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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ㅣ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서양고전을 주로 읽어오다가 우리의 책도 읽어보자는 취지에서 무진기행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작가의 방황하고 정처없는 듯한 기분을 담아놓은 일기장(?)을 읽어본 듯했다.
비슷비슷한 느낌이어서 주인공이 한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이 이야기가 저 이야기랑 섞여있는 듯하기도 했다.
단, 무진기행만은 다른 느낌으로 다른 사람의 글인줄 알았다.
처음에 무진이란 장소에 대해서 알게 된건 공지영씨의 <도가니>에서 였다. 그 배경이 무진이었고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무진은 무진기행에서 밖에 읽은 적이 없다고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무진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인 줄 알고 무진이 어디냐고 남편에게 물었고 모른다는 남편을 닥달한 기억도 있다.
무진은 가상의 공간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그 고장사람들은 지루해서 견딜 수 없어하며 바다를 끼고 있지만 수심이 얕아서 한참을 걸어나가야 바다다운 느낌이 드는 곳. 특산물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작가는 묘사하고 있다.
공지영씨가 그린 무진의 묘사도 비슷했다.
무진은 참 음울한 시골고장인 것이다.
가상공간을 이용해서 글을 쓴 점이 독특했다.
물론 외국의 한 작가는 평생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고장과 인물들을 두고 책마다 주인공을 달리했기도 하지만 국내소설 중에서(내가 읽어본) 처음 인 듯하다.
그런 음울한 고장인 무진에 서울사는 남자가 내려왔다.
그리고 며칠 뒤 서울로 올라갔다.
단편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제 뭔가 더 진행이 되겠구나 한 순간에 소설이 끝났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무진은 그 남자가 힘들었을 때 내려오는 곳이었다. 옛 애인이 그를 버리고 떠났을 때도 무진에 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내려왔다.
무진에서는 특별히 할일없이 방에 틀어박여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곤 한다. 안식의 장소일까?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는 어디로 가고 싶었던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정처없이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주인공은 고향을 택했다. 엄마의 자궁처럼 그가 힘들때 무진으로 온다. 그리고 다시 현실세계로 나아간다.
아마도 무진기행의 의미는 그런 것인가보다.
시대적으로 어둡고 힘든 시기여서일까?
이 책의 주인공들이 방황하는 청소년같기도하고,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가장같기도하고 어디 발붙일데를 찾지 못하고 목적없이 헤메이는 그런 사람같기도 했다.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