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형, 이건 분노해야 될 문제이지 않을까요?"
비좁아터진 책들 사이로 고개를 쭉 빼고 그는 내게 말했다. 지금처럼 아주 더운 봄도 여름도 아닌 듯한 그 어느 날 오후에 말이다.
그와 나는 아침 9시까지 출근 해 상쾌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커피 믹스 한 잔을 종이컵에 타서 아침밥이라 생각하며 섭취하고 니코틴 파워(담배)를 충전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제부터 주문된 수 십 장의 주문장들이 배달이 된다. 그럼 우리는 주문장을 한 번 쓱 훑어본다. 찾기 어려운 책은 없는지 아니면 찾기 쉬운 책만 주문이 됐는지 말이다.
신간 서적의 경우 입력한 지가 며칠되지 않기에 찾기가 수월하지만 좀 시간이 지난 책은 위치는 표시가 돼 있지만 찾는 시간은 1시간도 그리고 3시간도 걸릴 수가 있다.
왜 그럴까? 이 서점은 본 매장은 지하에 있고, 1층에는 또 어린이 책과 만화 매장이 있다. 그리고 책만 쌓아놓는 저장 창고 주차장(상가 건물의 지하 주차장을 임대)이 있다. 또 10여분 떨어진 거리에는 고전 문학과 고서들이 있는 빌라 지하의 거대한 창고가 존재한다. 고전 문학이 있는 창고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해 200평 정도의 크기를 자랑한다. 주차장 창고도 거기에 2분의 1의 수준이고 말이다.
근데 모든 매장과 창고의 공통점이 있다. 일단 책장이 서로 빼곡하고 서 있다. 그 높이는 178cm의 키를 자랑하는 내가 손을 쭉 피면 그 책장 맨 위의 꼽힌 책을 집을 수는 정도다. 책장에 책은 세로로 꼽혀 있지만 그 앞 선반에는 또 가로로 책이 쌓인다. 내 허리 위부터의 책들은 그렇게 세로와 가로로 아주 빽빽하게 꼽혀 있다. 허리 아래로는 세로와 가로로 쌓인 책 앞에 밑바닦부터 차곡차곡 내 허리까지 책들이 가로로 책 탑이 돼 서있다. 그렇게 80평 정도의 매장은 세로로 쭉 책장과 책탑이 서 있다. 그러다 보니 책장과 책장 사이의 간격은 사람이 옆으로 서서 거의 지나갈 수 있으며 몸무게 90kg을 넘는 사람은 지나가기 조차 버겁다. 실례로 판타지 작가 형(판타지작가 형90kg, 루쉰P 74kg)은 지나가다가 끼인 적도 있다. 게다가 책과 눈 사이의 거리가 30cm정도이기에 책 제목을 보다가 눈은 사시가 되고 현기증이 나는 사태도 속출한다.
주문 들어 온 책이 운이 없어 책 탑을 드러낸 뒤에 가로로 쌓인 책을 파헤치고 또 그 안에 세로로 꼽혀 있는 책이라고 한다면 그 날 한, 두시간은 모두 투자해야만 한다. 왜냐면 앉아서 책을 찾을 수 있는 자리가 없기에 일단 먼저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책 탑을 옆으로 옮겨 자리를 확보하고 그 후에는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책을 향해 책 탑을 제거하고 또 그 안에 가로, 세로의 책들을 뒤집어 가며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옮기는 책의 무게들은 낱권으로 읽을 때는 느낄 수 없는 무게이지만 10권 정도만 돼도 그 무게는 택배 알바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아령 소포 무게와 같은 존재감을 준다.
이렇듯 모든 매장과 창고에는 저런 통일된 형식으로 책이 진열 돼 있다. 서점에는 손님들의 주문을 접수 상담하고 모든 사무적 일을 하는 메인 1명과, 하루 할당량 7백부 입력이라는 환상의 목표를 내세워 사장에 물어 뜯이며 일을 하는 입력팀 2명, 그리고 책을 찾고 정리하는 수색팀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메인도 입력팀도 경력이 4년차가 된 사람도 월급은 140여만원, 수색팀도 갓 들어 온 신입도 1년이 넘은 사람도 120만원에서 4대 보험을 뺀 108만원, 월급 인상 따위는 없다. 점심값도 자기 월급에서 사먹고, 교통비도 물론이고 말이다. 직장에서 제공되는 것은 언제나 진열돼 있는 커피 믹스!
