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고빈다,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고빈다, 이제 자네는 발걸음을 내디뎠고 그 길을 선택하였네. 고빈다, 항상 자네는 나의 친구였으며, 항상 자네는 내가 가는 길을 한 걸음씩 뒤따라왔네. 나는 자주 이렇게 생각하곤 하였네. 고빈다도 언젠가는, 나 없이, 진정독자적으로, 홀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야. 보라구, 이제 자네는 어른이 되었으며 자네 스스로자네의 길을 선택한거야. 친구, 자네가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빌겠어. 자네가 해탈을 얻기 바래」
「그들 모두가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고 목표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우리 사문들은 자아로부터 해탈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 부처가 나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어> 싯다르타는생각하였다. 〈그 분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지만, 빼앗아간 것 이상을 나에게 선사해 주셨어. 그 분은 나한테서 나의 친구를 빼앗아갔다. 그 친구는 예전에는 나를 믿었지만 지금은 그 분을 믿으며, 예전에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지금은 고타마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분은나에게 싯다르타를, 나 자신을 선사해 주셨다.>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있었던 것이다! 아트만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바라문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자아의 가장 내면에 있는 미지의 것에서모든 껍질들의 핵심인 아트만, 그러니까 생명, 신적인것, 궁극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나는 나의 자아를 산산조각 부수어버리고 따로따로 껍질을 벗겨내는 짓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나한테서 없어져 버렸던것이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따랐었다. 이처럼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내면의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이처럼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었으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익이 생기면 덤덤하게받아들였고, 손해가 생기면 웃으면서「그래, 이번에는 일이 잘못 풀렸군」하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그는 사업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자기는 이런 청년 시절에도 갈증에 목말라하고 고통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소년 시절에 들었던것과 똑같은 내면의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떠나거라! 떠나! 너는 소명을 받은 몸이니라!〉 정든 고향을 떠나 사문 생활을 선택하였을 때에, 그리고 그 후 다시사문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완성을 이룬 자인 고타마에게갔을 때, 그리고 또 그 완성자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불확실함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때에도, 자기는 바로 그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기가 그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기가 보다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여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기가 걸어온 길은 얼마나 단조롭고 황량하였던가! 자기가 높은 목표도 없이, 갈증도 없이, 향상도 없이, 자그마한 쾌락들에 만족하면서도 결코 흡족해하지 못한 채 헛되이 보낸 세월이 그 얼마나 길었던가!
바로 그때, 그의 영혼의 후미진 곳에서, 지칠 대로 지친삶의 과거로부터 어떤 소리가 경련하듯 부르르 떨며 울려왔다. 그것은 한 음절로 된 한 마디의 말이었는데, 그는아무 생각 없이 그냥 혼잣말로 웅얼거리듯 그 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모든 바라문들이 기도를 시작하는 말이자 마치는 말로서, 〈완전한 것>이나 <완성>을 뜻하는 성스러운〈옴〉이었다. 그리고 그 <옴>이라는 소리가 싯다르타의 귓전을 울리는 바로 그 순간, 깊이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갑자기 눈을 뜨고 자신의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깨달았다.
