇 년 안에 인공지능이 대체해서 창의력이 발휘되는 분야 등 일부 직업군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공장의 자동화로 전통 제조업의 일자리는 이미 죽었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런 직업 파괴는 중산층까지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린다고 해도 기껏해야 창작 분야나 관리, 감독 역할 정도만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 기여하는 바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답이 나오고, 수많은 데이터를 수 초 안에 처리하며, 인간이 판단해야 할 것까지 여러 근거에 입각하여 예측해주는 편리한 세상.저자는 "예측의 비용은 내려가고, 판단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이 한 마디에 인공지능시대의 답이 다 들어 있다. 갈수록 예측의 비용은 더 내려갈 것이고, 판단의 가치는 점점 더 올라갈 것임을.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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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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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茶道)

[명사] 차를 달이거나 마실 때의 방식이나 예의범절.

 

차를 마신다는 것은 예의와 격식을 함께 마신다는 것. 차를 마시는 걸 다도(茶道)라고 부르는 특별한 이유이다. 평소엔 커피를 즐기지만, 차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을 때, 근심 걱정이 생길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향기롭고 따뜻한 차 한 잔이면 금방 해결되기도 한다.

 

다도에 관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제목은 <일일시호일>. 이 영화의 원작 에세이인 <매일매일 좋은 날>(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9)을 읽고 다도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책을 읽은 것뿐인데, 마치 차를 마시듯 잔잔한 감동이 몰려왔다.

 

저자인 모리시타 노리코는 스무 살 때 다도를 시작해 지금까지 40년 넘게 차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무려 40년. 이 책은 그녀가 다도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이후의 삶들에 대해 담백하게 써내려간 책이다. 묘사와 과정들이 생생해서 마치 내가 다실에서 데마에(차를 내는 행다법)를 하듯이 몰입되었다.

 

이 책이 특별한 건, 다도를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차를 우려내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정성, 디테일이 살아있는 하나의 '인생'처럼 보였다. 때론 기다림으로, 때론 설렘으로, 따뜻함으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영화 한 편을 보듯 생생했다. 빠른 속도로 가지 않고,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다도의 모습이, 모든 게 속도전인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권유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은 후의 세세한 느낌을 표현하기보다는 기억에 남는 구절로 이 느낌을 대신하는 게 좋겠다.

 

 

'신은 사소한 곳에 깃든다.'라는 말이 있는데, 차야말로 정말 사소하고 세세한 곳까지 심혈을 기울인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에는 입춘이다, 입추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뭐, 입추? 아칙 8월 초인데? 한여름이잖아." 하면서 실제 계절과 동떨어져 있다고만 여겼다. 달력 같은 건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길잡이처럼 느껴졌다. 절분이나 입춘과 같은 날이 "자, 이제 곧 봄이야." 하며 나를 격려했다. 달력이라는 존재에 봄을 기다리는 생물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옛사람들도 이렇게 계절과 마음을 동일시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했을 것이다.

 

절분, 입춘, 우수. 그렇게 손꼽아 세어 가며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몇 번이나 겨울로 되돌아갈 때마다 시험에 들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인생의 어느 계절을 넘어서려고 한 것이겠지.

 

그래서 다인들은 명절이나 계절의 행사를 하나하나 소중히 축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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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26
레오 리오니 지음,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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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명절엔 온 가족이 독서모드에 들어갔답니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원없이 보는 시간을 가졌지요.

 

그동안 구입하고 선물받은 많은 책들...

하지만 바빠서 보지 못한 책들을

이번 기회에 다 펼쳐 보느라

이 엄마는 밥하는 것도 잊고

독서 삼매경에 빠졌더랬습니다.

(딸들아 미안~~)

 

 

대신 우리 두 딸랑구에게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어주었지요.

 

제목은 <헤엄이>.

 영어로는 Swimmy라니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어요.

 

 

그리고 두둥~!

 

 

 

 

 

 

네, 맞아요.

빨간 작은 물고기 사이로 보이는

저 까만 물고기 녀석 이름이 '헤엄이'래요.

헤엄을 잘 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어느날-

큰 다랑어가 너무 배고픈 나머지

우리 빨간 친구들을 모두 잡아먹어버렸어요.

 

 

 

다행히도 헤엄이 빠른 헤엄이는

겨우 살아남았지요.

하지만 친구들이 모두 사라져서

헤엄이는 슬프고, 외로웠답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슬퍼만 할 수 없기에

헤엄이는 가장 잘하는 헤엄을 쳐서

바닷속 여행을 떠났어요.

 

해파리도 보고, 가재도 보고, 낯설 물고기와 물풀까지-

모두 만났지요.

