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사람이 글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그는 그 기호와 철자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착각, 우연그리고 무가치한 껍질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 사람은그것을 읽고, 철자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이라는 책과 내 자신의 본질이라는 책을 읽으려 한나는 미리부터 추측한 뜻에 맞추기 위해서 기호와 철자를 무시해 버렸다. 나는 현상계를 착각이라고 불렀고, 나의 눈과 혀를무가치하고 우연한 현상이라고 불렀다. 아니, 그것은 지나갔다.
이제 나는 깨어났다. 나는 정말로 깨어났고, 오늘에야 비로소태어난 것이다.‘

사고와 감각, 이 둘은 멋진 것이다. 배후에는 궁극의 뜻이 숨겨져 있고, 모두 들어 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유희할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이것들을 경시하거나 과대평가하지 않고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심부의 은밀한 음성에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이 음성이 뜻을 두라고 명령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에도 뜻을 두려 하지 않았고, 이 음성이 그렇게 하라고 충고하는 곳 이외에는 그 어디에도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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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고빈다,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고빈다, 이제 자네는 발걸음을 내디뎠고 그 길을 선택하였네. 고빈다, 항상 자네는 나의 친구였으며, 항상 자네는 내가 가는 길을 한 걸음씩 뒤따라왔네. 나는 자주 이렇게 생각하곤 하였네. 고빈다도 언젠가는, 나 없이, 진정독자적으로, 홀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야. 보라구, 이제 자네는 어른이 되었으며 자네 스스로자네의 길을 선택한거야. 친구, 자네가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빌겠어. 자네가 해탈을 얻기 바래」

「그들 모두가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고 목표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우리 사문들은 자아로부터 해탈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 부처가 나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어> 싯다르타는생각하였다. 〈그 분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지만, 빼앗아간 것 이상을 나에게 선사해 주셨어. 그 분은 나한테서 나의 친구를 빼앗아갔다. 그 친구는 예전에는 나를 믿었지만 지금은 그 분을 믿으며, 예전에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지금은 고타마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분은나에게 싯다르타를, 나 자신을 선사해 주셨다.>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있었던 것이다! 아트만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바라문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자아의 가장 내면에 있는 미지의 것에서모든 껍질들의 핵심인 아트만, 그러니까 생명, 신적인것, 궁극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나는 나의 자아를 산산조각 부수어버리고 따로따로 껍질을 벗겨내는 짓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나한테서 없어져 버렸던것이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따랐었다. 이처럼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내면의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이처럼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었으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익이 생기면 덤덤하게받아들였고, 손해가 생기면 웃으면서「그래, 이번에는 일이 잘못 풀렸군」하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그는 사업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자기는 이런 청년 시절에도 갈증에 목말라하고 고통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소년 시절에 들었던것과 똑같은 내면의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떠나거라! 떠나! 너는 소명을 받은 몸이니라!〉 정든 고향을 떠나 사문 생활을 선택하였을 때에, 그리고 그 후 다시사문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완성을 이룬 자인 고타마에게갔을 때, 그리고 또 그 완성자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불확실함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때에도, 자기는 바로 그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기가 그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기가 보다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여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기가 걸어온 길은 얼마나 단조롭고 황량하였던가! 자기가 높은 목표도 없이, 갈증도 없이, 향상도 없이, 자그마한 쾌락들에 만족하면서도 결코 흡족해하지 못한 채 헛되이 보낸 세월이 그 얼마나 길었던가!

바로 그때, 그의 영혼의 후미진 곳에서, 지칠 대로 지친삶의 과거로부터 어떤 소리가 경련하듯 부르르 떨며 울려왔다. 그것은 한 음절로 된 한 마디의 말이었는데, 그는아무 생각 없이 그냥 혼잣말로 웅얼거리듯 그 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모든 바라문들이 기도를 시작하는 말이자 마치는 말로서, 〈완전한 것>이나 <완성>을 뜻하는 성스러운〈옴〉이었다. 그리고 그 <옴>이라는 소리가 싯다르타의 귓전을 울리는 바로 그 순간, 깊이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갑자기 눈을 뜨고 자신의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깨달았다.

