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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 나를 지키는 일상의 좋은 루틴 모음집
신미경 지음 / 뜻밖 / 2018년 12월
평점 :
루틴.
이 단어를 한 마디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식in에도 '루틴 뜻'이 무엇인지 꽤 많은 질문이 올라오는 걸 보면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오한 말인가보다. 일단,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루틴[routine]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하는 동작이나 절차. 예를 들어 어느 한 선수가 경기 3시간 전부터 운동장을 꼭 15바퀴 뛰고 체조를 한다거나, 운동장의 선을 밟지 않고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어렵다. 긁적글적.
징크스라는 단어는 알겠는데...
그렇다면 생활 속에서 '루틴하다'는 의미를 어떨 때 쓰는지 생각해보았다.
'너무 루틴한 일상이 싫어 떠난다, 넌 너무 루틴해, 루틴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OO가지 방법...'
내가 알고 있는 '루틴'이란 반복되는 일상, 지루함, 답답함, 견디기 힘든 그 무엇 등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뇌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초반부터 장황하게 '루틴'에 관해 썰을 풀어보는 건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신미경 지음 / 뜻밖 / 2018)의 부제가 '나를 지키는 일상의 좋은 루틴 모음집'이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루틴이란 게 가능한가'에서 출발한 내 의구심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내 일상에서 루틴한 걸 만들어보겠다 결심을 해본다.

일단 표지가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는 저자의 일상을 보는 듯, 흰 배경에 깔끔한 초록색 라인드로잉으로 나무에 물을 주는 여성의 모습이 있는 표지. 저자인 신미경 기자는 패션과 생활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 잡지 에디터로 활동했다. 누구보다 바쁘디 바쁘게 살던 중 건강에 이상 신호가 찾아왔고, 그때부터 '자신을 위한 삶, 건강에 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루틴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녀에게 루틴한 일상은 생활은 물론 식습관, 건강, 뷰티 습관, 살림, 재테크, 일, 휴식, 주말에 이르기까지 삶 전체를 지배하는 화두이자 전부이다.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고 절제있게 살 수 있을까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마치 수도자의 삶처럼 늘 자신을 돌아보며 절제할 줄 아는 인생. 가령 음식을 먹을 때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부족한 듯 먹는 것이 가장 좋아.
- 삼시 세끼만 챙겨 먹고 간식은 먹지 않지.
- 조금씩 담아 우아하게 천천히 먹는 것은 참 멋진 일이야.
오늘 저녁도 과식으로 속이 답답한 채로 이 글을 쓰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식습관의 절제가 생활의 절제를 가져오고, 이것이 가계와 살림, 일과 휴식을 통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누군가 새로 한 머리를 보며 알은체하는 게 싫어서 일 년 내내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침실 스탠드 하나만 켜두고 조용하게 생활하며, 술 담배 커피 대신 차를 음미하며, 책 읽고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잠드는 삶. 하루 이틀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겠지만 평생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들 것이다. 그리고 더 새로운 걸 찾고 더 자극적인 걸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은 더 삭막해지고 더 시끄러워지고 사람 간에 거리는 더 멀어진다.

흘러가는 시간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계획적으로 그러나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언제나 건강함을 우선으로 할 것
삭막할 때에도 아름다움에서 위안을 얻는 태도
무언가 이루고 싶다면 말은 짧게 실천은 계속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 사는 튼튼한 나무 같은 삶.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올곧은 삶. 그게 바로 저자의 삶의 방식인 듯하다. 물론 싱글이기에 가능할 거야, 라고 애써 내 자신을 위로하지만 지금 내 삶에도 분명 '루틴'함이 필요해보인다. 과하지 않은, 꾸준히 하는, 그리고 결과적으로 더 좋은 삶이 되는 루틴함.

일상이 문득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을 억누르는 큰 고민거리 없이 어제와 똑같은 일이 평온하게 반복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생각해보면 일, 인간 관계, 먼 미래와 같이 늘 걱정거리를 만들며 사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 없이 특별한 고민이 없으면
용케 작은 것 하나라도 우환거리로 만들고 마는 나쁜 습관.
이제 지루함을 즐기며 설레는 일보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라는 염려 섞인 바람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스탠드 하나만 켜두고, 조용한 라디오를 틀어놓으며 읽었다. 이 책은 어쩐지 그렇게 읽어야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내용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지만, 잡지 에디터답게 글맛도 좋았다. 그리고 비슷한 커리어를 거쳐온 사람들만이 느끼는 깊은 고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챕터별로 분야별 실질적인 꿀팁도 아주 유용했다.
인생에 비상구가 없다고 느낄 때, 지금 가진 게 전부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맹목적으로 되는 것 같다.
나는 그 절박함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 나가면서
새로운 일에 조금씩 도전하는 방법으로
각각의 일에 조금씩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게 언제든지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으며,
그리고 머릿속의 생각이 아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면
확고한 자신감이 생긴다.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이런 '좋은 루틴'은 나 역시 일상에 심어놓아도 좋겠다는 확신이 든다. 힘들지 않게 꾸준히 할 수 있는 루틴. 내 평생을 지배할 '루틴'을 찾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 숙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