 

그런데, 앗 저것은?!

 

 

 

다랑어가 삼켜버린 빨간 친구들과 같은 물고기네요!

이젠 힘을 합쳐 예전처럼 잡아먹히진 않을 거예요.

 

헤엄이가 좋은 생각을 냈죠.

큰 물고기를 만들자는 것!

특히 헤엄이는 이 큰 물고기의 눈이 되기로 했어요.

 

 

우리 친구들이 힘을 합치면 그 어떤 물고기도

헤엄이와 친구들을 공격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큰 물고기가 되었으니까요.

 

.

.

 

 

처음엔 작은 빨간 물고기들 사이에서

홀로 검은 헤엄이가 낯설었어요.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요.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닐 거예요.

이렇게 힘을 합치면 색깔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그 말이 떠오르는 그림책이네요.

?

우리 여섯살, 홉살은

몇 년째 아쿠아리움 연간회원이라

바닷속 동물들을 보자마자

연신 환호성을 지르네요.

고무판으로 만들어 도장 찍듯 그린 빨간 물고기가 인상적인

<헤엄이>였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책이 55년 전에 나왔었다고 해요.

1964년 칼데콧 아너 상을 수상했다니.

여기서 잠깐! 칼데콧 아너 상은?

 

칼데콧상은 매년 여름 미국 도서관 협회 분과인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을 쓴

사람에게 주는 문학상으로 같이 문학 부문에서 수상되는

뉴베리상과 함께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세월이 한참 흘러 지금 봐도

전혀 세대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명작이네요.

역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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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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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명저들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건 '번역'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원서를 일일이 대조해보지 않는 한, 번역가를 믿고 번역본을 읽게 된다. 그래서 번역이 중요하다.

2014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며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은 이정서 번역가가 이번엔 <어린 왕자>의 오역을 지적하는 책을 썼다.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생텍쥐페리, 이정서 지음 / 새움출판사 / 2019)라는 제목을 달고 온 400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이 두꺼운 이유는 <어린 왕자>의 원서와 이를 번역한 내용이 좌우로 펼쳐져 있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노트가 챕터마다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버전의 <어린 왕자>를 보았지만,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어려서, 또는 내가 아직 이 책을 읽을 만한 그릇이 되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이어진다. 단어 하나만 잘못 해석해도 전체 내용이 흐트러지고, 원작자의 의도가 빗나간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의역에 익숙한 우리는 번역에서 대명사를 만나면 그것을 꼭 풀어 써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렇게 대명사로 대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작가의 문체를 위해서도 그러하거니와 오역을 막기 위해서도 대명사는 반드시 대명사로 받아 주어야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들 터입니다.

 

 

 

이렇듯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작가가 문장 속에 선택하는 하나의 단어는 그 나름 고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번역이라고 해서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기에, 저자가 말하는 것의 반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Bonjour와 Bonsoir의 차이를 무시한 채 단순히 '안녕'이라고 번역한 것은 시간 개념이 빠진 상태로 독자에게 전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tu와 vous의 차이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원서와 타 번역본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책을 원서와 비교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에 번역본을 그대로 믿고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독자들이 이해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문장 중에 설명을

덧붙이는 행위는 역자의 오만이며, 그만큼 저자와 독자를

무시하는 행위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문장이 직역으로 안 되겠다고 느껴

역자 임의로 의역을 하는 순간 그건 곧 '오역'이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번역은 반드시 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모든 번역은 기본적으로 '의역'입니다.

한 언어의 의미를 타 언어의 의미로 옮기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조차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주장하는 직역의 의미는 곧,

작가의 문체를 '최대한' 살려서 그 뜻을 '가능한' 정확히

새기자는 데 있습니다.

작가가 쓴 주어, 동사, 쉼표, 마침표, 대멍사, 접속사 등등

그 하나하나에는 작가가 그렇게 쓴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중문학을 함께 전공했던 터라 '번역'이 무척 어려운 분야임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뜻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제대로 옮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 역사 등 사회적 배경까지 통달해야 하는, 실로 엄청나게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데 요즘 번역서를 가끔 보면, 이게 번역기를 돌린 건가 싶을 정도로 엉성하고 이상하게 번역된 책들이 종종 보인다.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도대체 이 번역가는 내용을 이해하고 옮긴 것인가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이정서 번역가가 예전에 카뮈의 <이방인>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걸 하나하나 짚어가는 내용을 페북에서 자주 보았다. 기존 번역자들이나 업계 사람들에게는 질타를 받았을지 모르겠으나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번역은 매우 반갑다. 그리고 번역의 정확도를 보다 높이려고 하는 한 번역가의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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