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의 빛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5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평점 :
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과거는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215쪽
우리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배우고 또 성장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게 일어났던 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내가 성취한 것들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도달한 방법에 따라서 말이다. 326쪽
이 책은 참 부드러운 시선을 가졌다.
예전에 봤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마아클 온다치가 쓴 책이란 걸 이 책을 다 읽고 알게 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두 작품의 유사한 시선이 느껴졌다.
주제는 참 신선했다. 아들의 시선에서 어머니를 기억해내는 방식인데 어머니의 직업이 남다르다.
어머니는 전쟁 중에 정보국의 요원으로 '비올라'라는 활동명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었다.
급작스레 떠난 엄마와 아빠로 인해 아이들은 화살과 나방이라는 남자 둘에게 맡겨졌고, 두 남자들은 이 집에서 남매를 지켜낸다.
엄마를 그리워하고 아빠에게 보호 받아야 할 시기에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엄마와 아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화살과 나방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직업과 또는 엄마의 활동을 상상해내며 지낸다.
알 수 없는 당황스런 상황에 대해서 아이들은 상상을 하며 그 공백을 채워나간다.
그러던 중 누나는 무언가를 알아버렸고, 그 뒤부터 변해갔다.
십수년이 지나 성인이 되어 정보국 기록보관소에서 일하면서 엄마의 활동이나 기록들을 차분하게 찾아내가며 엄마를 이해하기도 한다. 엄마가 테러와 복수같은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멀리 떨어져있어야 했던 사실도 알게 된다.
어려서의 상상력이 성인이 된 후 사실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참 암호처럼 그려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본인에게 인사를 건넨 남자(펠론)가 엄마의 이웃이었고 그 남자가 엄마를 스파이의 세계로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엄마의 인생을, 엄마의 사랑을, 엄마의 세계를 제대로 알아버린 아들.
뒤 늦게 엄마와 함께 보내게 되는 어색한 시간 속에서 체스를 두면서 가까워지는 장면도 너무도 소중했다.
책을 읽는 내내 뻔한 부분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침내 어머니와 아들이 되었다. 205쪽
"훌륭한 군 지휘자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후퇴의 기술이야. 어떻게 들어가는지, 그다음에는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오는지가 중요해." 205쪽
펠론이란 인물 묘사가 참 흥미로웠다. 작가는 인물들을 참으로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를 잘하는 듯하다.
이상하게 무신경해 보이는데도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눈동자를 지녔다. 278쪽
언어학을 전공하고 꿈이 있었던 '로즈'가 어머니를 잠시 내려놓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비올라'로 살아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어머니는 젊은 이엉장이가 그랬듯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은 것이다. 265쪽
나는 어떤 비올라가 될 것인가?
내년이면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