바로 이 순간 자기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이로운 잠에서 깨어난 뒤의 이 찬란한 시간, 온몸이온통 옴으로 충만된 이 순간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있단 말인가! 자기의 눈에 보인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것, 자기의 눈에 보인 모든 것을 다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감정으로 대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잠을 자는 동안옴의 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매혹적인현상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 이제 앞으로는 절대로, 예전에는 그렇게 착각하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싯다르타가 현명하다고 자만하는그런 착각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나 자신에 대하여 증오심을 품는 일을 그만둔 것이나 그 우매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 그것은 잘한 일이었어.
그것은 나의 마음에 들어, 그렇게 한 것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어. 싯다르타여, 그 어리석음의 세월을 그토록 오랫동안 보낸 다음 네가 다시 한 번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해냈으며, 대단한 일을 해냈으며, 너의 가슴속에 있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새를 따랐다는 점에서나는 너를 칭찬하노라!>

이제 싯다르타는, 자기가 바라문으로서, 참회자로서 이자아와 투쟁을 하였지만 무엇 때문에 그 싸움이 헛수고가되고 말았던가 하는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예감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지식이, 너무 많은 성스러운 구절이, 너무많은 제사의 규칙들이, 너무 많은 단식이, 너무 많은 행위와 노력이 자기를 방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제 기질 속으로, 이런 교만한 마음속으로, 이런 정신적 성향 속으로 자기의 자아가살며시 파고들어와서는 거기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아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동안, 자기는 단식과 참회로써 그자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어떤 스승도 어차피 자기를 구제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던 그 내밀한 음성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의내면에 있던 사제 의식과 사문 의식이 죽어 없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자기는 계속하여 그 가증스런 세월을 견뎌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구토증을, 그공허감을, 황량하고 길을 잃고 타락한 인생의 그 무의미함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러한 삶의 종말에 이르게 되었으며, 쓰디쓴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으며, 탕아 싯다르타, 탐욕자 싯다르타도 죽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싯다르타는 죽고 없었으며,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이 새로운 싯다르타 역시아마도 늙게 될 터이고, 이 새로운 싯다르타 역시 아마도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싯다르타란 덧없는 존재이며, 형상을 지닌 것은 모조리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자기는, 이 새로운 싯다르타는 젊고 기쁨에 가득 찬 어린아이이다.

이 강물 속에 싯다르타는빠져 죽으려고 하였었다. 피곤에 지치고 절망에 빠진 그옛 싯다르타는 이 강물 속에 오늘 빠져 죽었다. 그러나 새로운 싯다르타는 이 흘러가는 강물에 깊은 사랑을 느꼈으며, 그 강을 다시 곧바로 떠나지는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강에 숨어 있는 무수한 비밀들 가운데에서 그는오늘 단 한 가지만을 보았을 뿐인데, 그것이 그의 영혼을사로잡았다. 그가 본 비밀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매순간마다 새롭다! 오, 과연 그 누가 이 사실을 파악할수 있으며,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으리!

한참 바라보다 보니, 그녀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고, 생명의 빛을 잃은 채 거기에 누워 있는 자기 얼굴도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과 그녀의얼굴이 붉은 입술과 타는 듯한 눈동자를 지닌 젊은 시절의얼굴이 되어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자 현재와동시성이라는 감정이, 영원성이라는 감정이 그의 마음을파고들어와 온통 가득 채웠다. 그는 그 순간, 모든 생명의불멸성과 모든 순간의 영원성을 깊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깊이 느꼈다.

이 모든 충동들, 이 모든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들,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억센 생명력을 지닌, 끝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여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충동들과탐욕들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어린애 같은짓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싯다르타의 내면에서는, 도대체 지혜란 것이 무엇이며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추구해 온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서서히 꽃피어 났으며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매순간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 단일성의 사상을 생각할 수 있는, 그 단일성을 느끼고 빨아들일 수 있는 영혼의 준비 상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하나의 능력, 하나의 비밀스러운 기술에다름아니었다. 조화, 세계의 영원한 완전성에 대한 깨달음,미소, 단일성이 그의 내면에서 서서히 꽃피어 났으며, 바주데바의 늙은 동안(童顔)으로부터 그에게 반사되어 비추었다.