바로 이 순간 자기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이로운 잠에서 깨어난 뒤의 이 찬란한 시간, 온몸이온통 옴으로 충만된 이 순간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있단 말인가! 자기의 눈에 보인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것, 자기의 눈에 보인 모든 것을 다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감정으로 대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잠을 자는 동안옴의 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매혹적인현상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 이제 앞으로는 절대로, 예전에는 그렇게 착각하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싯다르타가 현명하다고 자만하는그런 착각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나 자신에 대하여 증오심을 품는 일을 그만둔 것이나 그 우매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 그것은 잘한 일이었어. 그것은 나의 마음에 들어, 그렇게 한 것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어. 싯다르타여, 그 어리석음의 세월을 그토록 오랫동안 보낸 다음 네가 다시 한 번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해냈으며, 대단한 일을 해냈으며, 너의 가슴속에 있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새를 따랐다는 점에서나는 너를 칭찬하노라!>
이제 싯다르타는, 자기가 바라문으로서, 참회자로서 이자아와 투쟁을 하였지만 무엇 때문에 그 싸움이 헛수고가되고 말았던가 하는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예감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지식이, 너무 많은 성스러운 구절이, 너무많은 제사의 규칙들이, 너무 많은 단식이, 너무 많은 행위와 노력이 자기를 방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제 기질 속으로, 이런 교만한 마음속으로, 이런 정신적 성향 속으로 자기의 자아가살며시 파고들어와서는 거기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아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동안, 자기는 단식과 참회로써 그자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어떤 스승도 어차피 자기를 구제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던 그 내밀한 음성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의내면에 있던 사제 의식과 사문 의식이 죽어 없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자기는 계속하여 그 가증스런 세월을 견뎌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구토증을, 그공허감을, 황량하고 길을 잃고 타락한 인생의 그 무의미함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러한 삶의 종말에 이르게 되었으며, 쓰디쓴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으며, 탕아 싯다르타, 탐욕자 싯다르타도 죽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싯다르타는 죽고 없었으며,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이 새로운 싯다르타 역시아마도 늙게 될 터이고, 이 새로운 싯다르타 역시 아마도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싯다르타란 덧없는 존재이며, 형상을 지닌 것은 모조리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자기는, 이 새로운 싯다르타는 젊고 기쁨에 가득 찬 어린아이이다.
이 강물 속에 싯다르타는빠져 죽으려고 하였었다. 피곤에 지치고 절망에 빠진 그옛 싯다르타는 이 강물 속에 오늘 빠져 죽었다. 그러나 새로운 싯다르타는 이 흘러가는 강물에 깊은 사랑을 느꼈으며, 그 강을 다시 곧바로 떠나지는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강에 숨어 있는 무수한 비밀들 가운데에서 그는오늘 단 한 가지만을 보았을 뿐인데, 그것이 그의 영혼을사로잡았다. 그가 본 비밀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매순간마다 새롭다! 오, 과연 그 누가 이 사실을 파악할수 있으며,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으리!
한참 바라보다 보니, 그녀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고, 생명의 빛을 잃은 채 거기에 누워 있는 자기 얼굴도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과 그녀의얼굴이 붉은 입술과 타는 듯한 눈동자를 지닌 젊은 시절의얼굴이 되어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자 현재와동시성이라는 감정이, 영원성이라는 감정이 그의 마음을파고들어와 온통 가득 채웠다. 그는 그 순간, 모든 생명의불멸성과 모든 순간의 영원성을 깊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깊이 느꼈다.
이 모든 충동들, 이 모든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들,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억센 생명력을 지닌, 끝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여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충동들과탐욕들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어린애 같은짓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싯다르타의 내면에서는, 도대체 지혜란 것이 무엇이며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추구해 온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서서히 꽃피어 났으며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매순간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 단일성의 사상을 생각할 수 있는, 그 단일성을 느끼고 빨아들일 수 있는 영혼의 준비 상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하나의 능력, 하나의 비밀스러운 기술에다름아니었다. 조화, 세계의 영원한 완전성에 대한 깨달음,미소, 단일성이 그의 내면에서 서서히 꽃피어 났으며, 바주데바의 늙은 동안(童顔)으로부터 그에게 반사되어 비추었다.
강은 웃고 있었다. 그렇다, 그런 것이다. 끝장을 볼 때까지 고통을 겪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일체의 것은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며, 똑같은 고통들을 언제나 되풀이하여 겪게 되어 있는 법이다. 싯다르타는 다시 나룻배에 올라타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들을 생각하면서, 강물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자신과 싸우면서, 절망적인 마음 상태가 되어 자신과 온 세상에 대해 함께 큰 소리로 비웃어주고 싶은 생각을 적잖이 하면서 오두막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강에, 이 수천 가지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때면, 그가 고통의 소리에도 웃음 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두거나 자신의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특정한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소리들을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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