아침부터 책을 옮기고 찾고 하다보면 먼지로 뒤덮히고 입고 있던 바지는 금방 너덜너덜 해진다. 예전 글에도 썼지만 서울 강북에 위치한 이 곳은 재개발구역인 달동네라 빌라들은 비좁게 서 있고, 낮은 슬레이트 집들도 서로 눈높이를 맞춘 채 밀집돼 있다.
내가 맡은 창고는 고전 문학과 고서 위주인지라 책 주문이 들어오면 본매장에서 여기까지 수레를 끌고 와 책을 찾은 후 다시 수레에 실어 10분 정도의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찢어진 바지를 입고 동네 골목길을 지나칠 때면 사람이 그리워 나와 계시는 할머님들을 만나게 된다.
그냥 지나칠려 해도 사람의 정이 그리워 앉아 있는 할머님들을 보면 예전에 모시고 살았던 할머니가 생각나 인사를 조금씩 드렸다. 근처에 서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시는 할머니들은 넝마에 가까운 옷을 입고, 낡아빠진 수레에 책을 옮기는 나를 폐지를 수집해 살아가는 희망찬 젊은이로 오해들을 하셨다.
주문이 많아 책을 한 수레 싣고 지나가면 젊은 사람이 능력도 좋다며 칭찬도 해 주시고, 언젠간 고물상을 차려 결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찬 장미빛 미래도 제시해 주고 하셨다. 서점에서 일한다고 얘기를 해도 할머님들은 웃으시며 젊은 사람이 도둑질해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폐지 수집이 뭐가 어떠냐며 부끄러워 하지 말라며 자신의 일에 당당해 지라고 충고도 해 주셨다.
우리 할머니도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못 알아드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할머님들은 다들 공통적으로 그러신가 보다 하는 생각에 서점에 근무한다는 설명은 포기를 하고 속으로 나의 인생은 저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빠져, 폐지 총각으로 저 분들의 인생 황혼기에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 드리는구나란 생각도 했다.
나에게 분노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던 그는 나와 같은 저런 일들을 했다. 나보다 2살 어린 후배로 대학 졸업 후 노동 운동을 하며 인권 사랑방도 다니는 등 사회 참여에 정열을 불태우는 친구였다. 그에게 적은 월급으로 9시부터 저녁 7시까지의 노동과 토요일도 똑같이 출근하는 것, 그리고 일요일도 남자 직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나오는 것 등에 대해서 노동자로서 분노하고 있었다.
여기 직원들은 공통점이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순박하고 자기 욕심들이 너무 없었다. 월급을 얼마를 주던 일을 얼마를 시키던 그냥 시키는대로 주는 대로 만족을 했었다.
그런 것에 대해 저 동생은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사실 팀장님과 함께 서점의 이익에 대해 분석을 해 본적이 있는데 월 천만원 정도의 순이익은 남기는 구조였다. 하지만 사장은 거기에 대해서 경기가 어렵다. 우리 같이 더 노력하자. 많이 벌면 내가 혼자 먹겠느냐 같이 나눌 것이다. 지금은 하지만 상황이 아니다는 등의 이야기를 매일 매일 했다.
서점의 매출과 이익에 대해서는 사장 혼자 정보를 독점하고 절대 직원들과는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 동생의 불만은 그것이었다. 다들 모든 젊음을 바쳐 일하고 있는데 보수야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서점을 우리 것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거기에 대해 사장도 인정을 하고 서로 파트너의 입장에서 같이 해 나가야 하지 않느냐, 왜 우리를 톱니바퀴처럼 그냥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릴려고 하는 도구로 보는가라는 것에 대한 분노!
이런 의견에 대해 사장은 항상 경제가 어렵다는 말과 직원들이 전문성이 없다. 더 정열을 바쳐 야근도 더 하며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만 피력할 뿐이었다. 팀장에게는 입력팀이 입력을 실수한다는 등의 험담과 책을 찾는 것이 서툴다는 등의 말만 하염없이 매일 했다.