강은 웃고 있었다. 그렇다, 그런 것이다. 끝장을 볼 때까지 고통을 겪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일체의 것은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며, 똑같은 고통들을 언제나 되풀이하여 겪게 되어 있는 법이다. 싯다르타는 다시 나룻배에 올라타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들을 생각하면서, 강물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자신과 싸우면서, 절망적인 마음 상태가 되어 자신과 온 세상에 대해 함께 큰 소리로 비웃어주고 싶은 생각을 적잖이 하면서 오두막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강에, 이 수천 가지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때면, 그가 고통의 소리에도 웃음 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두거나 자신의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특정한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소리들을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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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눈치를 잘 쓰려면 먼저 여러분의 관심이 한 개인이 아닌 공간의 분위기로 향해 있어야 한다. 관찰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방 전체여야 한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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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심리학과 허재홍 교수는 정신과 환자 치료의 새로운기준으로 눈치를 사용하려고 했다. 허 교수는 눈치를 객관적으로측정하기 위해 독창적인 ‘눈치 척도‘를 개발했다. 서구의 과학계에서도 자기 존중감, 생활 만족감, 공감지수 등을 측정하기 위해수십 년 동안 비슷한 척도를 사용했다. 공감지수는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저명한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언이 개발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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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철학의 세계에 다시 발을 담그게 되었다. 에피쿠로스는 충분할 정도이되 너무 과하지 않게 소유하는 것이 기쁨의 원천이 된다고 믿었다. 그 수준에서 더 원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는 "충분한 것을 너무 적다고 여기는 자에게는 그 무엇도 충분치 않다"라고 말했다.

"감사하면 현실에 안주하여 게을러지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우려를 자주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시행한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요. 감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목표 달성을 더 잘합니다."

"즐거움을 누릴수록 완벽한 인간에 가까워진다." 나는 팔찌에 새겨진 글을 읽었다.
크레이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미소를 지었다. "스피노자가 한 말이에요." 그가 17세기 철학자 이름을 언급했다. 

어떤 일에든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기분 나쁜 경험만 하게 된다.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하면 대부분의 일은 웬만큼 좋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살면서 제레미 같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드러그스토어의쾌활한 점원일 수도 있고 정류장을 확인해주는 친절한 버스 운전사일 수도 있다. 긍정적인 사람은 승진하거나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감사하며 좋은 기운을 퍼뜨리는 사람에게도움을 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코넬대 심리학 교수인 톰 길로비치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근사한 것을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그게 일단 손에 들어오면 별다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죠. 이것이 바로 습관화의 부정적인 면입니다." 
~ 내가 볼때 이른바 ‘적응의 놀라운 힘‘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지금 감사하는 일이다.

1892년, 위대한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평가를 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산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이긴, 세계에서 둘째가는 권투 선수이거나 조정 선수임에도 죽도록 괴로워하는 2등의 역설에관한 글을 썼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직업에 감사한다고 해서 포부가 줄어드는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에 감사하면 행복감을 더느끼고 생산성도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하는 일에 감사하면미래에 더 비상할 수 있다.

○ 직장인의 81퍼센트는 감사를 잘 표현하는 상사 밑에서라면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응답했다.
○ 직장인의 70퍼센트는 상사가 감사를 표현하면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생각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일에서 상대방에게 감사의 말을 듣는 것은 심지어 돈보다 더 큰동기부여제가 된다. 런던 경제 대학의 연구원들은 직장에서 힘이 나게 만드는 요소를 관찰한 조사 50여 가지를 분석하였다. 그리하여사람들은 일에 관심과 흥미를 느낄 때, 일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을때, 자신이 한 일에 타인이 감사를 표현할 때 직장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경영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사람들을 기버giver, 테이커raker, 매처matcher라는 세 부류로 구분한다.
테이커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매처는 항상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사람, 그러니까 이익이돌아올 거로 생각할 때만 타인을 돕는 사람이다.기버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도와주는 사람으로도움, 조언, 지식을 제공하고유용한 연락처를 공유하며 사람을 소개해준다.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이렇게 마냥 베풀기만 한다면 그 사람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때로는 역효과도 발생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랜트는 기버들도 종국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타인에게 베풀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잘 인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부류 가운데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들은 타인에게 이익을 주면서도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킨다.

"감사 표현은 직장에서 유일하게 가장 오래 지속하는 동기부여제입니다. 외적인 동기 부여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요. 봉급 인상은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고, 보너스는 받으면 다 써버리게 되고, 새로운 위치도 일단 그 자리에 오르면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질 않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한 일에 고마워한다는 점을 알게 되면 그 효과가 오래가지요." 그랜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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