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일치 시대의 우두머리인 판관의 시대가 끝나고 사울 부터 종교적인 수장인 제사장과 정지적인 수장인 왕으로 분리가 되고 있는데, 사무엘 상권은 바로 그 과도기를 기술하고 있다. 사울은 그 첫 번째 왕이다. 성경은 왕이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위이며 필요악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왕은 백성과 자원을 도구처럼 쓰고 전쟁으로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필요하다고 사무엘을 통해 신께 요청한다.사무엘기도 판관기의 내용처럼, 신에 의해 선택을 받은 이들, 기름부음받은이들이 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교만하게 행동함으로써 버림을 받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대사제 엘리ㅡ 자식들의 부정한 짓으로 신에게 버림받아 자식들도 죽고 자신도 목이 부러져 죽음. 게다가 성궤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탈취당함.사무엘 ㅡ미츠바에서 필리스티아인들의 공격을 막고 사제가 되었으나 두 아들의 뇌물 수수등의 부정한 행동으로 신의 믿음을 잃음. 백성들의 왕 옹립에 대한 요청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해 불완전한 통치체제인 왕정을 수락함. 벤야민 가문의 사울을 왕으로 옹립함.사울왕ㅡ보잘것없는 부족의 미천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신의 부름을 받고 왕이 되어 필리스티아와 영토 싸움을 충실히 수행함. 필리스티아인과의 전쟁을 앞두고 자신이 번제물 제사를 직접함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삼. 이후 신의 믿음이 다윗에게 옮겨간 것을 알고 다윗을 죽이고자 함.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신의 이름으로 수없이 맹세하고서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고자 함.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여기서 많은 반성을 함. 나 또한 방금 전에 한 말과 이어지는 행실을 어긋나게 한 적이 있으니.. 조심, 또 조심.) 인간의 교만함, 가련함을 대변하는 인물.다윗ㅡ이사이의 아들 가운데 외모가 가장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기골이 장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선택받은 자가 되어, 사무엘에게 기름으로 축복을 받음. 골리앗을 조약돌로 쓰러뜨려 승리를 거두고 사울왕의 심복이 되지만,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에게 목숨 잃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김. 신의 이름으로 사울을 해치지 않겠다고 한 맹세를 끝까지 지킴. 그리하여 사울이 죽을 무렵 치클락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함. 미약한 자가 신의 선택을 받고 다시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구조라면, 다윗도 그 순서대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무엘하가 기대된다.‘교만함‘은 신에게도 버림받게 되는 큰 잘못이다.
너는 하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면밀히 살펴보면 인생이란 본디 마음속에서 겁내거나 기대하는 바를 투사해 세상에 덮어씌우고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애쓰는 일이다. 이런 마음속 두려움에서 잠시 벗어나 신이 났던 때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마음속 감정을 겁내게 된 까닭은, 감정에는 엄청난 양의 부정성이 들어 있어서 자칫 깊이 들어갔다가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이런 부정적 감정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마음속에서 감정이 생기는 대로 놓아둘 경우 감정을 처리해 줄 의식 기제가 없기 때문이다. - P33
심리학과 신경생리학을 통합한 그레이·라비올렛Gray-Laviolette 이론은 생각과기억은 감정의 분위기에 맞추어 정리되는 것임을 입증했다.(그래이·라비올렛, 1981) 즉 생각이 기억 저장고 속에 보관되는 일은,그 생각과 결부되어 있으며 다양한 분위기를 지닌 감정에 걸맞게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을 놓아 버리면 그와 결부된 모든 생각에서 해방된다. - P34
이 책은, 꿈을 길어올려 슬픔과 분노로 맺힌 한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고혜경 님이 ‘융의 꿈 분석‘을 적용해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 자세히 볼 수 있다. 말이 쉽지 하루하루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외부로부터 가해진 강력한 에너지(이런 안이한 표현이라니... )에 부딪혀 발생한 트라우마로 그 한 순간에 결박당한 채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꿈속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그러나 그것이 고통의 무한반복이 아니라 벗어나고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되는 일은 안도감을 넘어서 읽는 이에게도 치유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느끼지 못하는 나를 방관자로서 느끼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입으로 피를 흘리며 혀를 내놓고 정면을 응시하는 몸통없는 여인의 얼굴!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이 장면을 눈만 감으면 보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운 걸까? 나는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것이 손자를 아끼는 따뜻한 할머니의 시선이고 피흘리는 자신을 위로하려는 발버둥이라는 것을 이해해가는 한 내담자의 이야기를 통해서,‘참 다행이다. 나와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트라우마센터에 찾아갔던 모든 분들,부디 모두 행복하게 지내시길.. 남은 삶에서는 행복한 일들만 생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