한 번은 포장을 담당하는 내 실수로 주문한 책들이 서로 다른 주소로 간 적이 있다. 이틀 연속으로 말이다. 그 실수가 밝혀진 후 사장은 자신이 밤에 곰곰히 사색을 했다며 그 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이 서점을 망하게 만들려고 하는 내 음모라는 것이었다. 이건 지어낸 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나에게 얘기했다. 모든 직원들 앞에서 말이다. 정말 현실은 소설보다 스펙터클하다.
그러나 팀장님은 너무나 착한 분이어서 저 동생의 그런 불만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해 줬다. 그리고 사장을 일단 믿자 우리가 더욱 한 번 더 노력해 보자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합쳐 더욱 더 일을 했고, 어떤 날은 정리를 하다가 새벽 4시에 간 적도 있고, 고객들에 대한 친절에 더욱 목숨을 바쳐 일을 했다. 결국 우리가 계산했을 때 순이익이 2천만원 정도 넘는 적도 있었지만 사장의 태도도 절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매출과 이익의 정보는 독점한 채 직원의 전문성 문제와 실수만 지적할 뿐이었다.
동생은 그런 것에 대해 우리가 노조라도 만들어야 발언의 권리가 생기지 않겠냐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건의했고, 팀장님은 사장의 입장의 대변해서 나에게 동생을 진정시켜 달라는 부탁을 많이 했다. 난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공감했다. 사장을 믿고 싶은 팀장님의 마음과 우리가 도구냐고 외치는 동생의 마음말이다.
중간에 샌드위치로 낀 나는 번뇌에 번뇌를 거듭했다. 어떻게 해야지 저 두사람의 마음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 내가 될 것인가, 결국 그 번뇌에 대한 해답으로 동생에게는 노조를 만들어 파업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우리가 사보타주(태업)을 통해 사장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라고 말을 하고 팀장님에게는 동생을 진정시킬 시간을 달라고 했다.
동생이 파업이 아닌 사보타주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란 질문에 그것은 일은 하지만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고도의 노동 파업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실천적 전략으로 아침에 오면 커피 먹는 시간을 최대한 늘린다. 자주 화장실을 간다. 10분이면 찾을 책을 1시간만에 걸리게 찾자. 사장을 보면 인사를 하지 않는다 등의 나름 고민한 해답을 제시하자. 갸우뚱하는 표정으로 그것이 효과가 있냐라고 나에게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지만 직원들 대부분이 노조를 만드는 것에 대해 회피하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나의 결의를 보여주자 의견에 선선히 따라 주었다.
결국 우리의 행동은 의심 많은 사장은 주시하고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직원들을 불러 창고에서 사직서를 쓰도록 강요를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무시하는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창고에 불려가서 사장의 뻔뻔한 얘기를 들은 나는 격분한 나머지 사장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대들었고, 화를 참지 못하고 때려친다고 하고 나와 버렸다.
내가 어이없게 화를 내고 뛰쳐 나온 후 남아 있는 직원들은 조리 있게 자신들의 입장을 용기 있게 얘기를 했고, 사장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나와서 당당하게 집으로 가려고 했던 나는 이대로 직장을 그만둬 버리면 몸이 아프신 어머님에게 드릴 돈도 없어지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대책이 없었다며 자책을 하며 서점 앞에서 마지막이니 팀장님과 직원들에게는 인사라도 하고 가야겠다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쿨하지 못 했던 것이다.
창고에서 나온 팀장님은 애기가 잘 됐으니 내가 화를 낸 일은 사장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일을 하자고 권유를 했고, 이대로 일을 그만두면 큰일이다라고 사시나무 떨듯이 있던 나는 내 손을 잡고 끌고 가는 팀장님의 팔을 뿌리치지 못한채 사장 앞에 가서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잘 됐다며 서로 웃으며 며칠 일을 했지만, 속으로 의심이 가시지를 않았다. 왜 사장은 갑자기 사직서를 얘기를 했으며 도대체 그런 사태를 왜 일으킨 것일까 하는 것 말이다.
나름대로 전에 이 서점에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도 하고, 여러 가지로 정보를 취합한 결과 초창기 이 서점의 창업해서 5년간 같이 일했던 멤버들이 그 당시 팀장을 중심으로 이 정도 성장을 했으니 우리에게도 분배를 해야 겠지 않겠냐 라는 요구에 사장은 불응하고 서점을 두 달간 폐쇄 시키고 이 사람들을 모두 내쫓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들어와 일하던 직원들 역시 2년간 같이 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자 또 다시 내쫓고 사람을 다시 뽑아 버렸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팀원들은 3번째 순서였던 것이다.
