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기는 자신있게 살아가는 자기 계발서이다.. 자기 삶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느냐 아니면 구경꾼이 되는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되지 못한 신념으로 다른사람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며 좋은 사람으로 위장하며 살아갈지 아니면 나 자신의 삶에서 나자신이 원하는 삶.. 나 자시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면서 내 삶을 만족하며 베풀고 살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살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이 현재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그것을 과감히 버리기 위해선 단순하게 꿈만 꿀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나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잘라버리고 절대~~ 하고 다짐을 해야 한다. 잘못된 신념을 찾아 과감히 버리고 나를 찾는 준비를 해야 한다. 신념은 흔히 좋은 뜻으로 쓰이긴 하지만 그 신념이 잘못 되었을때에는 고치기 힘들다. 잘못된 신념은 흔히 어릴때부터 몸에 베여 자신도 모르게 잠재의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잘못된 신념은 행동까지 제한한다. 잘못된 것에 대해 노력하지 않고 신념으로서 행동에 제약이 따른다. 그 신념에 맞게 제한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신념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한다면 좀더 발전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자기주체의 삶.. 새로움을 추구하는 삶.. 그러한 삶의 좋은 예로 가수 "이장희" 를 들수 있다. 그의 삶을 들었을때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부럽기까지 하였다. 그는 자신이 살고 싶은 장소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다. 다른 사람들의 요구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았다. 집을 짓더라도 밭을 일구더라도 본인이 돌하나라도 정성껏 빚고 만들어서 성과를 이뤄 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결단으로 일의 그만둘때까지 안다. 그렇게 모든 삶 하나하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결과 매번 성공이라는 이름을 거머쥔 듯 하다. 무슨 일이든지 나의 신념을 찾아 자유로운 행동으로 삶의 주체가 되어 나의 잠재된 능력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신념에서 해방되면 성공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된다. 그리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에게 이루어진 일은 모두 나의 행동결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에 따른 결과를 본인이 행동으로 해결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요 나의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인생의 책임자가 될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야생화..들꽃.. 하면 순수함이 떠오른다. 깨끗하고 맑은 느낌도 떠오른다. 그러면서 강함도 함께 떠오른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도 혼자서 묵묵히 자란다. 누가 씨앗을 퍼뜨려 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도 한다. 혼자의 힘으로 씨앗을 퍼뜨리지 못하면 자연의 힘..즉 벌과 나비.. 그리고 바람이 도와 준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땅이 무른 곳에 자리만 내리면 싹을 틔어 올라 온다. 그리고 수명을 다할 때까지 꿋꿋하게 자라난다. 그런 자연의 꽃을 민통선.. DMZ 안에서 자리잡았으니 더 아름답다.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 는 신들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인간과 합작하여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 서양의 문화에 푹 빠져버린 우리 삶이 그렇듯이 남의 나라 신화가 멀게 느껴지지 않고 정겹고 신비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꽃들은 거의다 들녘에서 자라는 꽃들인데 반해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꽃들은 이뻐고 순결하기 까지 하다. 그런 꽃들에 꽃말까지 아름다운데 그 꽃들이 탄생한 사연까지 구구절절히 아름답다... 그둘의 이야기를 재밌게도 엮었다. 우리나라 야생화와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라 어울리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주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 야생화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것에 신비함까지 느낄 정도이다. 동양과 서양의 절묘함.. 야생과 신화의 절묘함.. 투박함과 세련됨.. 그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짐이야말로 이책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꽃들은 어찌 그리 구구절절이 사연들을 안고 있는 건지.. 하나의 이쁜 꽃이 탄생하기 위해서 깊은 아픔을 가져야 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그렇게 아픈 사연들에서 굵고 붉은 핏방울까지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시킨 옛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승리자이다. 그렇게 이쁘고 아름다운 사연들과 꽃 한송이 한송이 사진들.. 그리고 신화를 묘사하는 대가들의 작품들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다들 풍만하고 허연살을 내뱉듯이 벌거벗은 사진들을 볼때 약간의 눈살이 찌뿌려졌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연들을 접하면서 신화를 그런식으로 자기화해서 표현한 대가들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눈살만 찌푸린 나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며 야생화뿐만 아니라 예술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대의 다름을 확실히 느낀 글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세대차이를 느끼게 한 것도 없었고 나 또한 이렇게 나이가 많음을 미쳐 몰랐다. 책가득 열정과 용기와 활력이 넘친다. 젊음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마구 마꾸 뛰쳐 나온다. 나 젊을 땐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타잔의 글엔 주인 정신이 아주 투철한 것 같은데 나의 젊은 시절엔 관람자로 내 인생이지만 한발 떨어져서 모든 행동을 한 듯 하다. 주관적이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대체함으로써 열정이 사라지게 되고 활력 또한 없었으며 즐거움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밋밋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자신감까지 결핍되어 모든 일에 주눅이 들기 일쑤였다. 주인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주동적이 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삶의 깊이가 달라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타잔은 언제나 주동적이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회장을 하면서 점수에 신경쓰지 않고 학생회장으로써 인간미까지 갖춰가는 것을 보면서 반하기 까지 하였다. 한참이나 어린 사람이지만 왠지 남자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좋은 점을 후배들에게 나눠서 서로 상생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의 넓이까지 넓게 느껴졌다. 그리고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활동의 다양성이다. 여러가지 것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할 줄 알아야 그것을 접하던지 배척을 하던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강북에서 서울 그러니까 강남까지 가서 발취를 넓히고 온데 대해서 박수를 보낼 만 하다. 모든 지방사람들은 서울이 단순히 거리상 멀다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도 강북과 강남의 차이를 느끼고 강남까지 직접 발로 뛴 타잔이야말로 진정한 타잔이리라. 그런점에서는 지방사람들은 배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으니까. 많이 접하게 되면 용기내기 조차 쉬울테니까 말이다. 지금 한참 꿈을 꿀나이의 젊은 친구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타잔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꿈을 꾸었고 그 꿈에 나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대처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냥 지방이라고..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활동성이 조금 없다고.. 접한 문물이 적다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는 관점으로 발을 뒤로 빼지 말고 앞으로 더 내딛을 수 있는 적극성을 닮으라고 말이다. 그래서 타잔과 같이 본인의 일을 하더라도 역동적이고 활동성있게 그리고 즐겁게 펼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닮고 싶다.