게다가 꽤 유명한 서점이라 여러 잡지에서 사장을 인터뷰도 해 갔는데 자신이 사람을 믿고 서점을 성장시키면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해 다시 무너지고 무너지고를 했다며 인터뷰 도중에 울기까지 했다는 글도 조사 결과에서 나왔다.
나는 그동안의 결과를 종합해 이 사장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은 도구처럼 쓰고 버리는구나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무엇을 한 들 소용은 없다. 이 사장은 가망성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했고, 노동운동을 하는 후배에게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 사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포기한다고 말을 했다. 아쉬워 하는 동생을 뒤로 한 채 나는 비겁하게 그 곳을 떠났다.
'분노하라'는 책을 읽으며 줄곧 위에 길게 쓴 저 일들이 머리에 떠나지를 않았다.
스테판 에셀은 1945년 프랑스가 독일 정부에 의해 해방이 되던 때 레지스탕스가 내논 개혁안들이 지금은 무너지고 있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자유 프랑스를 건설하기 위해 내걸었던 레지스탕스의 가치를 잊지말고 지금의 청년들이 분노해 달라고 부탁한다.
책자는 아주 적은 분량이다. 그런데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그 외침, 적극적 참여를 하라는 그 외침이 결국은 나에게 적극적 참여를 원했던 서점 동생의 외침과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무관심과 냉소로 자신의 상황을 회피하지 말아라 그것은 적들에게 더 도움이 될 뿐이다라는 에셀의 외침은 읽는 내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서점도 그렇고 사회에 나오면서 부딪치는 모든 불합리함들에 대해 분노에 의한 적극적 참여보다는 도망가기에 바쁜 비겁한 인생이 내 인생이었다. 분노라고 해 봤자, 그들이 안 보는데서 욕하는 것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 했다.
난 두려웠던 것이다. 그 후배와 함께 투쟁하는 것이 말이다.
이 작은 책자를 구입한 날부터 10번도 더 읽은 것 같다. 계속해서 말이다. 어찌보면 에셀이 말하는 것들은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다. 보편적이고 말이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울컥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분노하는 것에 대해 당장 해결해 버렸으면 하는 열망이 항상 크다. 저런 사장들도 싹 쓸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크고 말이다. 그런데 사회는 그런 것들에 대해 법도 그렇고 모두 없는 자의 편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냉소에 빠찌고 무관심에 빠지게 된다. 도망치고 말이다.
에셀은 분노의 마음을 품은 채 정당의 적극적 참여와 NGO 단체에 대한 적극적 참여도 권유한다. 그리고 더욱 큰 것은 비폭력 투쟁으로 자신을 정복하고 남을 위해 책임질 줄 아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루쉰 선생은 "혁명가만이 혁명 문학을 쓸 수 있다"고 하셨다.
스테판 에셀이라는 투쟁하는 사람이 썼기에 이 글들이 나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을 해 본다.
복잡한 이 사회에 에셀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찾아내고 바라보기를 바란다.
젊은 청춘들이 '반값등록금' 투쟁을 위해 매일 거리로 나가는 것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부끄럽게 말이다.
루쉰 선생은 "비겁자의 분노는 지푸라기나 태울 뿐이다."고 하셨다. 비겁한 자의 분노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난 비겁하고 부끄러운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나를 계속해서 몰아 세운다. 그리고 거울처럼 나를 마주보게 한다.
"악에 대한 증오는 신성한 증오다"고 루쉰 선생은 말한다.
에셀의 분노 역시 신성한 분노이지 않는가!
난 나를 극복하고 싶다. 그리고 비겁함을 뛰쳐 나가고 싶다. 리뷰를 쓰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 더운 날 내 생명이 부끄러움으로 한 없이 덥다.
6월 초 그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서점은 이번 해 초에 그만두었고 자신은 경기도 지방 도시로 내려가 공장에 취직해 노조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말이다. 6월 말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만나면 부끄럽지만 이 책을 꼭 손에 쥐어주고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