단순하게 미래를 알 수 있고 그 미래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책이 전개하는 방향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래는 어떻게 변하게 될지 미리 알아서 행복한 미래를 만들자는 것을 이야기 해주는 듯 하다. 왠지 경고인 듯 하다. 2012년 12월 21일... 우리 지구가 멸망한다는 날짜이다.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등 많은 예언자들이 말한 날짜이기도 하다. 그당시만 해도 2천년은 정말 멀기도 먼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많은 예언자들이 지구가 멸망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멸망하지 않는다면 무슨 자연의 변화라도 있을 듯 하다. 그 변화의 모습을 자연스럽고 우리가 살기 편하게 맞아들일 수 있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지구를 잘 지켜야 할 것 같다. 계속 아프다고 몸살을 앓는 지구를 그냥 버려둔다면 온난화가 가속화되어 변화를 좀 더 빨리 맞을 것이지만 우리가 지구를 위해서 환경과 자연을 잘 보호한다면 변화의 시기를 좀 더 늦출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그 변화가 예전엔 안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예전 만화 영화처럼 코난처럼.. 그리고 어느 영화처럼 더 낙후된 방향으로 변화가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최대 많은 사람들이 환경지킴이를 하고 있으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변화를 맞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너무 긍정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밝은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알고 그에 맞게 변화 시킬 수 있어야만 진정한 미래를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재판정에 서게 된다고 해서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구는 지금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온전히 보존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 그것이 미래를 아는 것이고 미래를 보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리라. 점술적이고 조금은 특이한 자폐적인 아이들의 특성을 살려 미래를 볼 수 있는 인간미 없는 글로써 흥미가 완전한 책으로 여겼다가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이들이 테러를 당하기 직전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 거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이 본인에게 득이 되지 않더라도 목숨까지 걸 수 있는 것 같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미래를 알지만 그냥 모른체 하고 넘어갈 것이다. 모두 함께 미래를 제대로 보고 지구를 지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남겨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거..내 과거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다른 이들은 모르는 미래를 나혼자 알고 있다. 그것도 17세의 미성년자인 소녀가 말이다. 멀디 먼 미래가 아닌. 행복한 미래도 아니며 개인의 미래도 아닌 한 마을을..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테러를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에게 능력을 줄때는 그 능력에 맞는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테러를 보면 권력을 이용해 테러를 저지하면 될 것이고 다른 것을 본다면 그 다른것을 저지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 않은데서 문제가 있는 듯 하다.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면 과잉되고 폭발하게 되어 세상에 미치광이가 된다. 또한 부를 누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 부를 주면 그 사람의 부만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까지 빼앗아 가는 것이 된다. 분수에 맞게 자리에 맞게 능력을 배분받을 때에야 그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카산드라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예언자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금의 자리.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 하는 본능이 있나보다. 조금 뒤에 이같은 것이 파괴된다고 미리 걱정하여 이야기해주면 다들 끔찍이도 싫어한다. 미리 걱정해서 지금의 행복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먼저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고 길이 좋은 미래는 듣고 싶어하지만 힘이 들고 불행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도 없는데 공익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 미래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의 많은 예언자들이 자신의 시대에서는 대우받지 못하고 미치광이 소리를 들어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마야 노래..예언이라는 재미난 글이 나온다. 마야시대에 자신의 인생을 어릴때부터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단다.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려주면 그 예언에 맞추어 삶을 살게 되단다. 그래서 일찍이 이야기한 마야노래가 예언으로 한 승격하게 되는 것이다. 집시들이 이야기하는 카드점도 다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점술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되도록이면 맞추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란다. 그렇게 예언에 따라 행동하고픈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에 그러하리라. 예언에서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면 최대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음 그 사람은 거지가 되는 것이다. 점술가들을 명점술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듣고 간 사람의 노력여하에 따른 듯 하다. 미래를 알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